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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체육계 최악의 성범죄…침묵과 거짓이 화를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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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美 체육계 최악의 성범죄…침묵과 거짓이 화를 키웠다

    약 30년동안 수백명의 미국 여자 체조선수를 성추행·성폭행한 혐의로 최대 300년 징역형을 선고받은 래리 나사르 (사진=노컷뉴스/gettyimages)

     


    2012년 세상을 떠난 조 패터노 전 펜실베니아 주립 대학교 풋볼 감독은 미국 대학 1부리그 풋볼 최다승(409경기) 기록을 보유한, 미국대학체육협회(NCAA)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감독 중 한명으로 평가받았던 지도자다.

    하지만 그는 2011년 불명예 퇴진했다. '미국판 도가니 사건'으로 불리는 제러 샌더스키 전 펜실베니아 주립대 코치의 아동 성폭행 사건이 불러 일으킨 후폭풍이었다.

    샌더스키 전 코치는 1996년부터 15년동안 10대 소년 10명을 대상으로 무려 52건에 달하는 성폭행 범죄를 저질렀다. 2012년 징역 30~60년형을 선고받았다.

    패터노 전 감독은 이같은 사실을 알고도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 2001년 샌더스키의 범행을 목격한 또 다른 코치로부터 제보를 받았지만 대학 본부에만 알렸다. 그들은 한통속이 돼 침묵했다. 샌더스키는 이후에도 계속 범행을 저질렀다.

    패터노 전 감독은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풋볼 감독을 넘어 교육자로서 존경받았던 명예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그의 학교 경기장 앞에 전시된 동상도 철거됐다.

    미국 체육계는 2016년에도 추악한 성폭행 스캔들로 시끌벅적 했다.

    미국 체조 국가대표팀과 미시건 주립 대학교 체조팀에서 주치의를 지낸 래리 나사르가 1990년대 초부터 2016년까지 약 30년동안 300명이 넘는 여자 체조선수를 성추행·성폭행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변호사이자 전직 체조 선수였던 레이첼 덴홀랜더가 2016년 처음으로 나사르의 범행을 폭로했다.

    이듬해부터 리우올림픽 여자 기계체조 4관왕 시몬 바일스를 비롯한 100여명의 전·현직 선수들이 증언을 쏟아냈다. 나사르는 최대 300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미국체조협회는 2015년 6월 나사르의 범행 사실을 알고도 숨기기에 급급했다. 돈을 주고 폭로를 막으려고 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후폭풍은 거셌다. 미국체조협회장과 미국올림픽의원회 위원장을 비롯한 고위 관계자 다수가 나사르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미국체조협회는 피해 보상금을 감당하지 못하고 파산 신청을 했다.

    미국 언론 PBS의 작년 12월 보도에 따르면 미국체조협회는 2015년 6월부터 나사르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동시에 나사르를 보호했다. 나사르가 대표팀과 동행할 수 없는 처지가 되자 그가 아파서 불참하는 것으로 입을 맞췄다. 이같은 거짓말을 먼저 제안한 것은 나사르였고 협회가 이를 받아들였다.

    나사르는 2015년 6월 이후 14개월동안 대표팀을 떠나 미시건 주립 대학 등에서 범행을 이어갔다.

    미국체조협회의 거짓말은 작년 1월 진천선수촌에서 벌어졌던 촌극을 떠올리게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평창동계올림픽 선수단 격려차 진천선수촌을 방문한 자리에 심석희는 없었다. 대한빙상경기연맹은 심석희가 감기몸살에 걸렸다고 거짓 보고를 했다. 사실은 조재범 전 코치로부터 폭행을 당한 충격으로 선수촌을 떠나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제리 샌더스키와 래리 나사르 사태가 더욱 충격적이었던 이유는 추악한 범죄 사실을 알고도 친분 때문에, 혹은 자기 밥그릇 때문에 침묵으로 일관했던 주변인 때문에 피해자만 더 늘어났기 때문이다.

    조재범 전 코치의 성폭행 의혹이 불거진 후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체육회는 황급히 대책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실효성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달린다.

    여준형 젊은빙상인연대 대표는 성추행·성폭행으로 인해 고통받은 피해자가 침묵하는 이유에 대해 "가해한 코치나 임원들은 죄의식 없이 그냥 계속 지도 생활을 하고 연맹과 협회에 남아있는다. 피해자들은 보복이 두려워 말을 못하고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고 있다"고 말했다.

    체육계의 폐쇄적인 조직 문화와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어떤 대책이 나와도 적폐를 무너뜨리기가 어렵다. 성적과 성과가 최우선으로 여겨지고 제 식구 감싸기에 급급한 체육계의 온정주의를 먼저 타파해야 한다. 더 이상 침묵하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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