"건이쳰이양. 메이요우볜화.(跟以前一样。没有变 : 이전과 똑같습니다. 변한 게 없어요)"
중국 단둥(丹東)시에서 북한 보따리상에게 구두와 가방 등을 팔아온 중국 상인의 하소연이다. 실제로 한국어 안내문을 큼지막하게 붙인 상점에는 한 시간이 지나도록 별다른 손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없었다.
중국 단둥시 세관 앞에 늘어선 북한 상점가. 사람이 없어 썰렁한 모습이다. (사진=김중호 베이징 특파원)
지난주 말에 찾은 대표적인 북·중 접경 도시 단둥에는 촉촉히 비가 내리며 봄을 재촉하고 있었지만 도시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분위기는 여전히 냉랭하기만 했다. 지난달 25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전격적인 방중이 이뤄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부 외신들은 북·중관계의 급속한 해빙 조짐이 북·중 접경 지역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보도했고 국내 매체들도 이를 일제히 인용했다. 하지만 단둥에서 실제로 이들 매체들이 보도한 '긍정적 조짐'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았다.
중국 단둥시 압록강변에서 바라본 북한 (사진=김중호 베이징 특파원)
외신들이 전한 이른바 관계 회복 조짐이라는 것은 ▶북·중 접경지역 물동량 급증 ▶북한주민들에 대한 신규 취업비자 발급 중단 해제 ▶폐쇄됐던 북한 식당들의 영업 재개 ▶북한산 수산물의 밀수단속 완화 등으로 요약될 수 있다. 북한과 교류가 빈번한 선양(瀋陽)과 단둥의 소식통들은 이같은 보도가 하나 같이 추측성 보도에 불과할 뿐이라고 일축했다.
◇ 북·중 물동량, 제재 이후 감축 수준 그대로…북한 주민 취업비자 제한도 변화 없어북한과 중국을 드나드는 물동량은 제재 이후 줄어든 것이 여전히 늘어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단둥의 한 소식통은 "오히려 지난 8일 중국 상무부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대북 결의 2375호 이행을 위한 후속 조치로 대북 수출 금지 리스트 품목을 추가하면서 북한에는 쇠붙이로 만들어진 것은 깡통 하나도 건너갈 수 없는 지경"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중국 상무부는 이날 공업화신식화부, 국가원자력기구, 해관총서, 국방과학기술공업국과의 공동 공고를 통해 고리형 자석, 핫셀, 방사선 조작시 사용하는 장갑 케이스, 중자학 계산 및 소프트웨어, 입자 가속기, 방사선 탐측 설비, 질량 분석 장치, 지진 탐측 설비 등을 금수 품목에 포함시켰다.
중국 단둥시 압록강변에서 바라본 압록강 단교, 조중우의교 (사진=김중호 베이징 특파원)
제재 전에는 아침마다 물건을 싣고 조중우의교(朝中友誼橋)를 지나는 북한 트럭을 손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고 하지만 이제는 그런 것도 찾아보기 힘든 광경이 된지 오래라고 한다. 해관(海關·중국의 세관)에서 통관을 기다리는 품목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해관 앞에 자리잡은 북한상점들도 손님 하나 없어 을씨년스러운 모습이었다.
