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급 검사, 서장급 경찰, 신문사 논설위원, 방송사 앵커까지. 한 사업가로부터 금품을 받은 것으로 지목된 인물들이다. 이 중 일부는 입건돼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이 사업가는 과거 사기죄로 실형을 선고받아 복역하는가 하면, 현재는 100억원대 사기 혐의로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다. 상습 사기범을 둘러싼 '검·경·언' 게이트로 번지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30일 검찰 등에 따르면 사업가 김모(43)씨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등 혐의로 서울중앙지법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김씨는 2018년 6월부터 올해 1월까지 총 7명으로부터 116억원이 넘는 돈을 가로챈 혐의를 받는다.
공소장에 따르면 김씨는 피해자들을 상대로 마치 자신이 1천억원 상당의 유산을 상속받았고 경북 포항시 남구 구룡포항 일대에서 어선 수십대로 사업을 하며 인근 풀빌라, 고가의 외제차를 소유하고 있는 것처럼 재력을 과시했다.
이후 김씨는 "선박 운용사업에 투자하면 선주가 되게 해주겠다", "선동오징어 매매사업에 투자하면 수개월 안에 3~4배로 수익을 벌게 해주겠다"고 속여 피해자들로부터 투자금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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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김씨가 과시한 재력은 모두 거짓이고, 실제 수산업도 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사실 피고인은 선박 운용사업이나 선동오징어 매매사업을 진행한 사실이 전혀 없었다"며 "자신의 재력을 과시하는 말도 전부 거짓"이라고 판단했다.
김씨의 사기 행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김씨는 2016년 11월 사기죄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안동교도소에서 복역하던 중 이듬해 12월 '특별사면'으로 풀려놨다. 출소 6개월 뒤부터 다시 사기를 저지른 셈이다.
김씨는 서울과 대구, 포항 등을 오가면서 피해자들을 만나 사기를 쳤다. 심지어 한 피해자는 김씨가 어선을 정박해 놨다는 구룡포항에서 김씨를 직접 만난 뒤 투자하기도 했다. 이 피해자는 34회에 걸쳐 86억원 상당의 투자금을 보냈다. 피해자 가운데는 김무성 전 국회의원의 형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는 평소 재력 외에도 넓은 인맥을 과시했다. 그는 지난해 5월 한 생활체육단체 회장으로 취임했는데, 취임식에는 여야 정치권 인사들과 언론계, 연예계, 체육계 등 인물들이 참석해 축하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특히 당시 취임식에는 윤석열 검찰총장의 첫 대변인이었던 조선일보 이동훈 전 논설위원과 한 종편방송사 앵커 A씨도 참석한 것으로 확인됐다. 공교롭게도 이 둘 모두 김씨로부터 금품을 받은 정황이 포착돼 현재 경찰에 입건된 상태다.
이를 두고 김씨가 유명 인사들에 돈을 뿌려 인맥을 쌓은 뒤, 이를 과시하면서 사기에 이용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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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경찰은 김씨의 사기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검사·언론인에 금품을 줬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사와 이 전 논설위원, A씨만 청탁금지법 혐의로 입건된 상황이다. 한 경찰 총경도 연루돼 현재 내사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간 김씨가 과시해 온 인맥이 상당하고, 경찰에도 계속 접대 대상을 진술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 경찰의 수사 대상은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만약 김씨가 자신의 범죄 행위를 덮기 위해 금품을 제공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검·경·언 유착' 게이트로 비화될 가능성이 있다.
더불어 대가성까지 드러난다면 '뇌물 수수' 사건이 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서 직접 사건을 수사할 수도 있다. 현직 검사의 청탁금지법 위반은 경찰의 직접 수사가 가능하지만, 뇌물 수수 사건은 공수처 통보 대상이기 때문이다.
다만 경찰은 조심스러워 하는 입장이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인 사안이라 구체적으로 확인해 줄 수 있는게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