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화문 교보생명빌딩에 걸린 '남상락 자수 태극기'를 복원한 모습. (사진=최영주 기자)
KBS 3·1 운동 100주년 기념 '독립선언서 국민낭독 프로젝트'에 나온 '이상한 태극기', 서울 광화문 교보생명빌딩에 걸린 '수상한 태극기'.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태극기와는 다른 모습에 시민 제보까지 이어지는 해프닝이 일었다. 그렇다면 이상한 태극기의 정체는 무엇일까.
◇교보생명빌딩·KBS '독립선언서 국민낭독 프로젝트' 속 '남상락 태극기'
3·1운동 100주년을 맞은 지난 3월 1일, 서울 광화문 교보생명빌딩에 수상한 태극기가 하나 걸렸다. 삐뚤빼뚤한 데다 사방 모서리 대각선에 있는 검은색 건·곤·이·감의 위치도 다르다. 교보생명빌딩에 걸린 이상한 태극기는 KBS 3.1 운동 100주년 기념 '독립선언서 국민낭독 프로젝트'에도 등장한다. 이에 CBS노컷뉴스에 시민 제보까지 들어왔다. 무려 공영방송에서 "태극기 4괘 일부러 바꾼 건지, 실수한 건지"라며 의문을 제기했다.
시민들의 제보까지 낳은 이 수상한 태극기의 정체는 '남상락(南相洛) 자수 태극기'다.
'남상락 자수 태극기'는 현재 충청남도 천안시에 있는 독립 기념관에 소장된 일제 강점기 때의 태극기다.
한국학중앙연구원 향토문화전자대전에 따르면 남상락 자수 태극기는 1919년 독립운동가 남상락 선생(1892~1943)이 충남 당진 지역의 4·4 독립 만세 운동 때 사용한 태극기이다. 남상락 선생은 충남 당진군 대호지면에서 4·4 독립 만세 시위를 주도하다 체포됐다. 시위 때 사용된 태극기는 남상락 선생이 죽을 때까지 소중하게 간직했는데 1986년 10월 아들 남선우 씨가 독립기념관에 기증했다.
'남상락 자수 태극기'는 이름 그대로 남상락 선생의 부인 구홍원 여사가 직접 수를 놓아 만들었다. 가로 44㎝, 세로 34㎝ 크기의 태극기는 흰색 명주 천에 색실로 수를 놓았다. 직접 짠 명주에 손바느질한 희귀한 태극기로 사료적 가치가 크다고 판단해 지난 2008년 8월 12일 등록문화재 제386호로 지정되기도 했다.
지금의 태극기와 모습이 다른 이유는 1949년 10월 '국기제작법'을 발표해 태극기의 제작법을 통일시키기 전까지 사괘와 태극양의의 위치를 혼동해 사용했기 때문이다. 1948년 정부수립을 계기로 만들어진 규정을 통해 현재는 규격을 지키고 있다.
◇또 다른 수상한 태극기…'김구 서명문'·'대한민국 임시의정원'·'진관사 소장' 태극기
사진 위에서부터 '남상락 자수 태극'·'김구 서명문'·'대한민국 임시의정원' 태극기 (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향토문화전자대전)
광화문을 수놓은 수상한 태극기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외교부청사 외벽 '김구 서명문 태극기'와 세종문화회관에 걸린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태극기', 현대해상빌딩에 걸린 '진관사 소장 태극기'가 그것이다. '진관사 소장 태극기'를 제외한 다음 태극기에 대한 설명은 향토문화전자대전을 참고했다.
'김구 서명문 태극기' 역시 사괘와 태극양의의 방향이 현재와는 반대로 배치되어 있다. 역시나 해당 태극기에도 문의가 들어왔다고 한다. 잘못 게양한 것 아니냐는 내용으로 말이다.
'김구 서명문 태극기'(등록문화재 제388호)는 대한민국 임시 정부 주석 김구 선생(1876~1949)의 서명문이 있는 태극기로, 태극기 바탕 오른쪽에는 광복군에 대한 우리 동포들의 지원을 당부한 김구 선생의 친필 묵서가 세로로 쓰여 있다. 다음은 그 내용이다.
"망국의 설움을 면하려거든, 자유와 행복을 누리려거든, 정력과 인력과 물력을 광복군에게 바쳐 강노말세(强弩末勢)인 원수 일본을 타도하고 조국의 광복을 완성하자."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태극기'(등록문화재 제395호)는 1923년 중국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 의정원에 걸었던 태극기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 국무 위원을 지낸 김붕준 선생과 그의 아내 노영재 여사가 만들었다. 노영재 여사는 상하이에서 손으로 넥타이를 만들어 팔아 그 기금으로 애국지사들의 뒷바라지를 하고 태극기를 만드는 비용에 사용했다고 한다.
제100주년 삼일절 기념식에 모습을 드러낸 '진관사 소장 태극기' (사진=청와대 제공)
이름도 생소한 '진관사 소장 태극기'는 지난 1일 '제100주년 3·1절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행진할 당시 사용됐다. '진관사 소장 태극기'는 지난 2009년 5월 서울 은평구 진관사 칠성각 해체 보수 과정에서 발견된 것으로, 1919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일장기에 덧그려 제작된 '진관사 소장 태극기'는 1919년 3.1 만세운동 당시 가장 널리 사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도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에는 '뉴욕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 게양 태극기', 역사박물관에는 '한국광복군 서명문 태극기' 등이 걸렸다.
광화문에 걸린 이상한 태극기들은 모두 일본에 빼앗긴 우리나라를 되찾기 위한 독립운동가의 열망이 어린 것이다. 이번 '수상한 태극기' 논란은 우리에게 잊힌 3.1 운동의 한 자락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의미 있는 해프닝으로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