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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쿨(cool)하지 못한 1호 영리병원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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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쿨(cool)하지 못한 1호 영리병원 탄생

    [구성수 칼럼]

    원희룡 제주지사가 지난 3일 국내 첫 영리병원인 제주 녹지국제병원을 둘러보고 있다.

     

    국내 영리병원 1호가 우여곡절 끝에 탄생하게 됐다.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5일 국내 첫 영리병원인 녹지(綠地)국제병원 개설을 조건부로 허가했다고 밝혔다.

    조건은 내국인 진료는 금지하고 제주를 방문한 외국인 의료관광객만을 대상으로 한다는 것이다.

    여기까지 이른 과정은 지난했다.

    우리나라에서 영리병원 도입이 본격적으로 거론된 것은 김대중 정부 때부터였다.

    당시 외국인 투자유치가 급선무였던 정부는 외국인이 경제자유구역 안에서 외국인 전용 영리의료기관을 설립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을 제정했다.

    이후 영리병원을 둘러싸고 찬반양론이 팽팽하게 맞섰다.

    영리병원이 도입되면 의료보험체계가 무너져 의료비의 양극화와 의료비 상승만을 불러온다는 주장과 의료산업의 경쟁력 강화와 고용창출, 해외환자 유치 등을 위해 허용해야 하다는 주장이 한 치의 물러섬 없이 대립했다.

    그 논란은 제주도에서 재점화했다.

    2006년 12월 헬스케어타운 조성사업이 제주국제자유도시 종합계획 신규 핵심 프로젝트로 확정되면서 영리병원 추진이 본격화됐지만 시민사회단체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쳐 무산됐다.

    이후 논란 속에서도 제주도의 영리병원 추진은 계속됐고 지난 2015년 12월에는 보건복지부가 녹지국제병원 건립 사업계획을 승인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으로 끝은 아니었다.

    중국 녹지(綠地)그룹은 사업계획 승인에 따라 2017년 7월 제주 헬스케어타운에 녹지국제병원 건물을 다 짓고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인력까지 뽑았지만 제주도로부터 병원 개설허가가 나지 않았다.

    시민사회단체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친 제주도는 지난 3월 8일 개설 허가문제를 숙의형 공론화에 부쳤다.

    시민대표로 구성된 숙의형 공론조사위원회는 지난 10월 4일 공론조사를 통해 병원 개설 불허 권고 결정을 내렸다.

    제주도는 이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개설 허가 결정을 내린다고 두 달이 지난 이날 밝힌 것이다.

    제주도의 결정은 매우 힘든 것이었으리라.

    원희룡 도지사는 이날 “숙의형 공론조사위원회의 결정을 전부 수용하지 못해 죄송하다”며 “제주의 미래를 위해 고심 끝에 내린 불가피한 선택임을 양해해 달라”고 사과했다.

    일 국내 첫 영리병원 허가에 제주도청 앞에서 강하게 반발하는 제주 시민단체.

     

    제주도는 개설 허가 이유로 국가적 과제인 경제 살리기 적극 동참과 관광산업의 재도약, 건전한 외국투자자본 보호를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 등을 들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투자된 중국 자본에 대한 손실문제로 인한 한중 외교문제 비화 우려, 외국자본에 대한 행정 신뢰도 추락으로 인한 국가신인도 저하 우려, 사업자 손실에 대한 민사소송 등 거액의 손해배상문제 등을 제시했다.

    이것은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이유이다.

    하지만 제주도의 개설 허가 결정과정은 쿨(cool)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이미 사업계획 승인을 받아 병원 건물을 짓고 의료인력을 다 뽑아놓은 녹지국제병원의 개설문제를 공론화에 부친 것은 문제가 있다.

    개설을 기정사실화해 놓고 요식행위로 한 것일 수 있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공론화에 들어간 시간과 인력, 비용의 낭비가 너무나 크다.

    제주도는 정말 공론화 결과 ‘불허’로 나와도 따를 생각이었는지 모르지만 그렇다면 사태의 심각성을 전혀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순진했다는 것을 증명할 뿐이다.

    제주도가 이날 밝힌 개설 허가의 불가피성을 사전에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무능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더 심각한 것은 원희룡 도지사의 말 바꾸기이다.

    원 도지사는 그동안 기회 있을 때마다 공론조사위원회의 불허 권고를 존중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녹지국제병원 공론조사는 이해관계자와 관점이 상충되는 사안을 숙의형 민주주의로 결정해 제주도민의 민주주의 역량을 진전시킨 것”이라며 의미부여까지 했다.

    그 사이에 상황이 바뀐 것도 아닌데 허가 쪽으로 입장과 말을 바꾼 것이다.

    “도민을 배신하고 영리병원을 선택한 도지사는 퇴진하라”고 시민사회단체가 거세게 반발할 빌미를 제공한 셈이다.

    병원 개설문제를 공론화로 풀겠다고 결정한 것까지 감안하면 원 도지사의 책임은 훨씬 크다고 할 수 있다.

    16년간 계속돼온 영리병원 논란이 말 바꾸기, 배신공방으로 마무리되는 것은 보는 이를 씁쓸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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