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 3일 오후 직원과의 간담회를 위해 대구고검과 지검을 방문한 가운데 윤 총장이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을 두고 반(反)민주적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한 윤석열 검찰총장이 하루만에 "검수완박은 부패완판"이라며 재차 작심 발언을 내놨다.
중수청을 추진 중인 여권과 신중한 입장 표명을 당부한 청와대에 공개적으로 등을 돌린 셈으로, '국민과 법치주의 수호' 메시지를 중심 삼은 현직 검찰총장의 이례적인 대여(對與) 강경 행보를 놓고 사실상 '정치 기지개'를 편 것이라는 분석까지 나온다. 실제로 윤 총장은 정계 진출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윤 총장은 3일 대구고검·지검을 방문한 자리에서 "지금 진행중인 소위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은 부패를 마음 놓고 완전히 판치게 하는 '부패완판'으로서, 국가와 정부의 헌법상 의무를 저버리는 것"이라며 "부정부패에 강력히 대응하는 건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고, 국가와 정부의 헌법상 의무"라고 말했다. 검찰 수사권의 완전 폐지를 목표로 여권에서 추진 중인 중수청을 정조준한 발언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해 10월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의 대검찰청에 대한 국정감사에 출석해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황진환 기자
중수청에 반대하는 윤 총장의 입장 표명은 연이틀 계속되고 있다. 전날 언론 인터뷰에서 윤 총장은 "검찰 수사권의 완전한 박탈은 힘 있는 세력들에게 치외법권을 제공하는 것이다"라며 "민주주의라는 허울을 쓰고 법치를 말살하는 것이며, 헌법 정신을 파괴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중수청을 막을 수 있다면 "직(職)을 100번이라도 걸겠다"고까지 말했다.
여당이 추진하는 법안에 대해 검찰총장이 언론과 인터뷰로 의견을 내는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선택한 단어와 표현도 상당히 고수위다. 그러자 청와대는 윤 총장을 겨냥해 "정해진 절차에 따라 차분히 의사를 개진하라"고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고, 정세균 국무총리는 한 발 더 나아가 "국민을 선동하는 윤 총장의 발언과 행태에 대해 행정부를 통할하는 총리로서 매우 유감스럽다"고 제동을 걸었다.
그러나 윤 총장은 선회하지 않았다. 오히려 '부패완판'이라는 단어를 꺼내들며 노골적으로 비판의 수위를 끌어올렸다. 정 총리의 경고성 발언이 나온 지 불과 두어 시간 뒤였다. 청와대의 당부도, 정 총리의 지적도 윤 총장의 행보를 막지 못한 것이다.
법조계에서는 윤 총장이 '중수청 저지'를 고리로 여권에 완전히 등을 돌린 채 여론전에 나선 만큼 대립각이 갈수록 뾰족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윤 총장과 "직접 얘기하고 싶다"고 거듭 밝혔지만, 검찰 안팎에선 "(윤 총장의 행보에 비춰) 두 사람이 실제로 만나 대화하기는 어렵지 않겠느냐"는 말이 나왔다.
외부 제동에도 개의치 않는 윤 총장의 여론전을 곧 정계 입문의 신호탄으로 보는 의견도 점점 다수론으로 형성되는 기류다. 검찰 내부에서도 "총장의 논리에 동의하지만 발언 강도가 세다"는 의견이 다수 나왔다. '법치 말살·헌법 정신 파괴·부패완판' 등의 표현은 전에 없는 선언적 성격을 띈다는 점에서 '정치인의 언어'에 가깝다고 보는 시각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 3일 오후 직원과의 간담회를 위해 대구고검과 지검을 방문한 가운데 윤 총장 지지자들이 대구지검에 몰려와 있다. 연합뉴스
이날 대구고검·지검 방문 당시 지지자 수백명의 연호 속에 등장한 윤 총장이 '정계 진출 가능성'에 대한 질문을 받고 "이 자리에서 드릴 말씀이 아니다"라고 여지를 남긴 점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예정된 일정은 아니라지만 심지어 권영진 대구시장은 직접 현장을 찾아 윤 총장을 지지하기도 했다.
중수청에 반대하는 윤 총장의 목소리가 예상보다 이른 시기에 나온 점 역시 그의 정계 진출 관측에 힘을 싣는 요소로 거론된다.
당초 검찰 내부에서는 오는 6월 국회에서 중수청 법안이 처리될 쯤에야 윤 총장이 본격적으로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그러나 윤 총장은 그보다 석 달이나 빠른 3월초 반대 입장을 내놨다.
다음달이면 새로운 검찰총장 후보가 거론되면서 윤 총장은 말 그대로 '떠나는 사람'이 되는 만큼, 임기말에는 아무리 강한 메시지를 내놔도 지금보다는 선명성이 약할 것이라는 판단을 내린 게 아니냐는 분석이다. 한 검찰 관계자는 "지금 상황으로는 4·7 재·보궐 선거 이전에 (윤 총장이) 사표를 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또 다른 관계자는 "왜 총장이 이런 상황에서 목소리를 내지 않느냐는 내부 여론이 꽤 많았던 만큼 입장 표명의 시기가 빨라진 것 같다"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이런 가운데 대검찰청은 이날까지 중수처 설치법에 대한 전국 일선 검사들의 의견을 취합해 법무부에 곧 제출할 계획이다. 현재까지 대검에 전달된 일선의 의견은 중수청에 반대하는 입장이 상당수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우에 따라 취합된 내용을 보고받은 윤 총장이 고검장 회의나 검사장 회의 등을 소집할 수도 있다. 법무부는 "성공적인 검찰개혁을 위해 검찰 구성원들과 소통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