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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 죄 아니다"…진일보 평가 받는 이유는?



법조

    "낙태, 죄 아니다"…진일보 평가 받는 이유는?

    위헌 아닌 헌법불합치 한계도…재생산권 논의 필요

    11일 오후 낙태죄 처벌 위헌 여부를 밝히 재판이 열린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심판정에 재판관들이 입정하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66년 만에 낙태(임신중지)가 '범죄'의 카테고리에서 떨어질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그간 헌재의 낙태 관련 논의는 태아의 생명권과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저울질하는 데 주력해왔지만 이번 결정문은 임신·출산의 국가 책임과 재생산권 논의 등도 담고 있어 더욱 진일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11일 헌법재판소가 형법상 자기낙태죄와 의사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한 주된 논거는 낙태죄의 보호법익(태아의 생명)이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것이다.

    이에 헌재는 두 법익의 균형을 비교하며 태아가 모체를 떠나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시점이자, 여성이 자기결정권을 행사하는 데도 충분한 시간이라고 고려한 '임신 22주'를 기준점으로 제시했다.

    낙태 가능 주수를 정한 부분만 놓고 보면, 기존에 임신중지 비범죄화에 대한 두 차례 헌법소원이나 학계·시민사회 논의 과정에서 비판했던 지점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

    생명옹호론과 선택옹호론을 대립시켜 '적절한' 중간지점을 찾는 것은 여전히 여성의 몸을 통제 가능한 대상으로 본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낙태죄 전면 폐지를 촉구하는 쪽에서는 이러한 이분법적 사고로는 '불법이지만 처벌은 거의 없었던' 한국의 복잡한 낙태 현실을 담아낼 수 없다고 주장해 왔다.

    지난해 8월 헌재에 의견서를 제출한 430명의 교수와 연구진은 낙태죄 폐지 근거가 단순히 여성의 낙태권리를 옹호하는 차원을 넘어 포괄적인 재생산권을 반영해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재생산권은 2010년 양현아 서울대 교수가 한국여성학 제26권에 투고한 '낙태에 관한 다초점 정책의 요청 : 생명권 대 자기결정권의 대립을 넘어' 논문에 자세히 기술돼 있다.

    성적 관계에서의 평등과 피임·임신·출산·임신중단 등 전반적인 재생산활동에 대한 자기결정권, 의료·정보 서비스 접근권 등을 말한다.

    해당 논문에서 양 교수는 "재생산권리라는 인권의 틀 안에서 모순되는 필요들을 고려해 함께 보정해야 한다"며 "여성의 성교에서 출산까지 연속적이고 통합적인 과정을 좀 더 분명한 권리의 틀로 포섭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헌재 결정에는 기존의 이분법적 사고에서 한 발 더 나아간 고민이 담겼다. 헌재는 현행 모자보건법상 낙태 정당화 사유에는 '다양하고 광범위한 사회적·경제적 사유에 의한 낙태갈등 상황'이 전혀 포섭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학업이나 직장생활 등 사회활동에 지장이 있을 것에 대한 우려 △소득이 충분하지 않거나 불안정한 경우 △자녀가 이미 있어서 더 이상의 자녀를 감당할 여력이 되지 않는 경우 △부부가 모두 소득활동을 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어느 일방이 양육을 위하여 휴직하기 어려운 경우 △상대 남성과 교제를 지속할 생각이 없거나 결혼 계획이 없는 경우 등 다양한 예시를 들었다.

    임신과 출산, 육아가 여성의 삶에 근본적이고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과 태아가 임신한 여성의 협력을 통해서만 보호 가능한 존재라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또한 생명에 대한 책임이 여성에게만 전가할 문제가 아니며 국가의 책임이라는 점도 서술했다.

    그러나 헌재는 이를 근거로 위헌이 아닌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기 때문에, 앞으로 전개될 국회 입법 논의 과정에서는 임신 주수와 낙태 사유에 따라 허용 여부를 따지는 치열한 공방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한 여성 변호사는 "이번 헌재의 결정을 매우 환영한다"면서도 "국회에 공을 넘길 때 여전히 임신중지와 관련해 친부를 포함시키는 등의 요구는 없었기 때문에 결국 임신의 책임이 여전히 여성에게만 남겨지게 되진 않을까 우려된다"고 밝혔다.

    한국여성단체연합 김영순 공동대표는 "헌법불합치 결정의 한계가 있긴 하지만 큰 틀에서는 단순위헌의 취지가 잘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며 "낙태는 찬반 갈등이 매우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에 그 구조 속에서 헌재가 최선의 선택을 한 것으로 보여 환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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