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공유(사진=매니지먼트 숲 제공)
'82년생 김지영'으로 3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한 배우 공유는 "(김지영 역을 맡은) 정유미 씨가 다한 영화다. 저는 거들었을 뿐"이라고 했다. 지나치게 겸손한 말이다. 공유가 연기한 정대현 역은 아내 지영이 겪는 아픔을 통해 사회적 불평등을 깨닫고 변화해 가는 남성이라는 점에서 몹시 중요하다. 이 캐릭터 비중이 원작에 비해 눈에 띄게 커진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으리라.
드라마 '도깨비' 등으로 세대와 성별을 아우르는 높은 인지도를 지닌 그가, 원작 소설과 마찬가지로 일각의 근거 없는 비난을 감내하고 있는 영화 '82년생 김지영'에 출연한 데는 '위로'와 '상식'이 큰 몫을 했다.
최근 서울 삼청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만난 공유는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는 그 위로가 무엇인지 잘 정리가 안 됐다"며 말을 이었다.
"배우로서, 아들로서… 제 역할이 있잖아요. 사람들로부터 '너만 왜 그러냐?'는 말을 듣지 않으려고 혼자 속으로 생각하고, 상처받아 온 것들이 있죠. 그건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러한 상처가 쌓이다 보면 극중 지영이처럼 아픔을 겪을 테니까요."
공유는 "시나리오를 다 읽고 덮자마자 바로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했다.
"전화를 자주 안 하니까 어머니는 그 자체만으로도 '무슨 일 있냐?'고 물으시더라고요. 제가 '영화 시나리오를 봤는데 울었지 뭐야… 나 어떻게 키웠어?'라고 되물었죠. 어머니에게 '82년생 김지영' 줄거리를 이야기했더니, 제가 왜 그런 질문을 했는지 이해하신 것 같았어요. 어머니가 '잘 컸구나'라고 하시더군요."
그는 "어머니의 삶도 궁금했다"며 "마흔한 살이 돼 그것을 처음 알았다는 사실이 창피했다"고 부연했다.
"자기네들이 살고 배웠던 시대의 당연했던 정서를 그대로 대물림하지 않고 자식 세대가 더 나은 삶을 살도록 해 준 게 감사했어요. 그러한 감정들이 이 영화를 본능적으로 선택하도록 이끈 건 아닌가 생각합니다. 김지영이라는 사람을 따라가다 보니 주변이 보이고 이 사회가 보이기 시작하고, 그렇게 되게 자연스럽게 흘러갔던 것 같아요."
공유는 자신이 연기한 정대현 캐릭터를 두고 "스스로 인지하지 못해 몰랐던 부분도 많지만, 적어도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자세를 갖춘 인물"이라며 "모든 건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것 같다. 저 역시 이 영화를 하면서 대연과 비슷한 감정을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 "마음에서 우러나는 정서 쉽게 전달하는 게 나의 역할"
영화 '82년생 김지영' 스틸컷(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그는 "이번에 '맘충'(육아하는 여성을 비하하는 혐오 표현)이라는 단어를 처음 알았는데,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며 "이해가 안 가서 '누가 만든 거냐' '이걸 진짜로 쓰냐'고 물었다"고 했다.
"뉴스를 통해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읽는 사람들을 향한 일각의 비난이 폭주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죠. 안타까운 일입니다. 각자 살아 온 환경이 다르고 가치 판단 기준이 다르다는 사실을 외면하는 건 아닐까요. 저라는 사람이 지닌 상식 안에서 일방적인 비난은 결코 가치 있는 일이 될 수 없습니다."
사실 공유는 전작 '밀정'과 '부산행(이상 2016), '도가니'(2011) 등 시대 모순을 꼬집는 작품을 꾸준히 선택해 왔다. 이와 관련해 그는 "저를 너무 크게 봐 주시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며 설명을 이어갔다.
"저는 사회적 의제를 들고 일어날 만큼 대범한 사람이 아니에요. 제 직업이 배우잖아요. 마음에서 우러나는 정서를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쉽게 전달하는 것이 한 사람으로서, 배우로서 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유는 "이번 영화를 하면서 '위험할 수도 있는 선택을 했다' '용기를 냈다'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었다"며 "진짜 용기 있는 행동을 한 분들 앞에서 창피하다"고 했다.
"저 역시 여전히 부족하고 편협할 수 있어요. 다만 한 사람으로서 '나와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용기라고 생각합니다. 평소 많이 생각해 온 부분인데,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하면서 더 많이 생각하고 정리하기 위해 애쓴 것 같아요. 제가 그리 낙관적이고 희망적인 사람은 아니에요. (웃음) 냉소적인 면이 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소한의 희망은 가지려고 합니다. 그걸 뒷받침하는 것은 결국 다름을 인정하려는 용기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