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오전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사를 시청하고 있는 모습.(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촛불 정권을 자임한 문재인 정권에 대한 평가는 4월 총선에서 내려질 수밖에 없다. 여권 내부에서는 넘쳐나는 '야당 복(福)' 덕분에 지금의 의석수보다는 선전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눈치다. 구체적으로 과반은 아니지만 '140+ α'를 예상하기도 한다.
만약 저 정도 성적이라도 낸다면 크게 나쁘다고 할 수 없지만, 출범 후 최고 80%를 넘는 국민적 지지를 받았던 문재인 정권 아래서 치러지는 총선이라는 점에서 격세지감(隔世之感)이라는 생각도 든다.
우선 그 이유는 문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에서 찾을 수 있다. 여권은 문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을 바탕으로 총선을 치르겠다는 계산이 강하다. 그런데 역대 정권에 비해 그리 높은 지지율은 아니라는 점이 간과됐다. (여론조사의 정확도는 별로의 문제로 하고)
한국갤럽 조사를 바탕으로 보면, 문 대통령은 집권 초 81%로는 역대급 지지율로 출발했다. 이는 13대 노태우 대통령 이래 조사 대상 중에 가장 높은 수치다.
14대 김영삼, 15대 김대중 대통령이 각각 71%로 시작한 것에 비하면 10%포인트 높다. 박근혜 정권에 실망한 민심이 희망을 품고 한껏 힘을 실어준 덕분이었다.
하지만 가장 가까운 3년차 3분기를 기준으로 하면, 44%로 김대중 대통령(54%) 때보다 10%포인트 낮고 이명박 대통령 때와 동률이다. 탄핵을 당한 박 전 대통령도 같은 기간에 38%였다.
화려한 출발에 비해 지금의 지지도는 살짝 초라해 보이기도 한다.
좀 냉혹하게 평가하자면 문재인 정권이 촛불 민심을 오롯이 수용하고 지키는데 실패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가장 큰 원인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여권의 태도 때문이다. 진보·개혁의 깃발을 높이 들었지만, '우리의 도덕적 문제는 별 게 아니다'라는 식의 아집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면서 진보 내부의 분열을 자초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등은 현 정권에 질려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나 청와대 인사들이 조 전 장관에 대한 미안함을 공개적으로 표현한 것은 국민감정과는 동떨어진 것이다. 여기에다가 조 전 장관 일가에 대한 인권침해 관련 국민 청원을 인권위에 넘기기까지 했으니.
문 대통령이 조 전 장관을 놓아주자고 했지만 한편에서는 미련을 버리지 못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는 친문으로 이어진 친노의 가장 큰 문제인 '패권주의'를 연상케 하면서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흑백논리에 가까운 피아구분이 도덕적 경계마저 허물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 같은 편이지만, 범죄 혐의가 짙은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을 살뜰히 챙기는 구태가 나온 것이다.
청와대나 여당 지도부가 너무 같은 색깔을 가진 인물로 채워졌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아직 대형 비리가 없다지만 잊을 만하면 각종 구설을 적지 않게 생산해 냈다.
그럼에도 청와대에서는 총동원령이라도 내린 듯 70명 가까운 인물들이 총선에 출마하겠다고 나섰다. 이는 민주당 의원들을 청와대 출신으로 채우려는 게 아니냐는 정치적 해석을 낳기도 한다.
이런 점을 보면 '낡은 진보'라는 비판이 크게 틀린 말도 아닌 듯 싶다. 시대 감수성이 떨어지는 '꼰대'의 모습이다.
(사진=연합뉴스)
정책면에서도 부동산, 양극화, 청년 문제 해결 등에서 소기의 목표를 달성했는지 회의적이다. 문 대통령은 부동산이 안정됐다고 강조하다가 갑자기 청와대 일각에서는 '주택 매매허가제'라는 극약 처방까지 거론하고 있다.
경제마저도 보고 싶은 것만 보는 확증편향적인 증상이 엿보인다.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부작용을 읽지 못하고 장밋빛 전망만 했던 모습과 판박이다.
이쯤 되면 정책면에서도 촛불 민심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한마디로 실력 부족이 드러난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극우적인 보수당(특히 자유한국당)이 변해야하는 것처럼 집권세력도 바뀌어야 한다.
문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총선 이후 야당과의 협치를 언급했는데, 여권 안에서 인물을 고루 등용하는 일부터 할 일이다. 안에서부터 협치를 다진 후 밖으로 확장하는 게 순서상으로 맞다.
대통령은 같이 일하기 편한 사람을 쓸게 아니라 쓴 소리를 하더라도 일 잘 할 사람을 써야 한다.
엄중한 국정 운영은 친소관계가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없다. 개인적 친분으로 사람을 쓴다면 '동호회'와 뭐가 다르겠는가.
문 대통령이 익숙한 사람을 계속 쓰면서 '끼리끼리' 의식이 강해진다는 문제 제기도 있다.
측근 개개인이 성직자 같은 도덕률을 가지고 있지 않은 한 긴장감을 불어 넣기 위해서라도 새 사람으로 바꿔줘야 한다.
당장 민주당 안에서도 합리적이고 균형 잡혔다고 평가받는 비문(非文) 의원들이 남아 있다.
일부는 총선 출마를 포기하고 청와대행(行)을 내심 바라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청와대의 위기관리 능력이 위태로워 보일 때가 적지 않은데 결국 사람이 문제였다.
또 하나, 국회 의장까지 지낸 정세균 의원에게 총리를 맡겼으면 충분한 권한을 줘야 한다. 지금의 권력구조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을 잉태했던 그때의 '제왕적 대통령제'와 다르지 않다.
헌법에 나온 총리의 권한을 충분히 보장하는 것이 권력 분산과 견제라는 민주주의 원칙에 더 부합하는 길이기도 하다.
문재인 정권의 남은 2년은 우여곡절 많았던 3년을 뒤돌아보면서 새로운 길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촛불 민심에 다시 한걸음 다가가는 모습을 기대해 본다.
적폐로 몰린 극우세력을 다시 살려 낸 건 다름 아닌 청와대와 여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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