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가정폭력 사건을 다루면서 부실한 초동조치로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대응체계를 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는 한국여성의전화가 피해자와 유가족을 대리해 진정한 4건의 가정폭력 사건 등을 살펴본 결과를 11일 발표했다.
(이미지=연합뉴스)
이 가운데 2건은 피해자들이 각각 남편과 전 남편에게 살해된 사건이다. 이혼 전부터 남편의 가정폭력에 시달렸던 A씨는 이혼 후에도 지속적인 폭력과 협박을 당했다. 이 과정에서 A씨는 세 차례나 112 신고를 했고, 접근금지 명령도 신청했지만 결국 전 남편의 손에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B씨도 가정폭력을 문제로 이혼 절차를 밟던 도중 자녀를 보기 위해 집에 방문했다가 남편에게 구타와 강간 피해를 당했다. B씨의 신고를 받은 경찰은 남편에게 연락해 경고를 한 것으로 파악됐다. 신고 사실을 알게된 남편은 B씨를 찾아가 살해했다.
진상조사위는 위원회 활동 종료 기한이 임박한 탓에 이 사건들의 처리과정을 세세하게 살펴보지는 못했다. 다만, 경찰이 가정폭력 사건을 다루는 과정에서 어떤 허점이 있는지 파악해 개선 권고를 했다.
진상조사위는 가정폭력 사건 대응이 긴급하게 이뤄져야 함에도, 제도가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가해자로부터 피해자를 보호하는 조치가 이뤄지려면 '경찰신청, 검사 청구, 법원 결정, 경찰 집행'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이 과정이 길게는 10일 이상 걸리기도 한다는 설명이다.
진상조사위는 "보호조치를 필요한 시점에 적절하게 받지 못함으로써 피해자 보호체계에 큰 허점이 발생하고 있다"며 "관련 법령 주관부처인 법무부와 입법부의 제도 개선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경찰은 경찰청 예규인 범죄수사규칙을 개정해 가정폭력 사건에서 경찰의 책무는 피해자의 안전과 인권보호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조사 업무가 끝난 진상조사위가 이 같은 권고를 내놓은 데에는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가정폭력 문제에 보다 적극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문제 의식이 작용했다.
지난해 경찰에 접수된 가정폭력 신고 건수는 24만8660건에 달했다. 또 한국여성의전화가 2017년 한 해 동안 언론에 보도된 살인사건을 분석한 결과, 남편이나 애인 등 친밀한 관계에 있는 남성에 의해 살해된 여성은 85명이었다. 같은해 언론에 보도된 살인범죄 282건의 전체 피해자 중 31.9%에 달하는 숫자다.
진상조사위는 "지난해 가정폭력으로 경찰에 신고된 24만여 건 중 입건 처리 건수는 4만1720건에 불과하다"며 "나머지 20만여 사건은 형사적으로 입건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