중국 단둥시 세관 주변에 자리 잡은 북한 상점. 중국의 대북 제재로 북한 손님들이 많이 줄어 을씨년스러운 모습이다. (사진=김중호 베이징 특파원)
북한 주민들에 대한 취업비자 신규 발급 중단 조치가 완화되고 있다는 것도 근거가 없거나 너무 과장된 소식으로 보인다. 북한 무역에 정통한 한 인사는 "주변에 북한주민을 다시 고용해서 들여온 업체가 있는지 알아봤지만 그런 업체는 찾아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오히려 북한 기업 임원이 북한으로 돌아간 뒤 후임자가 비자를 발급받지 못해 인력충원이 되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 폐쇄됐던 북한 음식점들 영업 재개…수산물 밀거래 단속 완화 움직임도올해 초부터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에 따라 중국 내에서 퇴출되기 시작했던 북한식당 가운데 일부가 영업을 재개한 것은 사실이다. 단둥의 고급 북한음식점인 평양 고려관과 류경식당 모두 영업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손님들이 많지 않기는 마찬가지여서 점심시간인 오후 1시가 조금 지나서 찾아갔지만 식당에는 손님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단둥시 북한 식당인 류경식당. 중국의 대북제재로 영업을 중단했다 지난 3월 말부터 영업을 재개했다. (사진=김중호 베이징 특파원)
다시 영업을 시작한 류경식당 내부 모습 (사진=김중호 베이징 특파원)
종업원에게 언제부터 영업을 다시 시작했느냐고 묻자 '3월 말'부터라는 답이 돌아왔다. 시기적으로 따졌을 때 김정은 위원장의 방중 효과라고 보기 힘들다는 계산이 나온다. 선양에서는 북한주민들이 자주 찾는 것으로 유명한 칠보산호텔이 중푸(中富)국제호텔로 이름을 바꿔 영업을 재개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북한 식당과 호텔의 영업재개는 어디까지나 업주를 중국인 명의로 변경하는 등의 조치가 있었기에 가능하다는 것이 현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다만 북한산 수산물 밀거래에 대한 단속 완화는 어느 정도 개연성이 있어 보인다고 일부 현지 소식통들이 예상했다. 지금까지 중국 당국의 강력한 단속에도 불구하고 북한산 수산물이 중국산으로 둔갑해 은밀하게 밀거래되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한다. 선양의 한 소식통은 "공안이나 단속 담당자들이 김정은 위원장 방중 이전처럼 엄중하게 단속에 나서지 않을 수는 있다"고 내다봤다. 수산물의 육상 밀거래는 북한 양강도와 중국 장백현 루트를 이용하고 훈춘(琿春)에서 대규모 거래가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것도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 은밀하게 이뤄지는 밀거래 특성상 실제로 중국 사법당국의 단속이 어느 정도 느슨해졌는지를 확인할 방벙은 없는 것이 현실이다.
◇ '북·미 회담' 앞두고 더욱 몸사려…'북·중 무역 정상화' 기대감은 높아김정은 위원장의 방중이 끝난 4월 초 단둥에서 북한 사람들의 모습을 찾기가 이전보다 더 힘들어졌다는 주장도 나온다. 북한과 왕래가 많은 조선족 관계자는 "미국과 회담을 앞둬서인지 제재가 한창일 때보다 더 조심스러워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사업하는 사람들도 일단은 북·미 회담 때까지는 두고 보자는 의식이 강하다. 유엔 대북제재 때문에 순식간에 망한 사람들의 학습효과랄까. 혹시라도 북·미 정상회담이 기대치에 못미치는 결과가 나올 경우를 대비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실제 대북제재 후에도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었던 단둥 해관 앞 북한 상점가나, 북한주민들이 자주 찾는 단둥 시내 상가에서도 북한 주민들의 모습은 거의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단둥에서 바라본 북한 (사진=김중호 베이징 특파원)
그렇다면 언제부터 단둥에 본격적인 봄바람이 불 수 있을까? 단둥 현지 소식통들 사이에서는 북·미 정상회담이 끝나는 올 하반기는 돼야 본격적인 변화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미국이 움직이지 않고서는 중국이 스스로 유엔 안보리 제재를 느슨하게 만들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더구나 미국과 치열한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 입장에서 조금이라도 꼬투리를 잡힐 수 있는 행위는 못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무역 정상화에 대비하는 물밑의 기대감과 움직임은 이미 활발하게 감지되고 있었다. 선양의 한 소식통은 북한 기업에 납품하는 중국 업체가 벌써부터 남·북 관계 정상화와 개성공단 재개 등에 대비해 공단에 납품할 물품 등을 미리 확보해 놓으라는 지시가 비공식적으로 전달되곤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