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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학폭'에 숨진 대구 중학생 母 "아직도 사과 기다려"

사건/사고

    10년 전 '학폭'에 숨진 대구 중학생 母 "아직도 사과 기다려"

    2011년 학교폭력으로 세상떠난 故 권승민군 어머니 임지영씨
    아직도 학교에서 교편 잡으며 '학폭 근절' 이야기
    "폭투는 사과 받고 싶다는 마음과 세상에 대한 항의"
    "피해자에게는 가해자의 진심어린 사과가 제일 중요"
    "학교폭력 결코 사소하지 않아"

    지난 2011년 학교폭력으로 세상을 떠난 고 권승민군 어머니 임지영씨. 임씨 제공

     

    2011년 12월 20일은 임지영(57)씨에게 '세상에서 가장 길었던 하루'로 기억된다. 그날 임씨의 막내아들 권승민(당시 14세, 중학교 2학년)군이 학교 폭력을 참다못해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권군은 본인의 자택에서 물고문과 구타, 금품 갈취 등에 시달린 것으로 확인됐다. 권군은 유서에 "매일 남몰래 울고, 억울하게 괴롭힘을 당하던 시절을 끝내는 대신 가족들을 볼 수가 없다는 생각에 눈물이 앞을 가린다"는 말을 남겼다.

    이른바 '대구 중학생 자살 사건'으로 불리게 된 이 일은 한국 사회에 공분을 일으켰다. 당시 대구에서만 6개월 여 동안 비슷한 사건이 7건이나 벌어졌다.

    특히 이듬해인 2012년 6월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김모군이 극단적 선택을 하기 전 엘리베이터에서 쪼그리고 앉아 눈물을 훔치는 마지막 모습이 공개되면서 큰 반향을 불렀다. 이후 학교전담경찰관(SPO) 배치, 학교폭력 실태조사 등 정부의 학교폭력 근절 대책 발표가 잇따랐다.

    올해로 권군이 떠난 지 10년째. 어머니 임씨는 여전히 대구의 한 고등학교에서 가정교사로 교편을 잡고 있다. "다른 아이들은 같은 아픔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그는 학교 폭력 문제라면 인터뷰도 마다치 않는다.

    ◇"슬픔은 잊히는 게 아니라 익숙해지는 것"

    "가슴이 아파요. 피해자들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떠올랐어요. 당시 해결되지 못한 상처가 이제야 터져 나오는 거거든요. 그 사람들은 지옥에 사는 거예요."

    최근 이재영·이다영 선수 사건 이후 유명인이 된 이에게 과거 학교폭력을 당했다는 폭로가 줄을 잇고 있다.'폭투(학폭+미투)'라고도 불리는 이 현상을 임씨는 남일처럼 지나칠 수 없다.

    학창 시절 학교 폭력의 가해자로 지목돼 이를 인정한 이재영과 이다영의 소속팀 흥국생명은 두 선수에게 무기한 출전 정지 징계를 내렸다. 이한형 기자

     

    임씨가 현장에서 바라본 학교 폭력은 피해자의 삶에 치명적이었다. 학교 폭력을 당한 피해 학생은 모든 일에 위축되기 일쑤였다.

    임씨는 "이렇게 되면 피해자는 학업에서도, 사회에서도, 성공에서도 멀어질 수 있다. 한마디로 높은 자리에 올라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작아진다"며 "트라우마가 평생을 따라가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를 어떻게 증명해서 재판을 청구할 수는 없을 거다. 하지만 피해자의 마음은 그래서 더 억울하지 않겠냐"며 "내(피해자) 인생은 힘들어졌는데, 가해자는 사회에서 저렇게 잘나가는 모습을 보게 되는 거다. (폭투는) 사과를 받고 싶다는 마음과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항의가 섞여 있다고 생각한다"고 해석했다.

    임씨와 가족들은 아직도 권군과 함께 자주 가던 단골식당조차 가지 못한다. 그래서 피해자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 수 있다.

    임씨는 "저는 재판도 해서 이겼고 우리 아이가 억울한 일을 당했다는 것도 많은 사람에게 공감 받았다"며 "그래도 승민이의 생일과 기일이 있는 겨울이 되면 너무 힘이 든다. 저도 이런데 전혀 피해를 인정받지 못한 사람들은 오죽할까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슬픔이 시간이 지나면 잊힌다고 하지만 그건 거짓말"이라며 "슬픔은 잊히는 게 아니라 익숙해지는 거다"고 덤덤히 말했다. 전날인 25일은 마침 권군의 생일이었다.

    ◇"가해자의 진심어린 사과와 반성 제일 중요해"

    교사이자, 피해자의 가족이라는 중첩된 정체성을 가진 임씨는 피해 학생의 '회복'에 관심이 많다. 그가 교육대학원 상담심리학을 전공하며 같은 주제의 논문을 쓴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픽=고경민 기자

     

    "피해자 혼자 열심히 치유하겠다고 상담소를 다닌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건 가해자의 진심어린 사과와 반성이에요. 이게 없다면 결국 '피해자가 마음을 넓게 쓰라'는 것밖에 되지 않아요. 어떻게 그런 경지까지 가능하겠어요."

