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취객을 제압하다 상해를 입힌 혐의로 기소된 119구급대원의 변론을 맡은 박형윤 변호사가 CBS노컷뉴스와 만나 1심 선고 등과 관련해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 남승현 기자)
주취자를 제압하다 상해를 입힌 혐의로 국민참여재판에서 벌금 200만 원을 선고받은 119구급대원 A(38)씨의 생각이 궁금했다. 대한변호사협회 소방관 법률지원단 소속으로 무료 변론에 나선 박형윤 변호사(37·사법연수원 40기)가 떠올랐다. 최후 변론에서도 쏟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그에게 주어진 1분은 짧았다. 24일 저녁 전북 전주시 덕진동 구 전주지법 앞 변호사 사무실에서 마주 앉았다. 재판이 끝난 지 15시간 만이다. 1시간 남짓 인터뷰 내내 119구급대원과 경찰관처럼 주취자를 대하는 공무원들을 걱정했다. A씨의 행위와 B씨의 골절에 대한 인과관계가 납득되지 않았지만 아직 항소 여부는 결정되지 않았다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배심원 7명 중 5명은 유죄로 봤다.
= 배심원의 인과관계를 인정했다는 게 많이 아쉽다. 주취자인 B(50)씨가 병원에 갔을 때 최초 진술에서 본인이 발을 헛디뎌 골절됐다고 했다. 다른 병원 원무과에서 근무하는 B씨의 동생이 진정서와 고소장을 써준 이후에 진술이 바뀌었다. 진술의 오염 가능성을 제기했다. 배심원에게 1%의 의심이라도 남아 있었다면 무죄를 평결했어야 했다.형사소송법의 대원칙은 의심스러울 때 피고인에게 유리하도록 판단하는 것이다.
▶다양한 가능성을 제시했다.= 피해자가 혼자 술에 취한 상태에서 걸어가다 발을 헛디뎌 넘어진 후 계속 쓰러져 있는 모습을 본 시민이 최초 신고를 했다. 2번째 출동 단계에서 A씨와 실랑이가 벌어져 B씨가 넘어졌다. 이후 어머니가 아들인 B씨를 말리다가 같이 넘어졌다. 또 귀가 중 공사현장 앞에서 몸이 크게 휘청거릴 정도로 발을 헛디뎠다. 4가지 과정 중 어디에서 B씨가 골절이 생겼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A씨의 행동은 분명했다.= 당시 소방관 3명이 출동했으나, B씨는 유독 A씨에 대해서만 욕하고 폭력을 행사했다. 계속해서 A씨 얼굴을 때리려는 동작을 이어갔는데, 제압 직전에는 B씨의 폭행에 몰린 A씨가 구급차를 등지게 되면서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고, 그 상황에서 A씨가 B씨의 폭행을 피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B씨를 제압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였다. A씨의 행동이 과했는지 여부는 시각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바디캠 속 웃음이 배심원의 감정을 자극했다.= 검찰은 영상 속 A씨의 희미한 웃음소리를 증폭 시켜 배심원에게 들리도록 강조했다. 당시 소리를 치고 있는 사람이 그 소리가 들렸겠느냐는 것이다. 동영상을 찍은 목격자도 있었는데 그 사람을 찾을 수 없었다. 바디캠, CCTV도 일부만 찍혔다. 전체적인 동영상이었다면 의문이 풀렸을 것이다.
박형윤 변호사는 주취객을 마주하는 소방, 경찰 공무원들을 걱정했다. 그는 "승자도 패자도 없는 재판이었다"며 "이번 판결로 소방관이나 공무원이 의기소침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진= 남승현 기자)
▶재판 도중 피해자 어머니가 화를 내기도 했다.= B씨 어머니의 모순된 진술을 부각했을 때 배심원의 표정이 바뀌었다. 피해자 진술조서는 법정에서 현출되지 않았고 현장에 어머니만 남아있는 상황이었는데 진술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어머니의 마음은 아들의 위법행위보다 다친 데 대한 아픔이 컸을 것이다. 또 배심원에게도 그 마음이 상당 부분 전달됐을 것이다.
▶민사소송으로 이어질 텐데.= 형사 소송에서 유죄 판결을 받으면 민사소송에서 입증이 쉬워진다. 다만, 손해배상청구를 하더라도 B씨가 유발한 부분을 고려한 금액이 결정될 것이다.
