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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 화재' 대책에선 빠진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왜?

경제 일반

    '이천 화재' 대책에선 빠진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왜?

    정부, '이천 화재' 계기로 산업재해 관련 법 개정 방향 예고
    양형·구형기준 강화, 과징금 부과, 특례법 제정 추진 등
    노동계 요구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핵심 내용에는 회의적인 반응
    노동계 "최고책임자 처벌·처벌 하한형 없으면 재벌·대기업엔 효과 없어" 우려

    지난 4월 30일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의 화재가 발생한 물류창고 공사장이 처참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전날 오후 1시 32분쯤 물류창고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화재로 38명 사망하고 10명의 부상하는 대형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정부가 이천 물류창고 화재 사고를 계기로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사업주의 책임을 강화하는 법 개정 방향을 밝혔다.

    하지만 노동계는 최고 책임자에 대한 형사처벌과 처벌의 하한형 규정 등이 없으면 '백약이 무효'라며 우려하고 있다.

    ◇양형·구형기준 개선하고 법인에 과징금 부과…특례법 제정도 추진

    정부는 지난 18일 '건설현장 화재안전 대책'을 발표하면서 이례적으로 산업재해에 대한 '경영자·사업주'의 책임을 강조했다.

    이날 정세균 국무총리는 "중대재해 발생시 종전에는 실무자만 문책하던 것에서 앞으로는 경영책임자를 직접 처벌하고 막대한 경제적 제재까지 함께 부과해 안전 경시 문화를 뿌리 뽑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정부가 내놓은 방안은 크게 3가지다. 우선 정부는 안전·보건조치 의무 위반으로 노동자가 사망하면 가중처벌하도록 한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개정 내용을 반영해 양형·구형 기준을 강화하도록 대법원 양형위원회와 함께 협의하기로 했다.

    아울러 중대재해가 발생한 회사(법인)에 대해서는 과징금을 부과하도록 하는 등 산안법 개정을 추진한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벌금은 사법부 판결을 통해야만 내려지고, 과징금은 행정부가 즉시 부과할 수 있다는 차이가 있다"며 "법원 판결은 시간도 오래 걸리고, 그동안 벌금이 너무 낮았기 때문에 정부가 곧바로 바꿀 수 있는 과징금(관련 개정)을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법무부는 '다중인명피해 범죄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정을 추진 중이다. 그동안 대형 안전사고로 대규모 인명피해가 발생해도 대부분 업무상 과실치사로 가벼운 처벌만 내려진 점을 감안해 처벌을 더 강화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천 물류창고 화재 사고 사망자를 위한 합동 분향소가 마련된 경기 이천시 창전동 서희청소년문화센터에서 유가족들이 눈물짓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최고책임자 징역형' 등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내용에는 한 발 물러서

    하지만 노동계가 주장해온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및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일단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대해 법무부 전철호 공공형사과 검사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발의안을) 충분히 검토해 특례법 제정에 참고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정부는 현재 발의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안의 핵심인, 유해·위험 방지의무를 위반해 노동자를 사망케 한 사업주를 최소 3년 이상 유기징역 또는 5천만원 이상 10억원 이하 벌금형에 처하게 하는 조항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입장이다.

    산안법에 이미 책임자에 대해 가중처벌까지 가능한 벌칙 조항이 있고, 향후 법을 개정해 과징금을 부과하면 반드시 형사처벌하지 않더라도 사업주가 안전 조치를 무시하기 어려울 만큼 충분한 부담을 줄 수 있다는 논리다.

    또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에 대해서도 노동부 이재갑 장관은 "전체적인 민사 손해배상제도와 형사법 체계와 관련해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한 사항"이라며 사실상 도입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천 물류창고 참사 유가족이 지난달 29일 서울 서초구 한익스프레스 본사 앞에서 열린 재발방지 촉구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이한형기자)

     

    ◇"대기업, 과징금엔 눈도 깜짝 안해…재벌이라도 노동자 죽으면 처벌 받아야"

    하지만 노동계는 정부가 내놓은 이번 안전 대책은 물론, 예고된 법 개정 움직임에 대해서도 실망스럽다는 반응이다.

    가장 큰 불만은 여전히 사업주에 대한 처벌의 '하한선'이 없다는 점이다. 비록 양형·구형기준을 강화한다지만, 처벌의 하한선이 없기 때문에 노동자가 아무리 죽어도 대부분의 사업주는 벌금 수백만원만 내는 것으로 면죄부를 얻어가는 현실을 바꾸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2009년~2019년까지 10년 동안 산안법 위반으로 진행된 총 6144건의 1심 재판중 0.57%인 35건만 자유형(금고·징역형)이, 2심에서는 1486건 중 6건(0.4%)만 자유형이 내려졌다.

    민주노총 최명선 노동안전보건실장은 "과징금을 도입해도 노동자 안전을 개선하기 위한 투자, 인력에 필요한 비용과 비교하면 큰 영향을 미치기 어려울 것"이라고 단언했다.

    현행 산안법에서는 이미 도급금지 등 의무를 위반하면 10억원 이하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있는데, 이런 수준으로는 재벌·대기업에는 실질적인 영향을 줄 수 없다는 지적이다.

    또 "화학물질관리법의 경우 매출액 대비 5% 이하의 과징금을 매기고 있지만, 사실상 무력화됐다"며 "과징금이 현행 벌금 구조보다 한 단계 진전했다고 볼 수 있지만, 대기업의 경우 이 정도 처벌로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기존의 한국 기업 문화나 재벌 대기업에서 사고가 발생했을 때 가장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 바로 최고 책임자가 직접 조사를 받고, 처벌받는 것"이라며 책임자 처벌을 강조했다.

    법무부가 추진하고 있는 특례법에 대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대표발의한 정의당 강은미 의원실 관계자는 "말단 담당자 꼬리 자르기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강 의원 측은 "산업안전 분야가 충분히 포괄되고, 책임있는 기업 경영자 처벌까지 가능하기는 어렵다고 본다"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처럼 처벌 범위를 경영책임자, 실질적으로 기업 경영에 영향을 미치는 자까지 폭넓게 포괄해야만 하청업체 종사자 등을 보호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사고 책임에 대한 입증 책임을 사업장에 대한 모든 자료를 갖고 있는 기업, 사용자에 지웠다는 것"이라며 "재해를 당한 피해자가 산재라는 사실을 입증하기 너무 어렵기 때문에 이런 부분도 함께 고려되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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