    그는 아이들이 부대껴 살아가는 학교 현장에서 '폭력'은 일어날 수밖에 없지만,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가해 학생들은 학교 폭력이 별것 아니라는 인식을 많이 갖고 있어요. 사과하라고 하면 가볍게 웃으면서 '미안'이라고 말할 때도 많아요. 서면사과 용지를 보게 되면, '너가 나한테 먼저 시비를 걸어서 내가 너를 때렸다. 미안하다'는 식이죠. 교사 입장에서는 (절차대로 했으니) '해줄 거 다 해줬다. 그만하라'가 되는 거고요. 그런데 정말 사과를 받은 걸까요? 만일 사과를 안 받으면 피해 학생은 좀생이가 돼요."

    문제 해결 과정에서 '피해 학생'을 이해하는 감수성도 중요하다. 임씨는 "피해 학생은 학폭을 당했다는 사실에 수치심을 느낀다. 이미 위축이 되어서 말을 잘하지 못한다"며 "너 왜 그렇게 처신했냐.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보라는 식의 시선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어디에 주안점을 두어야 할지, 아이가 만날 상황이 되어있는지 판단하는 게 중요하다"며 "선생님이 모든 걸 처리하는 게 힘들다면 전문성 있는 사람들이 개입되는 것도 필요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스마트이미지 제공

     

    임씨 역시 가해자들의 사과를 기다리고 있다. 당시 두명의 가해 학생은 각각 징역 2년과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10년이 흐른 지금 일찌감치 출소를 했을 테지만, 그들은 한 번도 임씨를 찾아오거나 연락해오지 않았다.

    임씨는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가해 학생들은 특히 어렸으니까 당연히 실수했을 수 있다"면서도 "적어도 내가 한 실수가 남의 목숨을 좌우할 수 있다는 생각 정도는 하면서 살아야 하는데, (가해 학생들이) '지금 그러고 살고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고 토로했다.

    임씨는 권군과의 추억이 깃든 집을 떠나지 못한다. 그는 "혹시라도 찾아올까 봐 기다려준다는 의미도 있었다"며 "가해 학생들이 정말로 잘못했다고 생각한다면 우리 가족에게 '그때 이런 내가 잘못을 저질렀고 반성해서 이런 삶을 살고 있다'고 용서를 구하는 게 맞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학교폭력 결코 사소하게 봐서는 안 돼…적극적 도움 요청해야"

    임씨는 권군의 사고 직후 기자들을 만나는 자리마다 "이슈가 생긴 뒤에만 인터뷰하지 말고 10년 뒤, 20년 뒤에도 나를 인터뷰해달라"고 해왔다. 학교폭력 대책이 어떻게 됐는지, 학교 현장은 어떤지 점검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임씨가 바라본 현장은 어떨까. 임씨는 먼저 학교 폭력을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게 된 점은 긍정적이라고 했다. 그는 "제가 처음 승민이의 유서를 공개하기로 마음을 먹은 이유는 차마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는 '숨어 있는 내 아들이 얼마나 많을까'하는 생각에서였다"며 "학교 폭력을 당하는 아이는 '피해를 당할 만한 아이'라는 의식을 깨고 폭력을 가한 사람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적어도 그 부분에 관심을 끄는 데는 성공한 것 같다"고 강조했다.

    지난 2011년 학교폭력으로 세상을 떠난 고 권승민군이 남긴 두 번째 유서. 권군의 유품을 정리하다 추가로 발견했다. 임지영씨 제공

     

    다만, 아직도 학교폭력이 얼마나 파괴적인지 인식하지 못하는 부분은 아쉽다고 했다. 특히 임씨는 학교폭력 가해 학생 조치를 생활기록부에서 삭제해주는 제도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9단계로 구분된 현행 '학교폭력 가해 학생 조치' 중 상대적으로 수위가 약한 1호(서면사과)·2호(접촉·협박·보복금지)·3호(교내봉사)·7호(학급교체) 조치는 생기부에 기재되더라도 졸업 즉시 삭제된다. 4호(사회봉사)·5호(특별교육 이수 또는 심리치료)·6호(출석정지)·8호(전학) 등 중징계 조치도 졸업 직전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 심의를 거쳐 졸업 즉시 삭제할 수 있다. 학생의 반성이나 변화 정도가 미흡해 삭제하지 않아도 졸업 2년 후에는 무조건 삭제된다.

    임씨는 생기부 기재가 낙인을 찍을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비록 학폭 가해자였지만, 성인이 되어서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고 발전된 삶을 살고 있다고 보여주면 된다"고 말했다. 이어 "물론 우리 사회의 인식도 사람이 누구나 실수할 수 있고, 바뀌었다면 받아들이도록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학교폭력은 폭력이라는 단어 앞에 '학교'를 붙여 그 의미를 굉장히 사소하게 만들어 버린 것 같다"며 "폭력은 무조건 나쁜 것이다.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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