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지난 14일 경기도 과천시 정부과천청사 법무부 대회의실에서 합동감찰 브리핑을 하고 있다. 박 장관 뒤쪽은 임은정 법무부 감찰담당관. 이한형 기자 현직 고검장인 조남관 법무연수원장이 15일 한명숙 전 국무총리 사건 모해위증 의혹에 대한 법무부 감찰 결과를 이례적으로 반박하고 나서자 그 배경을 두고 해석이 분분하다. 법무부 감찰 결과를 토대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수사에 속도를 내는 패턴이 예상되자 공수처 수사대상이기도 한 조 고검장이 선제적 방어에 나선 것이라는 해석에 무게가 실린다.
합동 감찰 결과, 윤 전 총장에 대한 공수처 수사 탄력 받나 했지만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공수처 수사3부(최석규 부장검사)는 한 전 총리 수사팀의 모해위증 교사 의혹 사건을 둘러싼 윤 전 총장의 수사방해 혐의(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를 수사하고 있다. 이 의혹은 △윤 전 총장이 한 전 총리 모해위증교사 의혹을 대검 감찰부가 아닌 인권부에 배당할 것을 지시하고, △한 전 총리 사건을 살펴본 임은정 당시 대검 감찰정책연구관(현 법무부 감찰담당관)을 해당 수사 업무에서 부당하게 배제했다는 게 골자다.
공수처는 사법정의바로세우기시민행동(이하 사세행)이 고발한 이 사건을 지난달 4일 입건했다. 최근에는 법무부에 윤 전 총장 징계·감찰 자료를 요청했지만 '전례가 없다'는 이유로 거부당하고 자료 검토 단계만 이어졌다. 하지만 14일 법무부와 대검의 합동감찰 결과를 계기로 수사가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됐다. 물밑 조율을 통해 대검의 감찰 결과가 공수처로 넘어올 경우 수사에 가속도가 붙을 수 있어서다.
공교롭게도 공수처의 또 다른 수사 착수도 이와 비슷하게 법무부의 결정이 내려진 뒤 이어진 바 있다. 박범계 법무부장관이 이성윤 서울고검장의 공소장 피의사실 유출에 대해 엄벌하겠다고 한 지 11일 만에 공수처가 직접 수사에 착수했다. 5월 13일 이 고검장의 공소장이 언론에 즉각 보도되자 이튿날 박 장관은 "당사자 측에 송달도 되기 전에 그대로 불법 유출됐다는 의혹에 대해 검찰총장 직무대행에 진상을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공수처는 같은달 25일 '2021년 공제4호' 사건번호룰 부여하고 수사3부에 배당했다. 사세행이 고발한 지 약 일주일으로, 다른 사건들과 달리 굉장히 빠른 수사 착수였다.
가짜 수산업자의 전방위 선물 공세 의혹이 확산될 때도 박 장관은 검찰의 스폰서 문화를 전반적으로 살펴보겠다고 했다. 4일 만에 공수처는 스폰서 검사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뇌물혐의를 직접 수사하기로 결정했다. 대검이 지난 2016년 10월 중고교 동창인 '스폰서' 김모씨로부터 수사 편의를 봐주며 수년간 향응을 받은 혐의로 김 전 부장검사를 구속기소하면서 이 뇌물 혐의에 대해서는 사실이 아니라고 판단했는데, 이에 대해 스폰서 김씨가 다시 경찰에 고발장을 제출하면서 약 5년만에 재수사가 이뤄지게 됐다.
조남관 법무연수원장. 박종민 기자 조남관, 합동감찰 결과 정면 반박…공수처, 양측 주장 진위부터 따져야
공수처 수사팀도 사실상 법무부와 대검의 합동감찰 결과를 참고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조 원장이 두 기관사이 연계를 사전에 차단한 모양새다. 박 장관이 이 사건 처리 과정에서 대검 지휘부가 공정성 논란을 자초했다고 지적했지만 당시 대검 차장검사였던 조 원장은 대검 지휘부를 대표해 사실과 다르다는 취지로 장관과 대립각을 세웠다.
조 원장은 검찰 내부망에 '한 전 총리 사건 법무부·대검 합동감찰 결과 발표에 대한 대검 지휘부 입장'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①대검 지휘부가 이 사건 주임검사를 임은정 당시 대검 감찰정책연구관에서 감찰3과장으로 교체해 제식구 감싸기 의혹을 초래했다는 점과 ②대검은 소수 연구관들로만 회의체를 구성해 충분한 의결 과정을 거치지 않고 무혐의 결정을 했다는 점을 반박했다.
먼저 대검이 임 연구관을 이 사건 주임검사로 지정한 사실이 전혀 없기 때문에 주임검사가 교체된 게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통상 이같은 사건을 담당하는 감찰3과장 대신 임 연구관이 담당 검사가 되려면 검찰총장의 지시가 있어야 하지만 당시 윤석열 전 총장은 그런 지시를 내린 바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애초에 '교체'가 아니라 임 연구관이 주임검사가 아니었고 혼란이 생기자 감찰3과장으로 명확히 지정했다는 설명이다. 회의체 구성 역시 임 연구관이 참여를 거부했기에 할 수 없이 나머지 인원들로 논의를 해 의견을 모았다고 부연했다.
공수처는 박 장관이 직접 발표한 합동감찰 내용과 조 원장의 반박 중 어느 쪽 주장이 맞는지 판단해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됐다. 조 원장의 반박이 없었다면 이같은 검증 과정을 건너뛰며 수사가 한층 속도를 낼 수 있던 터였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법무부장관이 한 마디 언급하고 나서 공수처의 수사가 이뤄지는 게 공수처 입장에선 상당히 공교롭다고 주장할 수 있다"면서도 "수사기관의 중립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공수처는 법무부와는 별개로 수사를 한다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충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