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행정법원이 사상 초유의 검찰총장 정직 징계를 멈춘 데엔 심재철 검찰국장을 징계위원으로 고집한 법무부의 결정이 한 원인이 된 것으로 나타났다. 심 국장이 회피한 후 2차 징계위원회 심의부터 의사정족수가 미달되는 절차적 하자가 생긴 데다, 법무부가 꼽은 '3대 징계사유'도 검찰총장 중징계의 근거가 될 만큼 충분히 소명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심재철 회피 후 징계위 정족수 미달…"기피 의결 무효"
재판부가 윤석열 검찰총장의 징계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이며 제시한 가장 단순한 사유는 법무부 검사징계위원회가 위원 기피신청을 판단할 때 정족수를 채우지 못했다는 절차상 하자였다.
검사징계법 제17조 제4항은 '위원회는 기피신청이 있을 때에는 재적위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기피 여부를 의결한다. 이 경우 기피신청을 받은 사람은 그 의결에 참여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징계위원회는 위원장인 법무부장관과 민간위원 등을 포함해 총 7명으로 구성된다. 기피신청을 판단하려면 재적위원 과반수인 4명 이상이 반드시 출석해야 한다.
이달 10일 열린 첫 심의기일에는 5명이 참여하면서 정족수가 채워졌다. 당초 심 국장은 윤 총장의 징계사유 중 '판사 사찰 의혹'과 '채널A 수사방해' 등에 깊게 관련돼 있어 징계위원에서 제외돼야 한다는 지적이 컸지만, 첫 심의기일에 징계위원으로 참여했다.
첫 심의 때부터 윤 총장 측은 심 국장을 비롯한 위원들에게 기피신청을 했지만, 심 국장은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 위원들의 기피신청에 참여한 후에야 스스로 심의에서 회피했다.
심 국장이 빠진 후 지난 15일에 진행된 2차 심의는 심 국장 대신 참여할 예비위원 없이 나머지 4명의 위원으로만 진행됐다. 그런데 이 심의에서도 윤 총장 측이 남은 위원들에 대해 기피신청을 내면서 기피를 당한 위원 1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3명이 기피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재판부는 "재적위원의 과반수(4명)가 되지 않는 3명만으로 기피의결을 했다"며 "의사정족수에 미달해 무효"라고 판단했다.
윤 총장 측은 "심 국장이 어차피 회피할 계획이었다면 다른 적절한 검사 출신 징계위원을 지명했어야 한다"고 지적해왔다. 법무부가 '징계위 편파성 논란'에 눈감고 심 국장을 고집하면서, 결국 '의사정족수 미달'이라는 초보적인 실수를 저지르게 된 셈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16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출근을 하고 있다. 법무부 검사징계위원회는 윤 총장에게 정직 2개월 처분을 내렸다. 이한형기자
◇징계사유 모두 "소명 안돼"…尹 승소 가능성 언급윤 총장의 징계 사유를 검토한 재판부의 결론은 '충분히 소명되지 않았다'로 요약된다. 윤 총장의 징계사유는 ① 주요 사건 재판부 분석 문건 제작 ②채널A 사건 감찰방해와 수사방해 ③정치적 중립에 관한 부적절한 언행 등 위신 손상 등 크게 3개다. 일부는 부적절성이 인정되기도 했지만 결론은 법무부가 검찰총장에 대해 중징계를 내릴 정도의 혐의 입증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법무부가 '판사 사찰 의혹'으로 규정했던 ①재판부 분석 문건에 대해 일차적으로는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에서 이같은 문건 작업을 하는 것은 향후 악용될 위험성이 있어 매우 부적절하다"는 판단이 나왔다. 그러나 이를 징계사유로 보려면 '수사정보정책관실이 공소유지 관련 정보를 취급하지 않는다'는 전제가 타당한지는 물론이고, 판사 정보 취득 방법이나 그 목적에 대한 소명이 더 필요하다고 봤다.
현재로선 재판부 분석 문건이 판사들을 비방·조롱해 압력을 주기 위한 것인지 알 수 없고, 문건이 반복적으로 작성됐다는 법무부 주장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②채널A 사건 감찰방해 부분에 대해 재판부는 오히려 한동수 대검 감찰부장이 감찰위원회나 소위원회 심의를 거치지 않고 중요 감찰사건을 개시한 배경을 지적했다. 또 윤 총장이 자신의 측근인 한동훈 검사장을 감싸고 서울중앙지검 수사를 막으려 대검 부장회의와 전문수사자문단에 일부러 회부했다는 법무부 주장에 대해서도 "검찰총장 수사지휘권 범위 내"라고 소명 부족 판단을 내렸다.
특히 ③정치적 중립에 관한 부적절한 언행을 징계사유로 삼은 부분은 명백히 부인했다. 윤 총장이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퇴임 후 우리 사회와 국민들을 위해 봉사하겠다"고 한 내용을 부적절한 언행으로 단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징계위가 '신청인(윤석열)의 정치활동 가능성이 논의되는 것 자체가 주요사건 수사의 정치적 이용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음'이라고 쓴 부분에 대해서는 "추측에 불과해 비위사실을 인정하는 근거로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이같은 실체적·절차적 하자를 고려했을 때 "윤 총장의 본안 청구(징계 취소소송) 승소 가능성이 없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윤 총장의 임기는 내년 7월 끝나는 데, 본안 소송 결과는 언제 나올지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다. 만약 윤 총장이 퇴임 후 승소하게 된다면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생기므로, 일단 징계위의 부실 판단을 잠정적으로 중단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인정한 것이다.
◇대규모 '검란' 시발점 된 尹 감찰개시 논란은 기각…본안서 다룰 듯
앞서 재판부는 징계위의 의사정족수 미달과 징계사유의 불충분한 소명 문제를 지적했지만, 윤 총장 측이 지적한 다른 절차적 하자 상당수는 모두 기각하기도 했다. △징계청구자인 추미애 장관의 기일지정 및 징계위 소집 △정한중 위원장 위촉 △심재철 국장 기피의결 참여 △징계기록·명단 미공개 등 징계청구 당시부터 윤 총장 측이 차곡차곡 제기한 절차적 문제들에 대해 모두 "이상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특히 지난달 법무부 감찰관실 평검사 2명이 대검찰청을 방문해 윤 총장 감찰을 고지하며 논란이 된 사태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문제될 것이 없다고 봤다. 법무부는 감찰 대상과 범위를 사전에 고지했지만 당시 대검 정책기획과 등 윤 총장 측에서 이를 전달하지 않거나 관련 문건을 반환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감찰 책임자인 류혁 감찰관이 배제된 것이나 징계청구 전 사전 조사가 없었던 부분에 대해서도 "감찰관이 감찰조사에 일정부분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 감찰조사가 징계청구 절차에 선행돼야 한다고 볼 근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당시 해당 문제들이 역대 최대 규모 '검란'의 시작이 됐던 것과는 반대로 재판부는 법무부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이번 징계가 '살아있는 권력 수사에 대한 보복'이라거나 총장의 징계와 부재로 검찰 조직 전체가 막중한 손해를 입을 수 있다는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재판부는 "신청인(윤석열)도 과거 국정원 댓글 사건을 처리하며 소신 있게 수사했고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신념을 피력하지 않았냐"고 되물었다.
마찬가지로 추 장관 측이 "이번 징계를 정지하는 것은 대통령 인사권에 대한 침해"라고 주장한 것에 대해서도 소명이 부족하다고 기각했다. 이같은 내용에 대한 구체적인 판단은 향후 징계 취소소송에서 더 깊이 다뤄질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