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국회에서는 모두 69개 '연구단체'가 활동중이다. 이들 단체는 지난해 10억원이 넘는 예산을 지원받아 '연구활동'을 벌였다. 그 '연구활동'의 핵심 결과물이 바로 '정책연구보고서'다. 하지만 '정책연구보고서' 전량인 111개를 노컷뉴스가 국회로부터 어렵게 확보해 분석한 결과 엉터리 보고서가 많았다. 표절율이 50%가 넘는 보고서도 16건이나 됐다. 노컷뉴스는 그 가운데 5개 보고서를 샘플링해서 내용의 적정성 등을 검증해 봤다. [편집자주]
스페인으로 들어오는 난민들이 구출되고 있다. (사진=CEAR 제공)
국민인권포럼은 2017년 12월 정책 연구단체 활동으로 '해외 난민 정책 연구사업' 결과 보고서를 제출했다.
이 보고서는 선진 국가들의 난민 수용 정책 및 처우 등을 현장조사하고 각 의회의 지원 및 협력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아시아인권의원연맹과 공동 이름으로 작성됐다. 아시아인권의원연맹은 국회의원들의 또 다른 소규모 보조금 단체다.
국민인권포럼 단체 소속 4명의 의원들은 2017년 12월 14일부터 21일까지 스페인‧포트투갈에서 6박 7일의 해외 출장을 다녀온 뒤에 결과 보고서를 제출했다.
이 보고서를 보면, 스페인으로 들어오는 난민들 중 북아프리카에서 뗏목을 타고 들어오는 난민들이 급증하고 있다고 분석하고는 '스페인 난민 문제 관련 현황'에 기재했다.
그러면서 리비아 난민 수용소의 열악한 환경을 견디지 못한 이주민의 유입과 스페인과 인접한 모로코의 느슨한 해안경비 활동을 주된 원인으로 꼽았다.
한마디로 리비아 난민 수용소에서 빠져나온 시리아 난민들로 인해서 북아프리카에서 스페인으로 들어오는 난민 또한 급증했다는 분석이다. 사실일까?
2012년 이후 스페인으로 들어온 난민 신청자 수는 매해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다. (사진=CEAR 제공)
스페인난민구호기관(CEAR)에 따르면 스페인으로 들어온 난민 신청자는 2012년 2588명에서 매해 오르다가, 2015년엔 처음으로 1만 명을 돌파한 1만4881명에 달했다. 2016년에는 1만5755명, 2017년에는 3만1120명으로 직전 년도 보다 두 배 가까이 급증했다.
이 같은 배경에는 스페인을 찾는 베네수엘라 국적을 가진 난민자의 급증이 영향을 미쳤다.
베네수엘라 출신의 난민은 2017년 1만350명으로 2016년(3960명)보다 세 배 가까이 늘어났다. 2015년 베네수엘라 출신의 난민이 596명에 불과했던 것을 고려한다면 최근 3년 사이에 눈에 띄게 급증한 것이다.
베네수엘라 난민들은 자국의 악화된 경제 상황과 이로 인한 물가 상승으로 스페인을 찾았다.
이들은 특별한 서류 없이 항공기를 타고 스페인에 들어올 수 있고 스페인 언어 또한 사용하고 있어 타 국가 출신의 난민보다 현지에 적응하는 데 유리하다.
보고서에서 언급한 시리아 출신의 난민은 2015년 5724명에서 2016년 2975명으로 절반 가까이 줄어들다가, 2017년에 4225명으로 다시 늘어났다.
시리아 출신의 난민은 2011년 내전이 발발한 이후 타 국가로 피난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현지 전문가는 리비아 캠프의 열악한 환경 때문에 북아프리카에서 스페인으로 들어오는 난민이 2017년에 급증했다고만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선을 그었다.
모레노 교수는 스페인 난민이 늘어나는 배경에 또 다른 이유로 스페인 경제의 회복세를 꼽았다. 콤플루덴세 대학은 난민자들을 대상으로 교육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스페인 마드리드 콤플루덴세 대학(Complutense University) 에스테반 산체스 모레노(Esteban Sanchez Moreno) 교수는 "다양한 요인이 있는데 이 중 2017년에 들어서 정부가 한 일이 아쿠아리우스 난민 구조선을 받아준 것"이라며 "당시 스페인 현지뿐만 아니라 대외적으로 (난민 포용에 대해 긍정적인) 전환점이 됐으며 이 모습이 난민들 사이에서 우호적인 이미지로 비쳤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일부 시리아 출신의 난민들이 스페인으로 오는 것은 이곳에 정착하기 보다는 독일로 향하는 경유지로 보고 있다"며 "이들이 북아프리카 지역을 통해 들어오는 또 다른 이유로는 (지금으로선) 다른 경로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전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현지 전문가는 북아프리카에서 스페인으로 들어오는 난민들이 많아지는 이유로 유럽연합(EU)의 난민 규제를 꼽았다.
