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자료사진)
코로나19 여파로 가뜩이나 취약한 고용 구조에 놓여 있던 노동자들이 급여를 일방적으로 감봉 당하는 등 이중고를 겪고 있다. 정부가 고용유지 지원금 제도 등을 내놨지만 특수고용 근로자 등은 사각지대에 놓여 있고, 사업주가 무급휴가를 강요하는 등의 사례도 갈수록 늘고 있다.
◇ 코로나 때문에 '장애인 안마사' 월급도 80만원대로 곤두박질
전북에서 4년째 공공일자리 안마사로 일하고 있는 시각장애인 A씨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안마 수요가 줄어들자 월급이 대폭 삭감됐다. 보건복지부가 주관하는 '장애인 일자리 지원' 사업에 고용돼 주 5일 경로당과 사회복지관 등을 찾아가 안마를 해왔지만 기관들이 문을 닫자 일감이 한꺼번에 끊긴 것.
A씨의 당초 월급은 114만 5700원. 여기에서 70%로 감봉되면서 A씨에게 다달이 들어오는 돈은 80만원 남짓이다. A씨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시각장애인들은 모두 860명으로 대구·경북 지역에 101명, 서울 115명, 경기 110명 등이다.
A씨는 "가족이 있는 사람도 힘들어하지만 혼자 살고 장애가 있는 저같은 사람은 생계를 유지하기 더 막막하다"며 "일하기 싫어서 일을 안 하는 게 아니지 않느냐. 일방적으로 깎으면 나같은 사람들은 지내기가 힘들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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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공산업 근로자·학습지 교사도 직격탄, "월급 3분의 1 토막 났지만 월급날 통보 받아"항공사 직원들도 직격탄을 맞았다. 한 저가항공사에 다니는 20대 승무원 B씨는 "지난달 월급날 당일 회사로부터 기본급의 40%만 지급한다는 통보를 받았다"며 "약 100만원 정도 받았다. 비행수당과 나머지 기본급을 오늘(3월 10일)까지 준다고 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통상 월 60~70시간이던 비행 시간이 확 줄었기 때문이다. B씨는 "3월 한 달간 비행 시간이 20시간도 안 된다"며 "비행 수당을 아예 못 받거나 삭감된 돈을 받을 것 같다"고 말했다.
비행기 편수가 3분의 1 넘게 줄어든 항공사들도 다수 있어 항공조업사 등 항공운수사업 근로자들의 상황도 여의치않다. 공공운수노조 관계자는 "모 항공사는 직원들에게 무급 휴직 동의서를 강요했고, 정부의 고용유지 지원금을 받아도 직원들에게 수당을 따로 못 준다고 통보했다"고 전했다.
한 학부모가 코로나19 감염이 우려된다며 학습지 교사에게 수업 취소를 문의하고 있다. (사진=학습지 교사 제공)
가정을 방문하는 학습지 교사들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이들은 특수고용 근로자로 현행법상 고용주는 이들에게 연차, 휴업수당 등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 콜센터 등을 중심으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한 서울 구로구 일대 가정을 방문하는 학습지 교사 C씨는 평균 수입이 평소의 3분의 1 토막이 났다고 털어놨다.
위탁계약을 해 기본급을 받지 않는 학습지 교사들은 수업 횟수가 줄면 그대로 급여에 타격을 받는 구조다. 확진환자가 발생한 지역의 학습지 교사들 가운데 지난달 소득이 '0원'인 이도 있다.
C씨는 "수업 직전 학부모들로부터 수업을 취소해달라는 연락을 받는 경우가 많다"며 "회사에서는 회원 탈퇴를 우려해 태블릿PC 하나만 주고는 화상수업을 하라고 했지만, 시스템이 제대로 구비돼 있지 않아 어려운 실정"이라고 전했다. 또 "규정상 방문 교사들은 '투잡'을 뛸 수 없어 코로나 사태가 끝날 때까지 가만히 기다릴 뿐"이라고 덧붙였다.
한 학습지 회사는 최근 대구·경북 지역 학습지 교사 지원책으로 200만원 한도 '무이자 대출'을 내놨다. 교사들은 "당장 급여가 끊겨 생계가 어려운데 대출을 지원책으로 내놓는 게 말이 되냐"고 한숨을 쉬었다.
◇ 코로나에 맥없이 쓰러지는 특수고용 노동자들…"고용주, 정부지원 적극 활용해야" 코로나19로 인한 근로자들의 어려움은 수치로도 드러나고 있다.
직장갑질119는 이달 1일부터 7일까지 일주일 동안 접수한 제보 773건을 분석한 결과 '코로나 갑질' 제보가 247건(32.0%)이라고 밝혔다. △무급휴가 강요(109건) △불이익(57건) △연차 강요(35건) 순이었다.
특히, 스포츠센터 강사, 보험설계사, 학습지 교사 등 위탁계약을 맺는 근로자들의 민원이 속출했다.
직장갑질119 최혜인 노무사는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특히 고용 불안정이 높아 취약했다"며 "이들은 근로자성 자체가 문제가 돼 휴업수당 지급 의무가 없다 보니 사태가 끝날 때까지 넋놓고 기다려야만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사각지대에 있는 특수고용 근로자들의 보호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고려대 경제학과 강성진 교수는 "특수고용 근로자, 영세 자영업자 등 직접적으로 피해를 본 이들에게 자금이 가야 한다"며 "(정부는) 소비자들에게 일괄적으로 쿠폰을 주는 방안 등을 고려할 게 아니라 취약계층에 대한 '최저 생계비 지원' 등 사회복지 정책으로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업주들이 현행 정부의 '고용유지 지원금 제도'를 적극 활용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충고도 나왔다. 기존에는 매출액·생산량 감소 등 고용 조정이 불가피한 사유가 있을 때만 신청할 수 있었지만, 코로나19 특별조치로 매출액 감소가 없어도 정부 지원금을 지급받을 수 있다.
최혜인 노무사는 "5인 미만의 소규모 사업장도 지원을 받을 수 있는데 대부분 사업주들이 잘 모르고 있다"며 "정부에서 적극적인 홍보를 통해 사업주들이 쉽게 접근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매출이 하락해 어려워진 사업장이 많은 건 이해하지만 근로자를 보호할 방안도 함께 강구해야 한다"며 "근로자들은 사업주의 요구가 있다고 해서 원치않는 무급휴가 동의서 등을 작성해선 안 된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