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아동 성착취물 사이트 '웰컴투비디오'의 운영자 손정우 씨의 미국 송환 여부를 결정하는 범죄인 인도심사 두 번째 심문기일이 16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손 씨가 피고인석에 앉아 대기하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대한민국에서 다시 처벌받을 수 있다면 어떤 중형이든 다시 받고 싶습니다."
세계 최대 아동 성착취물 사이트 '웰컴투비디오' 운영자 손정우가 법정에서 남긴 말이다.
서울고법 형사20부(강영수·정문경·이재판 부장판사)는 16일 오전 손씨에 대한 두번째 범죄인 인도심사 심문을 진행했다.
재판부가 소감을 묻자 손씨는 미리 준비해 온 종이를 꺼내 "저의 철없는 잘못으로 사회에 큰 피해를 끼쳐 정말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납득하지 못할 정도로 용서받기 어려운 잘못을 해 송구스럽다"고 울먹였다.
이어 "스스로도 너무나 부끄럽고 염치없지만 대한민국에서 다시 처벌 받을 수 있다면 어떤 중형이든 다시 받고 싶다. 이렇게 제가 마지막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지 못했는데 정말 다르게 살고 싶다"고 호소했다.
손씨의 아버지 역시 "그 동안 잘 키운 자식이면 미국을 보내라고 할텐데 제가 너무 아들답게 못 키웠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살리고 싶은 생각이 든다. 한국에서 재판을 받게 해주신다면 평생 속죄하면서 살라고 얘기하려고 한다"고 아들의 미국 송환을 반대했다.
손씨 측은 범죄인 인도 청구의 대상인 범죄은닉자금 세탁 혐의는 수사가 끝나 충분히 우리나라에서 기소해 처벌이 가능하다는 주장을 펼쳤다. 또 아동 음란물 혐의 등 다른 범죄로 추가 처벌 가능성이 우려된다며 이를 막을 보증 없이는 송환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범죄인 인도법에 따르면 국내 법원에서 재판 중이거나 재판이 확정된 경우는 인도 거절 사유가 된다. 결국 손씨 측은 한국에서 해당 혐의에 대한 재판과 처벌을 받되, 미국 송환만큼은 막겠다는 전략이다.
그러나 검찰은 한미간 범죄인 인도 조약에서 이미 추가 처벌을 금지하고 있다고 반박했고, 인도 대상 혐의에 대해서도 "기소할 정도로 실체적 조사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수사가 완성됐는데 의도적으로 불기소했다는 건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다.
당초 이날 손씨의 인도 여부가 정해질 예정이었지만 재판부는 오는 7월 6일 3차 심문기일을 열고 최종 결정을 내리기로 했다.
첫 심문에 불출석했던 손씨는 왜 이날 법정에 나와 눈물로 호소를 한 것일까. 손씨의 이 같은 호소는 정말 송환 결정 여부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CBS노컷뉴스가 관련 전문가들에게 물어봤다.
성범죄 사건들을 자주 맡아 온 A 변호사는 손씨의 주장이 사실상 '비현실적'이며 '미국 송환 거부'에는 공포감이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A 변호사는 "자금세탁이라면 모르겠지만 쟁점이 된 아동·청소년 음란물 관련 혐의로는 '다시 중형 처벌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일사부재리 원칙이 있어 불가능하다"면서 "어차피 미국에 송환돼도 범죄인 인도 조약에 따라 이중처벌은 안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자금세탁 등도 중형이 선고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어 "이미 아동 성범죄자들에게 가혹하다고 알려진 미국 교도소 내 수감생활이 공포로 다가왔을 것 같다. 의사소통이 어려운 것은 물론, 가게 되면 물리적 거리로 인해 가족 면회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계 최대 아동 성 착취물 사이트 '웰컴 투 비디오' 운영자 손정우씨의 미국 송환 여부를 결정하는 범죄인 인도심사 두 번째 심문이 16일 서초구 서울고법에서 열렸다. 손씨의 아버지가 재판을 참관하고 나오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무엇보다 손씨 사건은 범죄인 인도 조약의 조건에 부합하고, 혐의에 해당하는 범행의 범위가 국제적이라 송환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텔레그램 n번방 등 성착취 관련 시민단체에 따르면 손씨는 2년 8개월 동안 '웰컴투비디오'를 운영하며 전 세계 128만 명 회원에게 22만여 개(8TB)의 아동 성착취물을 유통해 총 415비트코인(약 44억 원) 상당의 범죄수익을 벌었다.
다년간 범죄인 인도 추진 업무를 했던 전성규 한국심리과학센터 이사는 "손씨 아버지가 아들의 송환을 막고자 고발한 범죄수익은닉 혐의는 국내 처벌법이 있지만 자금세탁 등은 기소할만한 명확한 법조항이 없다"면서 "특히 손씨의 경우 전 세계 이용자들과 비트코인 거래 등으로 범죄수익을 모았기 때문에 국제적인 혐의 적용이 필요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이태원 살인사건'의 주범 아더 존 패터슨이 미국에서 처벌 받지 않은 살인 혐의로 국내에 송환될 수 있었던 것도 한미 간 범죄인 인도 조약 덕분이었다. 물론, 미국은 배심원 제도라 해당 범죄수익의 출처가 아동 성착취물이라는 것이 형량에 반영될 여지가 있다.
전 이사는 "어차피 조약에 의해 이중 처벌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 범죄수익을 아동 성착취물로 벌어들인 것이라 당연히 이와 무관하기는 어렵다. 배심원들의 형량 결정에 반영될 소지가 아예 없지는 않다"고 전했다.
이어 "당사자와 그 가족들은 막아보려고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지만 송환 확률이 더 높다고 본다. 만약 미국에서 재판이 진행된다면 10년 이상의 중형에 처해질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A 변호사 역시 손씨와 그 가족들의 호소가 별다른 효력은 갖지 못한다고 내다보면서도 범죄자가 눈물로 '국내 처벌'을 원하는 성범죄 형량 심각성을 지적했다.
미성년자 등에 대한 성착취물을 소유하거나 유포한 경우, 미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집행유예 판결이 대부분이다.
A 변호사는 "범죄인 인도는 요건에 맞게 이뤄진다. 범죄자의 공포심과 송환 여부는 사실 별개"라며 "아마 한국의 형이 무거웠다면 외국에서 고생하더라도 보내달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손씨의 눈물은 성범죄 등 중범죄에 관대한 한국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