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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머니돈 쌈짓돈' 막으려다 초가삼간 태울라

기업/산업

    '주머니돈 쌈짓돈' 막으려다 초가삼간 태울라

    '초과유보소득세' 정부 방침에 중소기업 애로 호소
    "은행 대출 까다로운 중소기업, 자기 자금 갖고 있어야"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자료사진)

     

    <사례1>
    병원장인 A씨는 20대 초반인 자녀 명의로 광고대행 법인을 설립한 뒤 자신의 병원에 대한 광고대행비 명목으로 수십억원을 지급했다. A씨의 광고료가 자녀 법인 매출의 96%를 차지했다. 자녀는 이 자금을 이용해 법인 명의로 강남의 고가 아파트를 매입해 살았다.

    <사례2>
    다주택자인 B씨는 가족 명의로 부동산 법인을 만든 뒤 보유하고 있던 고가 주택을 법인에 현물출자하는 방식으로 정부의 다주택자 규제를 피했다. 부동산 법인은 고가 주택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갭투자 방식으로 또다시 부동산을 사들였다.


    두 사례처럼 최근 들어 세금을 회피하기 위해 '개인유사법인'을 만드는 사례가 급증하자 정부가 지난 7월 이들 법인의 '초과유보소득'에 대한 과세 방침을 전격 밝혔다. 법인세율이 10~25%로 개인의 소득세율 6~42%에 비해 낮기 때문에 개인 사업자가 법인으로 전환해 세금을 회피한다는 것.

    개인유사법인은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자의 지분이 전체의 80% 이상인 법인으로, 무늬만 법인인 개인사업자인 셈이다. 상법 개정 이후 법인 설립 제한이 크게 줄어들자 '절세'의 한 방법으로 법인 설립이 권유되면서 개인유사법인은 크게 증가했다. 지난 2018년 기준 국내 전체 가동법인 82만개 가운데 31%인 25만개가 개인유사법인이다.

    이에 따라 기획재정부는 지난 7월 '조세 형평성 제고 차원'에서 개인유사법인이 갖고 있는 초과유보소득에 대해 배당소득세를 내년부터 원천징수하기로 했다. 쉽게 말해 개인유사법인이 당기순이익을 쌓아 놓고만 있으면 최대주주나 그 가족이 내야 할 세금을 회피할 의도가 있는 것으로 간주해 배당을 강제하고 세금을 부과하겠다는 것이다.

    (사진=자료사진)

     

    해외에도 이와 유사한 제도가 있다. 미국의 경우 주주 5인 이하가 50% 이상의 지분을 보유하고 수동적 소득(이자, 배당, 임대수입처럼 주업이 아닌 것에서 발생하는 소득)이 60%인 법인의 초과 유보소득에 대해 20%를 과세하는 '인적지주회사세'를 시행하고 있다.

    일본 역시 주주 1인과 그 특수관계자가 50% 이상의 지분을 보유한 법인의 초과유보소득에 10~20%를 추가 과세하는 '동족회사유보금과세'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의 제도 역시 세금 회피를 막기 위한 것이다.

    국내에서도 지난 1985년까지 있었던 지상배당소득제도나 2001년 폐지된 '적정유보초과소득법인세제'를 실시해 법인의 초과유보소득에 대해 과세를 한 바 있다.

    현재는 투자상생촉진세제가 남아 자기자본 500억원 이상이나 대기업집단 소속 법인의 미환류소득에 대해 추가과세하고 있다.

    다른 나라에서도 시행되고 있고, 국내에서는 과거에도 시행됐지만 정부가 내년부터 실시하려는 '초과유보소득과세제도'에 대해 반발하는 기류가 상당히 강하다. 중소기업이 주대상인데다 선량한 기업의 건전한 경영활동까지 방해할 우려가 적지 않다는 것.

    이달 중소기업중앙회 표본조사에 따르면 국내 중소기업의 절반 정도가 개인유사법인인 것으로 추산된다. 중소기업 절반은 '초과유보소득세' 부과 대상인 셈이다.

    중소기업 대표 A씨는" 어느 누가 창업하는 중소기업에 투자를 하겠느냐"며 "그래서 중소기업들은 가족 돈으로 창업해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자 지분이 태생적으로 높을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또다른 중소기업 대표 B씨는 "중소기업은 은행에서 대출을 받기도 힘들다"며 "그래서 중소기업은 비상금 개념으로 항상 자기 자금을 쌓아 놓을 수 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C씨 역시 "중소기업이 배당을 하지 않는 이유는 자기 자금이 있어야 미래를 위한 설비투자도 하고 연구개발도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중소기업의 사내 유보금이 '허수'라는 얘기도 털어놨다. 중소업체를 운영하는 D씨는 "손실이 발생하면 은행 대출이 끊어지고 신용등급 내려가 이자가 오르며 공사입찰도 못한다"며 "사정이 이렇다 보니 손실이 발생해도 사실대로 신고하지 못하고 이익이 난 것처럼 한다. 그러니 사실상 사내 유보금은 없다"고 말했다.

    (사진=중소기업중앙회 제공)

     

    중소기업중앙회는 "국내 비상장 중소기업 309곳을 대상으로 이달 들어 이 제도에 대해 설문조사를 한 결과 90.2%가 반대했다"며 "88%가 제도를 폐기하거나 시간을 두고 시행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대답했다"고 밝혔다.

    이 법안을 다룰 국회와 여당도 신중한 모습이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원장을 맡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고용진 의원은 지난 27일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빈대를 잡으려다 초가삼간을 태우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며 "다음달 국회 법안 심의에 현실이 정확히 반영되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회 입법조사처 역시 부작용을 피하기 위해서는 과세 기준과 적용 제외 범위를 명확히 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제도 시행 방침을 밝히면서도 정상적인 활동을 하는 중소기업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시행령을 마련할 방침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정상적인 활동을 하는 기업에 과세하거나 성장을 못하게 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며 "걱정 말라"고 말했다.

    이어 "2년내에 투자나 고용, 연구개발에 사용할 유보금은 과세를 유보한다고 홍남기 부총리가 밝힌 바 있다"며 이같은 방향으로 시행령을 마련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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