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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과학

    프린터 잉크의 우롱, 소비자들 뿔났다

    피보다 비싼 잉크에 대처하는 자세

     

    #1. 강종수(37·회사원)씨는 최근 집에서 사용하던 1년이 조금 지난 20만원 대 잉크젯 프린터 복합기를 중고장터에 팔고 신형 제품으로 구매했다. 고장은 없었지만 잉크 카트리지의 잉크가 떨어져 바꿨다. 새로 산 프린터도 20만원 대였지만 강씨는 대수롭지 않게 사용하던 중고제품을 10만원에 팔고 조금 더 보태 신형 프린터를 샀다. 이유를 묻자 10만원 대가 넘는 정품 잉크 가격 때문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강씨는 “포토 프린팅과 스캐너가 가능한 최신형 잉크젯 프린터의 가격이 대략 20만원 대인데 5~6개 들이 정품 잉크 카트리지 패키지 가격은 온라인 쇼핑몰에서 최저가로 구입해도 10만원을 넘는다”며 “번들 잉크 카트리지가 들어 있는 최신형 제품을 주기적으로 바꿔 구입하는게 훨씬 유리하다”고 말했다.

    마케팅 업계에 ‘자동차의 유효기간은 3년’이라는 말이 있다. 프린터도 비슷하다. 2~3년마다 일부 모델을 개선하거나 인기가 높은 시리즈 위주로 업그레이드 된 신제품을 내놓는다. 사진을 출력할 수 있는 포토 프린터의 성능이나 일부 개선된 인터페이스를 제외하면 정상적인 환경에서 프린터를 사용할 경우 3년 넘게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강씨처럼 부담스러운 잉크 값을 이유로 2년도 안 된 프린터를 팔고 주기적으로 신형 프린터로 갈아타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2. 김보람(31·자영업)씨는 친구와 둘이 운영하는 사무실 프린터 복합기의 정품 카트리지를 빼고 호환되는 무한잉크 공급장치를 달았다. 잉크 카트리지 가격이 비싸 김씨 회사가 판매하는 제품 컬러 이미지는 가능하면 태블릿PC와 이메일로 공유하고 대부분 사무에 필요한 흑백 프린트만 한다. 김씨는 무한잉크로 바꾼 뒤 유지비용이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주요 프린터 제조사들은 올해 무한잉크 공급장치가 적용된 프린터를 잇달아 출시했다. 소비자들이 비싼 잉크 교체 비용 때문에 마진률이 높은 자사 정품 잉크 대신 호환용 비정품 잉크 카트리지나, 무한잉크를 사용하는 비중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카트리지형 잉크보다 용량이나 가격면에서 월등한 무한잉크 수요를 따라잡겠다는 전략이지만 소비자들은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다. 프린터 제조사들이 판매하는 무한잉크의 가격은 낮아졌지만 호환용 무한잉크에 비해 여전히 비싸기 때문이다.

    HP, 캐논, 앱손, 삼성전자 등 주요 프린터 제조사들의 잉크 원가는 공개된 적이 없다. 인쇄용 잉크 종류가 천차만별인데다 제조 방식에 따라 제조원가도 크게 달라진다. 이들 제조사들의 정품 카트리지는 블랙과 컬러 1세트가 15만원을 훌쩍 넘지만 인터넷 유통 가격은 10만원대 초중반으로 구입할 수 있을 정도로 고무줄 가격이다. 재생잉크 호환 제품을 선택한다면 가격은 절반 이하로 떨어진다. 해외에서는 수혈용 혈액보다 잉크 가격이 더 비싸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프린터 제조사들의 꼼수는 늘 논란이 돼왔다. 제품 가격은 낮게 책정하고 소모품인 잉크 가격을 높여 마진률을 높이는 전략이 대표적이다. 일부 제조사들은 카트리지 칩을 조작해 잉크 잔량이 남았는데도 모두 소진한 것처럼 세팅하다 적발되거나 호환용 무한 카트리지(재생잉크) 사용이 불가능하도록 에러 발생을 유도하기도 한다.

    지난해 미국 대법원은 프린터 제조사가 자사 제품을 무한 카트리지나 토너 등으로 개조하는 것을 단속할 근거를 인정하지 않는 판결을 내렸다. 존 로버츠 판사는 “판매자가 한 번 제품을 팔았다면 회사가 소유한 특허권을 포기해야 한다”며 “이 판결은 미국은 물론 해외 관계 없이 모두 적용된다”고 판시했다. 이후 제조사들은 앞 다퉈 저렴한 무한잉크 프린터를 내놓고 고객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더 이상 꼼수가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 프린터 제조사 관계자는 “최근 무한잉크 프린터를 원하는 시장의 니즈에 맞춰 더 저렴하고 더 많은 인쇄가 가능한 제품을 늘릴 계획”이라며 이같은 분위기를 전했다.

    잉크 카트리지는 환경오염의 주범이라는 지적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 일부 제조사들은 다 쓴 카트리지를 수거하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지만 폐 카트리지와 남은 잉크에 포함된 유독성분이 환경오염을 야기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오히려 소비자들이 저렴한 무한잉크나 재생 카트리지를 사용함으로써 환경오염 방지에 일조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해외 수출비중이 대부분인 국내 한 재생잉크 생산업체 관계자는 “전 세계 프린터 잉크 시장은 재생잉크나 무한잉크 활용 비중이 대부분을 차지한다”며 “프린터 제조사들의 정품 잉크에도 재생잉크 업체가 생산한 원료가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무한잉크

     

    잉크 유통 업체 관계자도 “잉크 제조 과정이 투명하지 않다보니 값싼 저질 잉크가 재생잉크로 사용되면서 프린터 고장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늘고 있다”면서 “소모품 비중이 큰 재생잉크에도 품질 표준을 도입해야 소비자들이 피해를 보는 일이 줄어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다른 프린터 제조사 관계자는 "고품질의 잉크 원료를 개발하기 위한 막대한 개발비용과 품질 유지 및 제품 신뢰도를 위한 노력의 과정을 생각하면 비용이 꼭 높다고만 볼 수는 없다"며 "소비자들이 원하는 방향을 찾기 위해 무한잉크 제품도 내놓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복수의 잉크 유통 업체 관계자들은 "그동안 정품만 강조하며 무한잉크 시장을 터부시해왔던 제조사들이 중소업체들의 밥그릇까지 빼앗으려 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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