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스카이캐슬' 포스터(왼쪽). 지난 2016년 10월 31일 최순실씨가 서울 서초동 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자료사진·JTBC)
어둠을 몰아내는 100만 촛불이 광화문광장 일대를 뒤덮은 지난 2016년 11월 소설가 소재원은 CBS노컷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강남에 살다보면 제2, 제3의 최순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상류층 입시 경쟁을 다뤄 화제를 모으는 드라마 '스카이캐슬'을 최근 접하면서 박근혜정권 국정농단 중심에 섰던 최순실씨를 떠올린 이유다.
소재원은 17일 전화통화에서 "당시 인터뷰로 최순실을 비판한 지점은 어마어마한 재산을 숨긴 데 있다기보다는 그 상상을 초월하는 온갖 부정을 저지르면서도 스스로 당연하다고 여겼다는 데 있다"고 운을 뗐다.
"지난 2010년부터 6년가량을 강남에서 살았다. 그곳 생활권에 사는 사람 대다수는 자기들이 걸어 온 길을 자식들이 따라 걷기를 바란다. 부와 권력의 대물림이다. 그런 것들을 원하고 행하다보니 그들 사이에 도덕적인 관념이 사라지는 광경을 어렵지 않게 봤다."
그는 "한 예로 유명 학원에 자식을 들여보내야 할 때 (입학) 정원이 다 찼더라도 새치기는 기본이다. 더 돈 많고 힘센 부모를 둔 아이는 그렇게 들어간다"며 "아이 교육과 관련해 양심을 버리는 부모들 모습은 일상이었다. 윤리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 그곳이라는 생각도 많이 했다"고 회고했다.
소재원은 "드라마 '스카이캐슬'을 공감하면서 보고 있다"고 했다. 그는 "극중 스카이캐슬이라는 공간으로 상징되는, 대물림을 원하는 상류층 부모들 안에 똬리 튼 문화를 정확히 짚어낸 깊이 있는 취재가 돋보인다"고 총평했다.
"작가가 현실 반영을 참 잘했더라. 나 역시 실제 그러한 환경을 겪으면서 부모들 문제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강남에서 나온 뒤로 내 아내가 임신했을 때 그들을 다시 만난 적이 있다. '아이들 인맥을 유치원 때부터 만들어줘야 하니 임대아파트를 구해서라도 강남으로 다시 오라'더라. 나는 재산이 있고 해서 (임대아파트 입주) 조건이 안 된다고 했더니 '세상 모르는 소리'라는 답이 돌아왔다. 법의 허점을 꿰뚫고 있는 사람들. 권력이 있으면 편법 입학도 가능하겠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절감했다."
앞서 언급한 2년여 전 인터뷰에서도 소재원은 아래와 같이 고발한 바 있다.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공부로 대입 준비하는 친구들은 돈은 많은데 연줄이 없는 집안 아이들이다. 연줄이 어느 정도 있는 친구들은 공부 안 한다. 어떤 식으로든 대학에 갈 수 있으니까. 그들은 그게 죄라고 생각 안 한다. 그들 사이에서는 당연한 거니까. 최순실도 자기 딸(정유라)을 그렇게 학교에 넣는 것을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했을 것이다."
◇ "시험 90점 받아도 '왜 이것 밖에 못 했냐' 혼나는 아이들"
드라마 '스카이캐슬' 스틸컷(사진=JTBC 제공)
소재원은 "그러한 부모들이 아이들 양심을 죽이고 있었다"며 질타를 이어갔다.
"내 아이 친구는 경제적 환경이 비슷하거나 더 나은 조건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 자식이 자기보다 못난 조건을 지닌 아이에게 끌리는 일은 있을 수 없다는 논리다. 부모들은 그렇게 가르치고 아이들은 그렇게 학습하고 있었다."
결국 "사람을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데 소재원의 비판은 방점을 찍고 있었다. 그는 "그러한 부모들 밑에서 아이들은 항상 만족을 모르고 살고 있었다"며 설명을 이어갔다.
"아이들은 시험에서 90점 받아도 부모에게 칭찬받지 못하고 '왜 이것 밖에 못 했냐'고 혼난다. 그러다보니 아이들은 현실 세계에서 모든 것이 채워지더라도 채워진 것을 모르고 항상 부족해 하는 모습을 보였다."
소재원은 "강연 등으로 강남권 학생들이나 대기업 사원들을 만나보면 내 이야기에 공감하지 못하는 분위기를 매번 느낀다"며 "철학이라고 할 것도 없이 '우리는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행복은 단순한 구조인데 우리는 너무 복잡하게 이야기한다' '90점이면 충분히 잘했으니 다음에는 80점 받아도 괜찮다'는 말을 하면 나를 의아하게 바라보는 경우가 굉장히 많았다"고 했다.
"내가 강남을 벗어난 이유도 자기네 욕망을 자식들에게 강요하는 분위기를 너무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최근 아내와 상의해 경기 김포에서 다시 다른 곳으로 이사했는데, 김포 역시 놀랄 정도로 '강남 스타일'을 따라 하려는 현상을 봤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공부보다 삶의 질이 중요할 텐데, 아이를 위해 3년 뒤에는 아예 고향으로 내려가기로 결정했다."
그는 "강남으로 대표되는 기득권층보다 더 무서운 것은 그들을 따라가려고 발버둥치는 주변 사람들"이라며 "부모들 욕망의 대상이 된 아이들을 볼 때마다 몹시 안쓰럽다. 상대를 인정하고 서로 도우라고 가르치지 않고, 상대를 무시하고 짓밟아야 한다고 가르치는 살풍경을 직접 목격한 사람으로서 나만이라도 그렇게 아이를 키우지 말자 다짐했다"고 역설했다.
"과거 강남에 살면서 사람들 만날 때마다 항상 이야기했다. '그렇게 키우면 아이가 행복하겠나'라고. 그러면 되돌아오는 말은 대부분 '멍청한 소리' '세상을 몰라서 하는 말'이었다. 드라마 '스카이캐슬'을 보고 있을지 모를 그들에게 다시 한 번 당부하고 싶다. 앞으로 부모 없는 세상에서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텐데, 그때까지도 '자립' '협력'이 아니라 '상대를 밟고 일어서는 것만 가르치겠냐'고. 그랬을 때 자식들이 세상을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져보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