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자료사진)
#1 지난달 27일 전북 전주시 한 아파트에서 A(39‧여)씨가 생후 7개월 된 딸과 함께 숨진 채 발견됐다. 발견 당시 A씨는 방에서 목을 맨 채, 딸은 안방에서 이불에 덮인 채 숨져 있었다. 경찰은 A씨가 산후 우울증을 겪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2 지난해 12월 19일 부산 기장군의 한 빌라에서 생후 100일 된 딸을 살해한 막내딸을 살해한 혐의로 B(30·여)씨가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에 따르면 산후우울증을 앓고 있던 A씨는 남편이 출근한 사이 딸이 울음을 그치지 않자 범행을 저질렀다.
◇ 우울해도 병원 안 찾는 산모들…극단적 선택도산후 우울증을 호소하던 끝에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건이 잊을 만하면 반복되고 있다.
산모 10명 중 최소 1명꼴로 산후 우울증을 앓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여전히 산모 개인의 일로 치부되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2015년 인구보건복지협회가 기혼여성 11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결과 분만한 여성 10명 중 9명(90.5%)이 '산후 우울감을 느낀다'고 응답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기혼 여성의 33.7%가 자살 충동을 느낄 정도의 심각한 산후우울증을 겪은 것으로 조사됐다. 조사에 응한 기혼여성 중 2%는 자살 기도를 한 적 있다고 응답했다.
산모들에게 산후 우울증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나 실제 치료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 결과 최근 3년 동안 산후 우울증 치료를 받기 위해 진단이나 상담을 받은 경험이 있는 기혼 여성은 전체 2.6%에 불과했다.
이모(36‧여)씨는 "첫째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어느 순간부터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나'하는 답답한 기분이 들었다"며 "우울감이 3년 넘게 계속됐지만 참을 만한 정도라고 생각해서 병원에 가지는 않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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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후우울감, 방치시 우울증 악화" 상담-치료로 이어지는 체계 부실그러나 전문가들은 산후우울증을 제때 치료하지 않고 방치할 경우 일시적인 병증을 넘어 우울증으로 악화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강원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박종익 교수는 "호르몬 변화 등으로 출산 직후 일시적으로 느끼던 우울감이 사그라지지 않고 장기화되면 우울증으로 본다"며 "산후우울증 치료를 잘 해야 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보건당국은 일선 보건소를 찾는 산모들에게 산후우울증 자가진단을 하도록 권하고 있다. 만약 산모가 고위험군으로 판명될 경우 전국 240여 개소에 설립된 정신건강복지센터로 안내하거나 병원 치료를 유도한다.
최수연(42‧여)씨는 그러나 "2년 전 첫아이를 낳고 우울감 때문에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보건소나 병원을 가도 누구 하나 먼저 '괜찮냐'고 물어보는 의료진은 없었다"며 "산후 5달 만에 출근을 해야 해서 병원도 못 간 채 그냥 참았다"고 토로했다.
산후 우울증 예방부터 진단, 치료로 이어지는 각 단계 사이의 연결고리가 시스템이 아닌 산모의 의지나 여건에 달린 셈이다. 전문가들은 산후 정신건강을 위한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박 교수는 "일선 보건소에서 노력과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지만 아직 체계적이라고 보기 힘든 수준이고, 설령 산후우울증 관련 상담을 받더라도 정작 병원 치료로 이어지는 의료전달체계가 없다시피 한 게 더 큰 문제"라고 말했다.
고려대 보건정책관리학부 이종태 교수는 "국가가 신생아들에 대한 면역관리 등으로 영유아 사망률을 줄이려 했듯 같은 관점에서 산모에 대한 관리 문제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 교수는 그러면서 "산후우울증 등 임신‧출산 이후 뒤따를 것으로 예상되는 각종 어려움이 (예비 임신부에게) 임신에 대한 두려움으로 작동할 수 있고, 이는 곧 국가가 관심을 보이고 있는 저출산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고 조언했다.
◇ 보건당국 "치료 강제할 수 없어"…영국 등 선진국 '표준화된 지침 제시'보건당국은 산후우울증 자가진단 의무화 등 환자 발굴을 위한 적극적인 개입에 다소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산후우울증 진단을 위해 어떤 검사 등을 '무조건 하라'는 건 모든 사업이 그렇듯 일종의 규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도입이) 어렵다"며 이같이 말했다.
현행 모자보건법 제10조의 5에 따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임산부에게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산전·산후 우울증 검사와 관련한 지원을 할 수 있다.
이처럼 현행법이 산후우울증 검사의 지원 필요성을 담고 있다고는 하나 이와 관련된 하위법도, 구체적인 시행 방안도 없어 아직 추상적인 가이드라인 수준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반면 영국은 산전과 산후 정신건강 관리를 위해 국가가 표준화된 지침을 제시하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이소영 연구위원에 따르면 영국 보건임상 연구소(NICE)는 국가정신건강협력센터를 통해 관련 지침을 냈다.
이 지침서는 산모와 신생아, 심지어 배우자의 건강을 위해 산전, 산후 1년까지의 정신건강 문제를 예측, 발견, 치료하는 데 필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
미국도 지난 2012년에는 이른바 '오바마 케어'로 불리는 환자보호 및 부담적정보험법을 통해 전체 성인에게 우울증 선별 검사를 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산전·산후우울증 극복을 위한 중앙 치료상담 센터의 설치와 운영을 골자로 한 모자보건법 일부 개정 법률안이 지난해 9월 발의되긴 했지만 아직 국회에 계류중이다.
이 법안을 대표 발의한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은 "산후 우울증으로 인한 안타까운 사건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는데도 현재 임산부가 국가로부터 지원받는 것은 보건소에 비치된 자가 검사지가 전부다"고 말했다.
정 의원은 이어 "구체적인 지원체계나 계획, 지원 주체가 없는 상황에서 사각지대에 방치된 임산부 정신건강을 전담할 기관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법안을 발의한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