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 표지와 배우 서지혜. (사진=민음사 제공, 자료사진)
영화 개봉을 앞둔 원작소설 '82년생 김지영'이 여전히 여자 연예인들의 '금서'로 취급받고 있다. 전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이 책은 어쩌다 3년 동안 '페미니즘' 서적이라는 이유 만으로 지탄의 대상이 됐을까.
배우 서지혜는 지난 26일 자신의 SNS에 '82년생 김지영' 표지가 담긴 독서 인증사진을 남겼다. "책 펼치기 성공"이라며 '#82년생김지영'이라는 해시태그도 첨부했다.
자신의 단순한 일상을 공유한 게시물이었지만 서지혜는 악성 댓글 세례를 받았다. 페미니스트 서적 인증에 실망했다는 내용부터, '페미니스트' 이미지로 돈을 벌려고 한다는 내용까지 각양각색 악성 댓글들이 서지혜를 비판했다.
결국 서지혜는 해당 게시물을 삭제하고 도시의 해질녘을 담은 풍경 사진과 함께 '말줄임표'를 남겼다. 이에 동료 배우 김옥빈은 "자유롭게 읽을 자유, 누가 검열하는가"라며 서지혜를 응원하기도 했다.
이 게시물에도 서지혜를 향한 공격은 계속되고 있다. 주된 지적은 서지혜가 '82년생 김지영' 독서 인증을 통해 스스로 페미니즘 성향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사실 '82년생 김지영'을 읽은 여자 연예인이 서지혜가 처음은 아니다. 소녀시대 수영, 레드벨벳 아이린 등도 '82년생 김지영'을 감명 깊게 읽었다고 밝혔다가 뭇매를 맞았다. 왕성하게 활동 중이었던 아이린의 경우, 일부 팬들이 얼굴이 담긴 사진을 오리거나 불태우는 등 과격하게 반발하기도 했다.
문제는 이런 비난이 거의 여자 연예인들에게만 한정된다는 것이다. '82년생 김지영'을 읽은 남자 유명인에 대한 비난은 여론에 반향을 일으키지 못할 정도로 없다시피하다. 국민 MC인 유재석을 비롯해 방탄소년단 RM, 노회찬 전 정의당 원내대표 등은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고 알려진 대표적 유명인들이다. 노 전 정의당 원내대표는 이 책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이종임 문화사회연구소 이사는 "이 책이 나온지 3년이 지났다. 그런데 아직도 이런 공격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심각한 상황"이라며 "'미투' 이후 현실에서는 조심하는 이들이 많아졌지만 온라인 상에서는 젠더 갈등이 감정과잉적인 의견 표출로 더욱 심화되고 있다"고 파악했다.
그러면서 "편향성이 짙어지고 있는 미디어 환경은 물론이고, 익명을 기반으로 한 온라인 상에서 잘못된 지지와 연대가 있다고 본다. 여성 연예인은 그들에게 가장 좋은 타깃이다. 이제는 왜 아직도 이런 흐름이 확산되는지를 알아봐야 할 때"라고 설명했다.
더욱이 시대 속 여성들의 목소리를 담은 '82년생 김지영'과 '페미니즘'은 부정적인 관점에서 다룰 만한 사안도 아니다. '82년생 김지영'은 이미 그 공감대를 인정받아 전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작품이고, 한국 사회에 불고 있는 '페미니즘' 바람 역시 인권 운동의 한 흐름으로 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철저히 자유 영역인 개인 취향이나 성향을 비난의 근거로 삼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개인의 독서 취향과 사회적 성향이 어떻게 그 자체만으로 비난 받을 수 있나. 단순히 페미니즘의 상징적인 서적인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고 해서 페미니즘 성향으로 단정 짓기도 어렵고, 그런 성향이라고 해도 비난 자체가 비합리적"이라며 "사실과 다르게 말하거나,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제대로 근거를 들어 지적할 수는 있겠다. 일부 남성들이 '여자가 말을 하는 시대'에 대한 위기감과 반감을 갖고 있고, 이에 따른 혐오적 표현으로 보인다"라고 진단했다. {RELNEWS:r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