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카카오내비 홈페이지 캡처)
"오빠, 안녕! 만나서 반갑데이! 내가 오빠 길 안내 해줄라고 왔다 아이가. 내 믿고 함 달려볼래?"
직장인 신모(30·여)씨는 지난 주말 운전을 하기 위해 승용차에서 내비게이션 어플리케이션인 '카카오내비'를 켰다가 불편한 감정을 느꼈다.
길 안내 목소리를 '경상도 사투리'로 설정했는데, 목적지를 입력하고 길 안내를 누르자 "오빠"라는 음성이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신씨는 "여자인 나한테 '오빠'라고 부르니 황당했다"면서 "재밌자고 만든 서비스 같기는 한데 여성 운전자를 배려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확인 결과 카카오내비로는 경상도 뿐 아니라 다른 지역 사투리로도 길 안내를 받을 수 있는데, 음성은 모두 여성이었다. 이를 두고 성차별적 인식이 깔린 서비스라는 비판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제기된다.
카카오내비는 경상도와 전라도, 강원도와 제주도 등 모두 네 지역의 사투리를 길 안내 음성 서비스로 제공하고 있었다. 각 서비스 명칭은 '애교많은 경상도 여동생', '터프한 전라도 아가씨', '천진난만한 강원도 소녀', '요망진 제주도 아지망'이었다.
이처럼 '사투리 안내 서비스'의 남성 음성 버전은 존재하지 않기에 해당 서비스를 선택한 운전자는 여성이든 남성이든 오로지 아지망·아가씨·소녀·여동생 등 여성의 목소리로만 안내를 받아야 했다.
다만 애니메이션 주인공이나 연예인을 성대모사한 다른 버전의 안내 서비스는 남성의 음성으로 제공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성 역할을 규정짓는 듯한 표현들로 설명돼 있다는 지적이다.
남성 목소리는 '명랑하고 정의감 넘치는', '혈기왕성, 모험심 많은', '믿음직한' 등의 표현으로 설명된 반면, 여성 목소리는 '밝고 상냥한', '상냥하고 똑똑한', '비밀이 많은 신비한' 등으로 소개돼 있었다. '여성 사투리 서비스'를 카카오내비 측의 기술적 착오라고 보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오는 대목이다.
전문가들은 성차별적 인식에서 출발한 서비스의 오류라고 진단했다. 한국사이버성폭력상담센터 서승희 대표는 "해당 서비스는 '여성은 친절하며 애교를 부리고, 남성은 운전을 하고 어떤 서비스를 이용하거나 돈을 내는 주체'라는 성 고정관념에 기반을 둔 것"이라며 "이 같은 서비스가 알게 모르게 우리 사회의 고정관념을 계속해서 강화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서비스도 기업 내부에서 여러 결재 과정을 거쳐 나왔을 텐데, 그 모든 승인 과정을 통과했다는 사실이 놀랍다"며 "기업이 사회적 책임 차원에서 본인들의 콘텐츠가 인권·성차별 이슈에서 잘못된 방향으로 가지 않게끔 가이드라인 등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림대 사회학과 신경아 교수도 "사투리 쓰는 우스꽝스러운 여성 목소리를 서비스 하는 것은 여성들에 대한 모욕적인 일일 수 있다"며 "운전자를 중년 남성층으로 가정하고 이들을 즐겁게 할 만한 목소리나 내용을 제공하는 것 같은데, 실제로 그런 것에 대해서 불쾌감을 느끼는 운전자들이 많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이런 지적에 대해 카카오내비 측은 "남여 모든 이용자들이 운전 시간 동안 즐거운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캐릭터, 개그맨 등 다양한 버전으로 음성을 제공하고 있다. 다른 의도는 전혀 없다"며 "이용자들의 다양한 의견들을 서비스에 반영해 나가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