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하다 등 10여개 단체 소속 대학생 및 청년들이 25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린 '대학 등록금 반환 요구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등록금은 다 냈는데 개강도 밀리고 실험, 실습도 제대로 못했습니다. 학교는 대책 세운다는 말만 고장 난 라디오처럼 되풀이하고 있어요. 정부는 지금 어디에 있는 겁니까?" (서울 서대문 소재 대학교 4학년 유룻씨)
등록금 일부를 돌려달라는 대학생들의 요구는 학교를 넘어 정부를 향하고 있습니다. 절절한 호소를 넘어 혈서까지 등장하는 판입니다. 정부도 이를 외면할 수 없어 답을 찾고 있는데요. 쉽지는 않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정치 잘 알지 못하는, 일명 '정알못'을 위한 쉬운 뉴스. 오늘은 대학 등록금 세금 지원 논의가 현재 어디까지 와 있는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쫙 짚어보겠습니다. 이것만 봐도 흐름은 얼추 잡으실 수 있을 거예요.
◇ 현찰 팍팍 꽂아주면 달랠 수 있겠지만먼저, 아주 단순한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세금을 투입하는 겁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수업에 차질을 빚은 대학생들 통장에 현찰을 팍팍 꽂아주는 겁니다. 그렇게 하면 적어도 당장 고통을 호소하는 대학생들을 달래줄 수는 있겠죠.
그러나 그 돈, 땅 파면 나오는 거 아니잖아요. 재원 마련이 만만찮습니다.
올해 예산은 작년에 다 짜서 집행하고 있었는데 이걸 고쳐야 가능한 얘기입니다. 국방 예산에서 헬기 만들 돈을 아끼던가 고속도로 만들기로 했던 걸 줄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게 싫다면 은행에 빚을 져야겠죠. 물론 나중에 갚아야 합니다.
이게 바로 '추경'입니다. 요즘 뉴스에 많이 나오는 말이죠. 추가경정예산. 이미 성립된 국가예산을 고친다는 걸 뜻합니다. 과거 가뭄이나 수해복구를 위해 썼던 건데 이번엔 코로나19라는 국가적 위기 탓에 벌써 2차례나 편성했습니다.
국회에 온 3차 추경안 자료 (사진=연합뉴스)
◇ 비판 여론 비등…간접 지원으로 가닥?지금 돌아가는 판을 보면, 그렇게 현금을 지원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정세균 국무총리 특별 지시 뒤 교육부가 방안을 짜고 있긴 하지만 나라 곳간을 총괄하는 기획재정부가 아주 완강하게 반대하고 있습니다.
"등록금을 받은 건 대학인데 왜 우리 혈세를 투입해야 하느냐"는 비판 여론도 상당합니다. 리얼미터라는 여론조사업체가 지난 22~24일 전국 18세 이상 남녀 1500여명에게 물어봤더니 5명 중 3명꼴로 등록금 세금 지원에 반대했다고 해요. 찬성은 25%에 불과했고요. (자세한 내용은 중앙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대신 '간접 지원' 쪽에 힘이 실리고 있습니다. 정부가 대학을, 대학이 학생을 지원하는 우회적 지원책 말입니다. 학교에만 부담을 지우기에는 대학 재정난도 심각하다는 판단에서 나온 대안입니다.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선 상당수가 이 방향에 공감하고 있습니다. 내부적으로는 이 간접지원을 위한 추경 예산이 6천여억원 정도 필요하다는 제안(정청래 의원)도 있습니다. 학생 1인당 대학의 한 학기 시설 운영비 80%를 기준으로 추산했다고 하는데, 복잡하죠.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 긴급한 위기라는 점엔 공감대구체적으로는 특히 정부가 지난번에 사립유치원을 지원했던 방식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정부는 지난 4월 자발적으로 수업료를 돌려준 유치원에 반환액 절반씩을 지원했던 전례가 있습니다. 추경에서 확보한 예산을 활용해서요.
이번에도 같은 방식으로 정부와 대학이 부담을 나누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습니다. 그 비율을 어떻게 할지, 거기에 얼마나 많은 돈이 필요한지는 아직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필요하다면 국립대와 사립대, 수도권 주요대학과 지방대 등을 구분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게까지 하는 건 결국 코로나19로 대학생들이 긴급한 위기에 처했다는 데에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입니다. "코로나는 어쩌면 내년 2학기까지 진행될지도 모르니 단기적인 문제가 아니다(국회 교육위 소속 민주당 의원)"라는 게 여권의 시각입니다.
역차별 우려가 있겠지만 민주당 일각에선 이를 타개하기 위해 같은 또래 청년들까지 지원 폭을 넓혀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지원 범위를 딱 정하는 게 정말 어렵겠지만, 그래도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을 노릇이니까요.
심상정 대표를 비롯한 정의당 의원들이 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등록금 반환, 추경 반영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원 구성 협상에 밀린 국회 내 논의
일단 교육부가 이번 주 내로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는데요. 묘안이 나올지 지켜봐야겠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어떤 결론이 나와도 그게 끝이 아닙니다. 추경안이 실제 집행되려면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즉 예결위 심사를 거쳐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또 이견이 생길 수 있겠죠.
먼저 제1야당인 미래통합당의 경우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등록금 지원을 추경에 담아야 한다는 원칙을 밝힌 바 있습니다. 다만 그에게 전화해서 지원 주체나 범위를 물었더니 "현금 지급이든 대학 반환이든 하여튼 여야가 의논을 해보겠죠"라며 여지를 남겼습니다.
정의당에서는 좀 더 파격적으로, 추경에 9천억원을 편성하자고 하고 있습니다. 반값 등록금이 문재인 대통령 대선 공약이었고, 최근 긴급 재난지원금도 했었으니 전례나 근거는 충분하지 않느냐고 얘기합니다.
문제는 국회가 이런 걸 논의하기 위한 테이블조차 아직 마련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상임위원회 위원장을 여야 어디서 맡을지를 두고 싸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하는 국회는커녕 이번에도 이런 안건들이 '여야 극적타결'이란 이름 아래 졸속으로 심사될까 걱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