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손모씨가 운영한 '웰컴투비디오' 사이트 접속화면. (사진=경찰청 제공)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기 1년여 전, 다크웹에서 유·아동 성착취 영상 사이트를 운영한 손정우(24)의 판결이 있었다.
손씨가 운영한 사이트의 이름은 '웰컴투비디오'로 이곳에서 손씨는 아동 성착취 영상을 제공해 3년 간 4억 원 가량의 불법수익을 챙겼다. 사이트 이용으로 검거된 310명 중 한국인 회원만 223명에 이른다.
미국, 영국 등 국제 공조수사 끝에 사이트 운영자인 손씨와 그 이용자들을 잡을 수 있었지만 정작 사법부는 2심에서 주범인 손씨에게 징역 1년6개월 판결을 내렸다.
이마저도 1심보다는 나은 결과였다. 손씨는 1심 재판부에 500장이 넘는 반성문을 제출했고, 판결은 징역 2년 6개월·집행유예 3년에 그쳤다.
2심 판결 이후 검찰은 상소하지 않았고 손씨도 상소를 취하해 징역 1년6개월은 그대로 확정됐다. 손정우는 형을 마치고 오는 27일 출소한다.
'웰컴투비디오'를 통해 제공된 유·아동 성착취 영상물은 그야말로 참혹한 성범죄 현장 그 자체였다.
미국 법무부가 공개한 기소장에 따르면 해당 사이트에 업로드된 20만개의 영상 중 기존에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유·아동 성착취 영상물이 45%에 달했다. 회원들은 사이트 내 포인트를 지급받기 위해 '새로운' 영상물을 업로드했다.
이 과정에서 실제로 아동들이 감금·납치·인신매매돼 성폭행을 당했다. 피해 아동들은 대다수 10대였고 가장 어린 유아는 생후 6개월밖에 되지 않았다. 미국, 스페인, 영국 등에서는 피해아동 23명이 구조됐다.
손씨가 직접 해당 영상을 촬영하지 않았더라도, 피해 아동들이 착취당하는 구조를 설계한 당사자이기에 책임을 회피하기 어렵다. 사법부가 손씨의 범행을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판단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미국 법무부는 현재 범죄인인도조약을 근거로 손씨의 송환을 요청했다. 미국에서는 아동 성착취 영상 소지만으로 5년 이상의 실형에 처해질 수 있다. 우리 법무부는 미국 법무부와 협의 중에 있고, 아직 송환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지난 일주일 동안 17만 명 이상이 손씨의 미국 강제송환을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동의했다. 해당 청원은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이 공론화된 시기와 맞물려 지난달 23일 올라왔다.
결국 손씨 거취가 재조명 받으면서 정부·사법부는 디지털성범죄 근절 의지를 증명할 시험대에 올랐다. 플랫폼만 다를 뿐, 손씨의 범죄행각이 n번방 수법과 유사해 이를 잘 매듭짓지 못하면 n번방 역시 솜방망이 처벌에 그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유승진 사무국장은 1일 CBS노컷뉴스에 "'n번방' 사건이 과소대표성을 갖게 됐지만 사실 n번방으로 명명된 수많은 텔레그램 대화방에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디지털성범죄 현장이 전부 담겨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손씨 다크웹 사건뿐만 아니라 특수준강간, 불법촬영을 저지른 가수 최종훈이 집행유예를 받는 법원 판결을 보면 n번방을 강력 처벌하겠다는 정부와 사법부에게 신뢰가 가지 않는다. 이 모든 것들을 놓치고 n번방까지 왔음에도 또 똑같은 일이 반복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이런 목소리들이 계속 나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동·청소년·여성단체 탁틴내일의 이현숙 상임대표도 "손씨 사이트에서 유·아동 성착취 영상물을 내려받은 한국인 회원들은 기소유예나 가벼운 벌금형으로 끝났다. 그에 비하면 손씨는 중형"이라며 "앞선 사례들을 보면서 n번방 역시 괜찮다는 인식이 생겼던 것이다. n번방 해결에 정부와 사법부의 의지를 보여주려면 손씨의 미국 송환으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