카라스코 책임자는 "난민들이 스페인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받아주고 배려해줘야 하는데 무조건 적응하라고 밀어붙이는 것은 옳지 않다"며 난민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언론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사진=노컷뉴스)
프란시스코 칸시노 카라스코(Francisco Cansino Carrasco) CEAR 책임자는 "리비아 캠프가 다른 캠프의 환경보다 열악한 것은 맞다"면서도 "하지만 EU가 유럽으로 향하는 난민들의 유입을 줄이기 위해 규제에 나서면서 가까운 문이 닫히고 먼 문이 열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유럽으로 쉽게 들어올 수 있는 경로가 막히면서 난민들이 더 큰 위험에 노출되고 있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앞서 EU는 2016년 3월 터키와의 난민 대책 특별정상회의에서 불법 이주민을 골라내 터키로 보낸다는 합의를 한 바 있다.
이 때문에 난민들이 서유럽으로 갈 때 이용했던 '발칸 루트'가 막히면서 지중해를 거쳐 이탈리아로 향하는 난민이 크게 늘었다.
보고서가 제출된 해인 2017년 7월에는 EU가 리비아 지역 해안 감시를 강화함에 따라 난민들은 경로를 바꿔 북아프리카를 통해 스페인으로 향했다.
다만 모로코의 해안 경비가 느슨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현지 전문가 모두 동의했다.
이에 대해 국회인권포럼 대표 의원으로 등록된 홍일표 의원실 측은 "해외 출장 결과 보고서에 대한 내용은 전혀 알지 못한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결과 보고서는 아시아인권의원연맹 측에서 작성했기 때문에 관련 질문은 그 쪽에 문의를 하는 편이 낫다"고 책임을 돌렸다.
결과 보고서가 제대로 확인되지 않은 채 작성됐음을 시인한 것이다.
이 보고서를 작성한 아시아인권의원연맹 측은 "대표단이 현지 관계자와 면담을 나눈 내용은 우리 측에서 작성했지만, 스페인 현지 관련 사항에 대한 내용은 외교부에서 자료를 받은 것"이라며 "그 자료가 문제가 된다면 외교부 측에 전화를 하는 편이 나을 것"이라고 또 다시 책임을 회피했다.
쉽게 말하면 의원들이 난민 수용 정책 및 난민들의 처우 등을 현장 조사하기 위해 해외 출장에 나섰지만, 그 결과 보고서 내용 중 일부는 해당 기관의 자료만을 받은 뒤, 그대로 인쇄하고는 결과 보고서에 붙였다는 말이다.
관련 내용을 확인했는지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담당자는 오히려 "참고 자료로 들어간 것인데 이게 문제가 될 사안인지 잘 모르겠다"고 반문했다.
결과 보고서에 어떤 자료를 받아 첨부했는지에 대한 질문에도 "외교부에 정보공개청구를 해서 해당 자료를 받는 게 나을 것"이라고 짧게 답했다.
한편 아시아인권의원연맹 의원들은 지난해 과테말라에서 열린 총회에 1억 3000만 원 가까이 썼지만, 총회와 무관한 멕시코까지 들른 것으로 전해졌다.
국회 소규모 단체 중 정부 보조금을 받는 단체는 12곳으로 이 단체의 지난해 해외 출장은 15건에 달했다고 한다. 이 가운데 보고서를 공개하는 경우는 없었다.
이에 대해 국회 혁신자문위원회는 2019년 단체 보조금 예산을 기존 29억 원에서 12억 원으로 줄이라고 권고했지만, 국회는 24억 원으로 소폭 줄인 채 예산을 편성했다.
인터넷 표절검사 사이트에서 해당 보고서의 표절 여부를 검사한 결과, 표절률은 16%에 이르렀다.
* 숨겨진 적폐, 국회의원 '연구활동' 심층해부 기획페이지 바로 보기 [클릭]※ 본 기획물은 한국언론학회-SNU 팩트체크 센터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