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동열 전 감독과 스티브 윌슨 뉴욕 양키스 국제 담당 총괄 스카우트 (사진=연합뉴스 제공)
현재 메이저리그 뉴욕 양키스에서 일하는 이치훈 국제 담당 스카우트는 몇년 전 구단 수뇌부로부터 "D.Y SUN과 같은 선수를 찾아보라"는 주문을 받았다.
이치훈 스카우트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처음에는 'D.Y SUN'이 누구인지 알아채지 못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D.Y SUN'은 선동열 전 감독의 이름을 영문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뉴욕 양키스는 오래 전부터 한국의 선동열 전 감독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양키스가 선동열 전 감독에게 처음으로 영입 제의를 던진 시기는 198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선동열 전 감독은 1981년 미국 오하이오주 뉴워크에서 열린 제1회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 대회에서 한국을 우승으로 이끌었던 주역이다. '무등산 폭격기'로 이름을 날린 한국 야구 레전드의 화려한 등장을 알린 대회였다.
양키스는 제1회 대회를 통해 선동열이라는 유망주에 푹 빠졌다. 바로 영입 의사를 전했지만 불발됐다. 양키스는 포기하지 않았다. 1984년 또 한번 선동열 전 감독에게 제안을 던졌다.
이치훈 스카우트는 "양키스 구단은 1981년 미국 오하이오에서 오퍼를 했고 1984년 올림픽이 끝난 뒤에는 계약금 50만 달러를 제안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는 메이저리그 드래프트에서 1차 지명된 선수들이 15만 달러 정도를 받던 시절이다. 하지만 양키스는 당시 1차 지명 선수들보다 선동열 감독에게 더 빠져 있었다"고 말했다.
'국보'로 불렸던 선동열 전 감독의 위상은 그 정도로 대단했다.
하지만 선동열 전 감독은 병역 때문에 미국행을 포기했다. 국제대회 성적을 바탕으로 이미 병역 혜택을 받았지만 혜택을 받은 사람은 5년동안 국내에서 같은 업종에 종사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다.
끊긴 것 같았던 선동열과 뉴욕 양키스의 인연은 35년 만에 다시 이어졌다.
선동열 전 감독은 11일 청룡기 전국 고교야구대회가 열린 서울 목동구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내년 뉴욕 양키스의 스프링캠프에 참가해 메이저리그 선진 야구를 경험할 생각이다"라고 밝혔다.
양키스의 제안은 파격적이다. 선동열 전 감독은 현장 스태프와 프런트가 진행하는 회의에 모두 참석할 수 있다. 직접 선수를 지도할 자격도 주기로 했다.
양키스는 스프링캠프가 끝나고도 1년동안 선동열 전 감독이 양키스와 산하 마이너리그 구단을 오가며 미국 야구의 시스템을 충분히 경험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기자회견에 동석한 스티브 윌슨 국제 담당 총괄 스카우트는 "선동열 감독은 한국와 일본 야구를 다 경험했다. 양키스는 아시아와 미국 야구의 장점을 접목시킬 때 가장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믿고 있다. 양키스는 선동열 감독이 충분히 미국 야구를 경험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윌슨 스카우트는 양키스 구단이 선동열 전 감독을 미국으로 초청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그는 누구보다 선동열 전 감독의 위상을 잘 알고 있는 인물이다.
윌슨 스카우트는 1984년 LA올림픽 당시 캐나다 국가대표로 뛰면서 한국 대표팀 에이스 선동열의 재능을 보고 크게 감탄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내가 아마추어 레벨에서 본 최고의 투수였다. 당시 캐나다의 전력이 좋았는데 선동열 감독이 선발로 나오자 우리 벤치는 침묵에 빠졌다. 저런 투수가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재능을 갖춘 투수였다"고 말했다.
이어 윌슨 스카우트는 한가지 일화를 더 소개했다.
그는 "선동열 감독이 우리와 경기할 때 매이닝 사이드에서 롱토스를 했는데 공에 힘이 넘쳤다. 우리 선수들이 깜짝 놀랐다. 지금까지도 그런 롱토스를 본 적이 없다. 뭐라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정말 압도적이었다"며 웃었다.
선동열 전 감독은 양키스 캠프 방문을 계기로 소원을 성취할 기회를 얻게 됐다. 한국과 일본에 이어 미국 야구의 시스템을 보고 배우는 것이다.
선동열 전 감독은 "어릴 때부터 미국 선진야구를 배우고 싶었다. 장기적인 정규리그에서 투수를 어떻게 관리하고 키우는지, 여기에는 정답이 없다. 역사가 깊은 선진 야구는 우리와 어떻게 다른지 보고 올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편, 선동열 전 감독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1999년 일본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곤스에서 현역 마지막 시즌을 마치고 은퇴를 선언한 뒤 보스턴 레드삭스로부터 영입 제안을 받은 적이 있다고 밝혔다.
선동열 전 감독은 "은퇴를 발표하고 가족과 LA 여행을 갔는데 그곳에서 보스턴 관계자들을 만났다. 영입 제안을 받았다. 나는 은퇴했다고 했지만 그래도 해달라고 거듭 말하길래 가기로 마음 먹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메이저리그 진출의 마지막 기회는 결국 불발됐다. 에이전트가 협상을 벌이는 과정에서 금액차가 생겼다. 몸 상태도 100%는 아니었다.
선동열 전 감독은 "어깨와 팔꿈치는 이미 합격 판정을 받았는데 햄스트링과 무릎이 좋지 않았다. 또 이미 은퇴했는데 돈 때문에 흐지부지되는 모습은 좋지 않다고 생각해 인연이 아니구나 생각하고 접었다"고 말했다.
메이저리그 최고의 명문구단으로 손꼽히는 양키스와 보스턴으로부터 영입 제안을 받고도 미국 진출의 꿈을 이루지 못했던 선동열 전 감독은 마침내 자신의 오랜 소원을 성취하게 됐다.
선동열 전 감독은 "현대 야구의 흐름을 보고 배워서 국내 야구 발전에 조금이라도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