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현 전 울산시장 측근 비리' 관련 하명수사 논란 속에서 검찰이 불기소처분한 김 전 시장 비서실장 비리 의혹을 둘러싼 검경간 갈등은 여전하다.
검찰은 김 전 시장 비서실장이 직권을 남용해 특정 레미콘업체에 특혜를 준 것이 아니라고 판단해 사건을 불기소처분했다.
경찰이 증거 부족 등 부실수사를 했다는 게 검찰이 내린 결론이다.
하지만 당시 경찰 수사를 되짚어보면, 김 전 비서실장이 가진 직무 권한으로 민원을 처리했다고 보기에는 상당 부분이 의문으로 남아 있다.
◇ 사건 발단은 레미콘 업체와 시공사 갈등 2017년 울산 북구의 한 아파트 건설현장에 레미콘을 공급하던 업체대표 김모씨.
김씨는 레미콘 타설 위치를 놓고 시공사와 갈등을 빚었다.
레미콘 타설 작업상 위치에 따라 비용 차이가 나는데 김씨는 다른 경쟁 업체가 자신보다 좋은 위치에서 타설하는 것에 문제를 제기했다.
6개월 동안 레미콘을 공급했던 김씨는 시공사와 계속된 갈등 속에서 결국, 그해 4월 12일 공급을 중단하고 공사 현장을 스스로 철수했다.
이후 김씨는 평소 친분이 있던 김기현 전 울산시장의 비서실장 박모씨를 찾아가 민원을 제기했다.
그리고 한 달 뒤, 민원이 해결된다.
5월 17일 김씨와 아파트 건설 현장소장은 레미콘 공급계약을 새로 체결했다. 6월 28일 레미콘을 다시 공급했다.
그것도 김씨가 원하는 타설 위치에서 물량도 더 많아졌다. 수억 원 상당의 레미콘 공급 건을 딴 거다.
지난 11월 28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울산시장 부정선거 등 친문케이트 진상조사위원회 1차 회의에서 김기현 전 울산시장이 참석해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 도시창조국장 사무실서 무슨 일이김씨가 비서실장 박씨에게 민원을 제기하자 바로 움직인 것은 울산시청 도시창조국장 이모씨.
이씨는 아파트 건설 현장소장을 자신의 사무실로 두 차례 불렀다. 한 번은 현장소장과 함께 본부장도 불려갔다.
이 자리에는 건축주택과장과 건축주택계장, 건축승인 담당 공무원이 동석했다.
김씨 민원 처리를 위해 아파트 준공 검사와 승인 권한을 가진 공무원들과 건설현장 관계자들이 한자리에 모인 거다.
여기에 대해 경찰은 공무원의 직무권한 남용으로 봤다.
도시창조국장 사무실내 특정 시공사 관계자만을 부른 상황, 아파트 인허가 관련 불이익이 언급되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경찰은 또 해당 민원에 대한 접수와 처리 부서가 건설도로과인데 건축주택과가 나선 것도 압력행사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부 시청 공무원들도 실무 현장을 언급하며, 경찰수사에 공감했다.
한 공무원은 "특정 하도급 업체의 민원을 처리하면서 국장이 자신의 사무실에 그 업체를 쓰는 시공사 관계자와 담당 공무원들을 함께 부른다는 자체가 정상적인 절차가 아니라는 건 공무원이 아니더라도 알 수 있는 상식 아니냐"고 했다.
그러나 검찰의 판단은 달랐다.
검찰은 시공사 관계자에게 구체적으로 김씨의 업체를 언급하지 않았고, 일부 참고인들이 '민원 처리 절차가 특별하지 않다', '박씨와 이씨의 행동이 특별하지 않았다'는 진술을 들어 위법성이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
◇ 조례를 근거로 지역업체 자재 납품 권장김기현 전 비서실장 박씨와 울산시청 도시창조국장 이씨가 이렇게 민원을 처리할 수 있었던 근거로 지역 업체 활성화를 위한 조례를 들고 있다.
이른바, '울산광역시 지역건설산업 발전에 관한 조례'
박씨와 이씨는 이 조례를 바탕으로 지역 업체 자재(레미콘) 사용을 권장했을 뿐, 납품을 강요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김 전 시장도 "지역 업체 참여를 적극적으로 권장하는 울산시 조례 지침에 따라 관련 부서가 정상적으로 업무를 처리한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검찰이 불기소처분한 이유는 이 부분 때문이다.
경찰이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를 입증하지 못했다고 밝힌 검찰은 지역 업체의 하도급을 권장하는 조례에 따라 이뤄진 행위로 판단했다.
즉, 박씨에게서 전달받은 민원에 대해 이씨가 현장소장을 불러 이야기하는 것은 직무 권한 내 행위라는 거다.
해당 조례의 목적에는 '지역 건설산업 및 지역 경제 활성화에 이바지하기 위함'이라고 명시돼 있다.
또 '지역건설산업에 참여하는 건설업자는 지역 건설산업체의 하도급 비율을 60% 이상' 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황운하 대전지방경찰청장.(사진=자료사진)
◇ "타설 위치 불만, 그 뒤에 누가 있길래"그렇다면 해당 아파트 공사 현장은 조례를 적용해야 할 정도로 울산업체들의 참여가 저조했던 곳일까?
당시 공사에 참여했던 업체를 통해 확인했다.
현장에는 김씨의 레미콘업체를 포함해 5~6곳이 시공사와 계약되어 있었다. 이 가운데 1곳만 경주지역 업체이고 나머지는 울산지역 업체였다.
