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심은경이 지난 6일 열린 제43회 일본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신문기자'로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탄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일본 아카데미 시상식 공식 트위터)
전혀 예상치 못한 표정이었다. 이름이 불렸는데도 좀체 미동이 없었다. 그는 몇 초간 시간이 흐른 뒤에야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난 6일 열린 제43회 일본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여우주연상 수상자로 호명된 배우 심은경 이야기다.
심은경이 한국 배우로는 처음으로 일본 아카데미상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그는 9일 소속사 매니지먼트앤드를 통해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아 마음을 다스리는 중"이라며 "앞으로도 작품 하나하나에 정성과 진심을 담아 매 작품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연기를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미 한국에서 연기 잘하는 배우로 정평이 난 심은경은 이번 일본 아카데미 수상으로 일본에서도 입지를 굳힘으로써 한일 양국으로까지 활동 반경을 넓혔다.
소속사 관계자는 이날 CBS노컷뉴스에 "앞으로도 심은경은 한일 양국에서 동반 활동을 한다. 일본에서 큰 상을 받았기 때문에 입지도 달라질 것으로 본다"며 "현재 일본에 머무르면서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다. 일본 활동은 현지 소속사에서 조율하면서 진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언어 문제 등으로 한국과 일본 양국을 오가면서 주연급으로 활동해 온 배우는 익히 없었다. 심은경이 배우로서 새로운 실험에 나선 것으로 여겨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영화평론가 이안은 "심은경은 아역 때부터 지금까지 굉장히 착실하게 연기 내공을 쌓아 왔다"며 "영화 '수상한 그녀'(2014)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노인 연기는 물론 진지하면서도 코믹한 연기까지 모두 소화 가능한 배우"라고 평했다.
그는 "일본에서는 한국 독립영화가 꾸준히 개봉돼 관객들을 모아 왔다"며 "탄탄한 기본기를 지닌 심은경의 일본 아카데미 수상은 독립영화뿐 아니라 현지 주류 상업영화계에서도 한국 영화·배우들의 존재감을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진단했다.
심은경에게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안긴 영화 '신문기자'는 최우수 작품상과 최우수 남우주연상까지 수상하면서 올해 일본 아카데미 시상식 주인공 자리에 올랐다. 익히 알려졌듯이 동명 논픽션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아베 정권에서 벌어진 정치 스캔들을 모티브로 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이안은 "어느 나라든 문화예술계는 사회를 위협하는 징후를 먼저 감지하고 그것을 표현함으로써, 큰 일이 벌어지기 전에 경보를 울리는 역할을 한다"며 "일본 안에서 벌어지는, 극우로 치닫는 아베 정권은 굉장히 위험하다는 자각이 올해 일본 아카데미상 수상 결과로 이어진 것으로도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과 일본 사이 언어의 장벽을 넘었다는 데서 배우 심은경이 이뤄낸 성과는 더욱 빛을 발한다. 영화 '신문기자'에서는 물론 이번 일본 아카데미 시상식 무대에서도 확인했듯이 심은경은 유창한 일어를 구사한다. 소속사 관계자는 "2년 전 일본 진출 계획을 세우면서부터 일어를 익히는 데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지난 2014년 한국에서 △춘사영화제 여자 연기상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 △디렉터스 컷 어워즈 올해의 여자 연기상 등을 휩쓴 그가 6년 뒤 일본 최고 권위를 지닌 아카데미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받은 것이다.
이안은 "현재 한일 관계가 정치적으로 심한 갈등 국면에 있지만, 양국 문화예술계는 보다 유연한 교류가 가능한데, 다만 양국 문화예술인들이 언어의 장벽으로 대표되는 한계를 어떻게 극복하느냐라는 문제가 남아 있다"며 "문화예술 교류는 강제로 끊을 수 없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줬다는 점에서 심은경의 일본 아카데미 수상이 지닌 가치는 남다르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