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 심상정 대표(오른쪽)가 26일 여의도 국회 본청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준비단장인 김후곤 법무부 기획조정실장으로부터 조 후보와 관련된 의혹에 대한 소명을 직접 듣기 위해 만나 대화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간 주요 인사청문 후보자의 낙마를 정확히 예측해 온 정의당의 '데스노트'가 조국 법무장관 후보자에 앞에서는 머뭇거리는 모양새다.
여야 정당 중 유일하게 조 후보자 측으로부터 직접 소명까지 받았지만 복잡다단한 당내 고민 때문에 "인사청문회를 거친 후에 공식 입장을 밝히겠다"는 원론적인 답만 말하며 말을 아꼈다.
정의당은 26일 오후 법무부의 조 후보자 인사청문회 준비단과 만나 조 후보자를 둘러싼 각종 의혹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정의당은 부정입시 의혹 등 조 후보자 딸과 관련한 논란, 웅동학원과 관련한 각종 소송, 후보자 가족 간 부동산 등 각종 거래, 사모펀드 투자 등에 대해 질문을 하며 조 후보자 측의 설명을 들었다.
1시간45분 동안 진행됐지만 조 후보자 딸이 제1저자로 기재된 논문이 고려대 입학에 영향을 줬는지, 논문 첨부자료가 있는지, 장학금 수령이 위법행위인 것인지 등 기존에 언급됐던 딸과 관련된 의혹에 대한 답변이 충실히 이뤄지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의당 박원석 정책위의장은 조 후보자의 사모펀드 투자와 관련한 우회상장이나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로의 영향력 행사 등과 같은 의혹에 대한 답변도 충분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조 후보자가 자신을 둘러싼 각종 논란에 대해서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특정 정당에게만 모든 의혹을 소명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한 차례의 소명으로 상당한 의혹이 해소되거나, 정의당이 빠르게 입장을 정할 것이라는 기대는 크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날 일정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된 것은 정의당이 이번 정부 들어 낙마를 예측한 안경환, 조대엽, 박기영, 박성진, 김기식, 조동호, 최정호 등 주요 장관 후보자이 어김없이 장관직에 앉지 못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대안정치'(평화당 달당파) 등 모든 야당이 조 후보자 반대로 입장을 정한 상황에서 정의당만 결정하면 게임이 끝난다는 관측이 다수 제기되고 있었고, 정의당도 특정 현안에 대한 답을 내는데 뜸을 들이는 스타일이 아니기 때문에 이날 소명이 입장 정리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내다보는 시각이 많았다.
그러나 '청문회 후 최종 입장 정리'라는 원론적인 입장에 그쳤다.
사실 최근 정의당 심상정 대표의 메시지를 살펴보면 정의당의 주된 기류는 조 후보자에 대한 반대로 읽힌다.
심 대표는 이날 상무위원회의에서도 "국민들은 최근에 드러난 바, 특권 엘리트층의 삶을 여과 없이 살아온 조 후보자가 스스로 특권층의 벽을 허물고 기득권층의 저항을 뚫고 사법개혁을 밀고 갈 수 있는지 과연 그 적임자인지 의구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며 신뢰하기 어려운 인물이라는 입장을 냈다.
정의당 관계자도 "인사청문회 이후로 공식 입장을 발표하겠다고 했지만 지금까지 제기된 의혹이나 사실관계 만으로도 당내에서는 부정적인 기류가 더 강하다"며 "심 대표의 메시지도 계속 일관되지 않느냐"고 말했다.
그럼에도 정의당이 쉽게 공식 입장을 정하지 못하는 것은 민주당과 얽혀있는 선거공학 때문이다.
내년도 총선을 앞두고 선거제도 개편을 가장 앞서 주장하고 있는 정의당에게 민주당은 선거법 개정을 위한 최선이자 최대의 파트너다.
특히 이달 말로 활동시한이 종료되는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 선거법 개정안 표결이 상정된 상황이기 때문에 섣불리 조 후보자를 공격해 민주당을 적으로 돌리는 일이 부담스러운 것이다.
또 하나의 고민 지점은 과거 선거 때 마다 이뤄졌던 범진보 지지층 유권자들의 투표 성향이다.
정의당은 그간 주요 선거 때마다 지역구 투표에서는 민주당 후보를, 비례대표 투표에서는 정의당을 찍는 유권자들에 의해 상당한 표를 얻어온 덕에 지역구 의원보다 비례대표 의원 수가 더 많은 상황이다.
친문 성향의 유권자들이 등을 돌릴 경우 의석수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계산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입장 발표를 마냥 지연시키기에 상황이 녹록치만은 않다.
조 후보에 실망한 진보 성향이 짙은 골수 정의당 지지자들의 '왜 빨리 공식 입장을 내지 않느냐'는 항의가 빗발쳐 업무에 지장이 있을 정도다.
정의당 관계자는 "출근하자마자 수십 통의 항의 전화가 올 정도"라며 "민주당 생각하다가 자칫 당의 뿌리가 흔들릴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법제사법위원회 여야 간사 간 합의에 따라 다음 달 2~3일로 잠정 합의된 조 후보자의 청문회 날까지 정의당의 고민도 깊어질 전망이다.{RELNEWS:r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