▶선고 후 A씨 반응은 어땠나.= 법정 진술에서 그런 걱정을 했다. 7000만 원 집에 아내와 자녀와 함께 살고 있는데 5700만 원의 합의금을 요구받았을 때 자신의 전 재산을 줘야 했기 때문에 합의할 수 없었다고 했다. 재판이 끝난 후 지친 목소리로 민사소송이 제기되면 법률지원이 가능할지를 물어봤다.
▶재판 말미에 어렵게 1분 발언권을 얻었다.
= 인과관계에 대해 여전히 의문이 남는 재판에서 형사 처벌을 받은 피고인이 앞으로 징계와 손해배상청구가 들어왔을 때 그걸 혼자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게 국민이 생각하는 정의인지 묻고 싶었다. B씨는 다른 지병으로 사망했고, A씨도 갑상선 암을 투병하고 있다. 어제는 승자도 패자도 없었다.
▶판결 이후 바람이 있다면.= 동료 소방관들은 후회한다. 자기도 거기서 가담했으면 처벌을 받았을 거라고 한다. 주취자 처벌을 강화하는 법률이 강화되어도 현실적인 제한이 따른다. 국민적인 관심이 소방관을 위한 제도 마련으로 이어졌으면 좋겠다. 이번 판결이 소방관을 폭행한 주취자를 용서한 것은 아닌 만큼 소방관이나 공무원이 의기소침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진=자료사진)
※ 사건 판결 개요 |
지난해 9월 19일 오후 7시 40분쯤 A씨는 B씨의 어머니의 119 신고를 받고 정읍의 한 초등학교 앞으로 출동했다.
B씨는 "전북대병원으로 후송해달라"고 요구했지만 A씨는 "생체징후 측정 결과 별다른 이상이 없어 정읍 아산병원으로 데려다주겠다"고 말했다.
이에 화가 난 B씨는 A씨에게 욕설을 하면서 달려들고 주먹으로 때릴 듯이 위협했다. A씨는 B씨의 몸을 밀어 인근에 주차된 화물차 적재함에 20초간 짓눌렀다.
거듭된 B씨의 욕설과 함께 A씨의 얼굴에 주먹을 휘두르려 하자 A씨는 B씨의 뒤로 돌아가 양팔로 피해자의 목덜미 부분을 감싼 뒤 바닥에 넘어뜨리고 움직이지 못하게 짓눌렀다. 이 과정에서 A씨는 B씨 등을 향해 웃음을 보이기도 했다.
앞서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검찰은 B씨에 대해 형사처벌을 구하는 정식기소를 처분을 내렸다. 당시 A씨를 약식재판을 청구한 것과 비교해 B씨의 행위를 더 중하게 본 것이다.
이후 열린 A씨 국민참여재판에서 배심원 7명 중 5명은 유죄로 봤다. 이들 5명은 인관관계를 인정했지만, 정당방위는 부정했다. 양형의견은 50만원 2명, 200만원 1명, 300만원 2명, 500만원 1명이었다.
재판부는 인과관계와 고의, 예견 가능성을 인정하고 정당방위는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A씨에게 벌금 200만 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A씨 행위 이후 B씨가 비틀거리면서 힘들게 일어나는 모습, 진단서에 기재된 상해의 부위와 정도가 피해자가 주장하는 상해의 원인 내지 경위가 부합한 점, B씨가 의사에게 '넘어져 다쳤다'고 이야기한 건 기초생활수급자로서 병원비 혜택을 받지 못할까 우려한 점, 이 사건을 전후해 피고인의 폭행 외에 피해자가 골절 등의 상해를 입을 만한 원인을 찾을 수 없는 점 등을 인과관계 인정 이유로 제시했다.
여기에 바닥에 넘어뜨리면서 B씨의 발목 등 신체에 충격이 가해질 수 있다는 점은 누구나 예견한 수 있다며 상해의 미필적 고의를 인정했다.
재판부는 또 "A씨는 B씨가 당뇨를 앓고 있던 상태에서 병원에서 퇴원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며 "당시 B씨가 만취 상태에서 심한 욕설을 했지만 지속적으로 폭력을 행사하거나 사람을 크게 위협이 될만한 행동을 하지 않은 점을 미루어 A씨의 폭행은 방어를 위한 것이 아니라 B씨의 욕설에 흥분해 우발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며 정당행위와 정당방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A씨는 최후 진술에서 "잘잘못을 떠나서 B씨의 명복을 빌겠다"고 말한 뒤 배심원과 검찰 측을 향해 "저희는 어느 정도 대응을 해야 하는냐. 제가 맞을 때 옆에 있는 동료가 저를 말릴 수 있겠느냐.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안 나온다"고 반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