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4년 당시 일본에서 찍은 사진. 뒷줄 왼쪽에서 네번째 이동련 할머니(사진=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제공)
일본 근로정신대에 끌려가 희생된 이동련 할머니가 끝내 일본의 사죄를 받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향년 90세.
7일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에 따르면 이동련(90)할머니가 지난 6일 밤 11시 10분쯤 광주시 북구의 한 요양원에서 간암 투병 끝에 운명했다.
이 할머니는 1944년 나주초등학교 졸업 후 일본인 교장의 권유로 같은 해 5월 양금덕 할머니 등과 함께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항공기제작소로 동원됐다.
그는 1944년 12월 7일 아이치현 일대를 강타한 도난카이 대지진 당시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으며 1945년 10월쯤 귀국했다.
이 할머니는 평소 얼굴이 알려지는 것이 두려워 인터뷰를 사양해왔다.
그러나 이 할머니는 한국에서 소송이 시작된 이후부터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중공업의 잘못을 알리는 자리에 마스크를 벗고 참가하는 등 명예회복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다.
2012년 10월 24일 광주지방법원에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2018년 11월 29일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했다.
요양병원에서 생활하던 이 할머니는 대법원 승소 판결 소식을 현장에서 들을 수 없었다.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로부터 사죄 한마디 듣는 것이 소원이었지만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