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2년 4.11 총선에 출마한 문재인 후보와 이재강 후보가 부산 서구에서 공동 유세를 펼치고 있다. (출처=이재강 블로그 캡처)
지난 12일 취임한 이재강 경기도 평화부지사를 잘 아는 이들은 그를 '문무를 겸비한 대책없는 낙천주의자'라고 부른다. 큰 덩치와 너털웃음이 매력인 그는 '이웃집 아저씨'처럼 친근한 풍모를 가졌지만, 실은 글이 날카롭고 반듯한 사람이다.
문재인 대통령과의 인연도 그의 '칼럼'때문에 시작됐다.
◇ 문재인 "이재강은 무모할 정도로 용감한 사람…썩 괜찮은 정치인"그는 영국 런던정치경제대학에서 지난 1993년 10월부터 2005년 9월까지 '시민사회와 민주주의'라는 주제를 파고든 정치학자이다. 또 재영언론계와 국내에서 '런던 보이(London Boy)'라는 필명으로 이름을 날린 컬럼니스트이기도 하다.
이재강 평화부지사가 20여 년의 영국생활을 서둘러 정리하고 급거 귀국한 때는 2012년 1월 24일이다.
평소 그의 글을 눈여겨 봐온 부산 친문 핵심인 전재수 의원의 전화 한 통 때문이었다. 전 의원은 당시 이국만리에 있던 그에게 '2012년 4.11 총선에서 부산 사상에 출마한 문 대통령을 가까이서 도와달라'고 요청했고, 그는 흔쾌히 수락했다.
하지만 이재강 평화부지사가 문재인 선거캠프 홍보팀에서 일한 기간은 40여일에 불과했다. '부산 서구에 마땅히 내보낼 총선 후보가 없다'는 중앙당의 고민을 들은 문 대통령은 이재강을 부산 서구 후보로 추천했다.
당시 당대표였던 문 대통령은 '따뜻한 사람 이재강(2016.1.9 출간)'이라는 책을 추천하는 글에서 그를 이렇게 평했다.
"그는 주저함이나 망설임이 없었다. 며칠 고민해 보겠다든지 몇 시간 생각해 보겠다든지의 말미가 없었다. 전격적으로 서구의 국회의원 후보로 결정되어 불과 한 달도 남지 않은 선거에서 다 던지는 그를 보았다. 무모할 정도로 용감한 사람이었다. 질 것이 뻔한 난공불락의 요새 서구의 국회의원 선거에 흔쾌히 나서는 그를 보면서 '썩 괜찮은 정치인 하나를 만났다'는 생각을 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12일 도지사 집무실에서 이재강 평화부지사에게 임용장을 수여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경기도 제공)
◇ 이해찬과 유시민이 이재명을 지원하는 이유…'결국 문 대통령을 돕는 일'이재강 평화부지사는 이후 부산 서구를 끝까지 지키며 이곳에서만 총선에서 내리 세번을 낙선했다. 그는 지난 대선에서는 문 대통령을 위해 부산지역 상임선대본부장을 맡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이처럼 각별한 인연을 가진 '친문' 정치인이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호흡을 맞춰 평화정책과 소통, 인권, 정무분야를 총괄하는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된 것은 의미심장하다.
이재강 부지사는 특히 이 지사와 청와대·친문 핵심그룹 사이를 오가며 정무적 가교 역할에 집중할 것으로 알려졌다.
지역 정가에서는 이재강 평화부지사의 발탁 배경에는 이재명 지사를 '범친문(친문재인)'으로 포용하려는 이해찬 민주당 대표의 의중이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재명 지사도 '이재강 부지사의 천거를 크게 환영하며 수용했다'는 후문이다.
유시민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지난달 17일 마지막 유튜브 방송에서 이재명 지사에 대해 "코로나19 과정에서 신속하고 전광석화 같은 일처리, 단호함으로 매력을 샀다. 앞으로 상당한 지지율 기반을 구축할 것이다"고 높게 평가한 것도 이해찬 대표의 행보와 비슷한 맥락으로 해석된다.
이해찬 대표는 지난 4.15 총선에서 경기 김포갑에서 준비를 하던 김두관 의원도 '영남의 대표주자가 될 기회'라는 명분을 내세워 경남 양산을에 출마하도록 권유한 것으로도 전해졌다.
문 대통령은 4·15 총선 직후 이해찬 대표와 이낙연 공동상임선대위원장 등 당 지도부를 청와대로 초청해 만찬을 가졌다. 이낙연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대통령의 높은 지지도 덕에 선거하기가 쉬웠다"며 총선 승리의 공을 문 대통령에게 돌렸다고 한다.
더불어민주당 종로 이낙연 후보가 지난달 12일 서울 종로구 구기동 거리에서 지지를 호소하는 모습.(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 "거대 몸집에 취해 민주당 내부 갈등 없어야…이제 중요한 건 개혁성과"이같은 일련의 흐름을 두고 '친문 끌어안기'가 시급한 과제인 이낙연과 이재명, 김두관 등 차기 대선후보들을 친문 핵심그룹이 '범친문'으로 끌어안은 방증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중간평가' 성적표인 지난 4.15 총선 결과는 만족할 만하다. 하지만 친문 핵심그룹 입장에서는 임기 마지막까지 대통령을 지원하고 또 확실한 차기 대권 후보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각각 호남과 수도권, 영남에서 높은 지지도를 가진 유력 후보들이 '범친문'으로 묶여 선의의 경쟁을 펼치는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후반기를 보다 안정적으로 이끌 수 있는 정치적 기반이 될 수 있다.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도 '문 대통령이 레임덕 없이 집권 후반기를 맞이하려면 대통령과 국정철학이 맞는 차기 유력후보들이 활발히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주변에 피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해 이재명 지사의 핵심 관계자는 "촛불 시민은 민주당에게 중앙권력과 지방권력에 이어 이제 의회권력까지 쥐어줬다"면서 "이는 '힘을 몰아줬으니 산적한 개혁과제를 서둘러 완수하라'는 국민의 준엄한 명령"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런 상황에서 친문, 반문, 비문이라는 구분은 무의미하다. 무엇보다 거대해진 몸집에 취해 내부세력 간에 스스로 갈등을 빚지 않도록 각별히 경계하며 각 단위에서 실질적인 개혁 성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