공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후, 주로 투입된 레미콘업체는 3곳 이었는데 이 때도 경주 1곳, 김씨 업체를 포함한 울산 2곳 이었다.
문제가 된 민원은 김씨의 요구사항을 들어주는 것으로 비쳐지고, 지역 건설산업과 경제 활성화를 위한다는 조례 적용 취지도 무색할 수 밖에 없다.
민간인 시공사와 레미콘업체끼리 해결해야 할 계약과 납품 문제를, 관청인 시청이 끼어들어 압력을 행사한 것으로 비칠수 있는 거다.
이는 민원의 발단이 됐던 김씨가 시공사를 상대로 레미콘 타설 위치에 불만을 제기했던 부분에서 더 분명해진다.
시공사와 레미콘업체는 '갑'과 '을' 관계로, 타설 위치를 갖고 불만을 토로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게 건설업계의 공통된 반응이다.
업체들의 레미콘 타설 위치는 시공사가 공사 일정과 현장 상황에 따라 정하는 것으로, 시공사의 고유 권한이다.
한 건설업체 관계자는 "시공사가 직접 돈을 지급하고 원하는 레미콘업체를 선택하는 구조"라며 "업체들 입장에서는 고객과 다름없는 시공사의 계약을 따내려고 경쟁이 치열하다"라고 말했다.
다른 업체 관계자는 "타설 위치에 따라 레미콘 양이나 강도, 작업속도가 달라 비용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에 업체들이 선호하는 위치가 있다. 하지만 시공사가 원하는 대로 맞춰 공급해주는 게 우선이다"라고 했다.
이 때문에 레미콘 타설 위치에 불만을 품고 아파트 공사 현장을 스스로 빠져 나간 김씨가 다시 현장으로 돌아와 레미콘을 공급한다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당시 김씨와 같은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레미콘을 공급했다는 업체 관계자는 현장에 있던 사람들 모두 의아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어떻게 저런 일이 가능하냐, 김씨 뒤에 누가 있길래, 어떤 막강한 힘이 있길래, 이러한 일이 가능한지 다들 궁금해했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 조례 따라 처리했다는 민원, 절차도 의문 비서실장 박씨와 도시창조국장 이씨는 '울산광역시 지역건설산업 발전에 관한 조례'를 근거로 민원을 처리했다.
그렇다면 조례에서 명시된 업체 애로사항 처리 절차는 어떻게 될까?
조례에는 민원을 다룰 테스크포스(TF) 즉, 실무팀을 구성 운영하도록 돼 있다. 실무팀은 각종 자료 수집을 하고, 지역건설산업 발전위원회의 기능을 보좌한다.
실무팀원은 시 공무원과 건설관련 학계, 기관, 단체 등의 구성원으로 한다.
외부 인사의 참여를 보장하고 있는 거다.
박씨와 이씨가 조례를 근거로 민원을 처리했다지만 조례에 명시된 실무팀 운영이 없었다는 것이 경찰수사에서 드러났다.
◇ 레미콘 업체대표의 정치후원금 쪼개기
(사진=연합뉴스)
경찰은 레미콘 업체대표 김씨가 비서실장 박씨와 도시창조국장 이씨에게 골프 접대를 한 정황도 포착해 뇌물공여·수수 혐의를 적용했다.
박씨와 이씨가 김씨로부터 43만1천원과 34만7천원 상당의 골프 접대를 각각 받은 것으로 경찰은 파악했다.
문제는 골프 접대와 관련해 박씨가 일부 계산한 증거가 나오는 등 이들의 친분 관계가 확인되었을 뿐 민원 해결에 대한 대가성과 연결하기에는 부족했다는 거다.
실제 수 억원 상당의 레미콘납품 건을 딸 수 있도록 민원을 처리해 준 대가가 몇 차례 골프 접대라고 하기에는 논리적으로 빈약했다.
검찰도 불기소 결정을 하면서 평소 친분이 있었다는 간접 사실만으로는 고의의 입증이 부족하다면서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골프접대 부분에 대해 관련자들의 진술이 엇갈리는 등 명확한 증거가 없어 마찬가지로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경찰이 주목한 부분은 다른 곳에 있었다.
김씨가 지난 2014년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김기현 전 울산시장 후원회 회계책임자에게 2000만 원을 쪼개기 방식으로 후원한 것을 경찰은 포착했다.
경찰 조사에서 김씨는 지인들의 명의를 빌려 자금을 쪼개 후원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치자금법상 후원금은 500만 원을 넘지 않게 돼 있다.
수사결과에서 김씨가 김 전 시장 후원회에 후원금을 쪼개서 보낸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대가 등 그 이유에 대해 진술을 거부했다고 경찰은 밝혔다.
김씨는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
김 전 시장 측에 수 천만 원을 후원한 레미콘 업체대표 김씨는 민원 해결을 위해 김 전 비서실장 박씨를 찾아갔고, 도시창조국장 이씨의 도움을 받았다.
박씨와 이씨의 인사권을 가진 김 전 시장은 후원회를 통해 들어온 김씨의 후원금 등 각종 정치자금과 그 관리에 대해 모르는 사실이라고 밝힌 바 있다.
레미콘 사건을 둘러싼 '증거 부족으로 혐의를 인정할 수 없는 사안'과 '공무원 직권 남용을 통한 특혜'를 놓고 검경이 충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