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원에 대한 강요미수 혐의를 받는 이동재 전 채널A 기자가 1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는 모습. 연합뉴스 취재원에게 여권 인사의 비위를 털어놓으라고 강요하다 미수에 그친 혐의로 기소된 이동재 전 채널A 기자에게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검찰과 언론이 유착해 기획수사·취재를 벌였다는 이른바 '검언유착' 논란으로 비화되기도 했지만 한동훈 검사장은 기소조차 되지 않았고 기자들에게도 형사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 것이다.
◇'검언유착'으로 피해 입힐 것이란 언동·인식 인정하기 어려워
서울중앙지법 형사1단독 홍창우 부장판사는 16일 강요미수 혐의로 기소된 이 전 기자와 같은 회사 후배인 백모 기자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지난해 8월 기소된 지 약 11개월 만에 나온 결론이다.
재판부가 판단한 결정적인 무죄의 사유는
'취재에 응하지 않으면 기자가 검찰에 영향력을 행사해 실제 피해를 입힐 수 있다고 믿게 만드는 명시적·묵시적인 언동을 하진 않았다'는 것이다. 강요미수의 피해자인 이철 전 밸류인베스트코리아(VIK) 대표가 이 전 기자의 지위를 그 정도로 막강하다고 오해하고 있었다는 점 역시 증명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이 전 기자는 지난해 초 신라젠과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에 대한 취재를 하던 중 수감 생활 중이던 이 전 대표에게 취재에 응할 것을 요청하는 서신을 5차례 보냈다. 서신에서 이 전 기자는 '(신라젠 관련) 추가 수사로 형이 더해진다면 대표님이 75살에 출소하실지, 80에 나오실지 모를 일'이라거나 '가족의 재산까지, 먼지 하나까지 탈탈 털어서 모두 빼앗을 가능성이 높다'며 여권 인사 비리를 먼저 제보하라고 회유했다.
박종민 기자 검찰은 이 전 기자가 자신이 검찰 고위층과 긴밀히 연결돼 있다는 점을 암시하며 이 전 대표가 제보하도록 협박한 것으로 보고 기소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번 사건에서 강요죄가 성립하기 위한 '구체적인 해악의 고지'가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다. 기자가 해악을 고지하고 제3자인 검찰이 수사를 통해 피해자에게 해악을 실현하는 형태가 가능하긴 하지만, 이처럼
해악의 고지와 실현 주체가 다른 경우엔 고지한 사람이 제3자를 통해 해악을 실현할 수 있다는 점을 구체적으로 믿게 했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서신의 내용이나 보낸 시기 등에 비춰봤을 때 피해자에게 겁을 주거나 심리적으로 압박하려 했다는 것은 인정되며 실제 피해자가 변호인과 대응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며 "그러나 서신에서 언급한 신라젠 관련 소식은 이미 언론에 보도된 사안인데다 가족에 대한 수사 가능성은 불안감을 줄 수는 있지만 그 자체로 검찰과 연결된 구체적인 정보라고 보긴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서신 내용은) '본인(이동재)의 취재 내용에 따르면 신라젠 수사가 확대되고 있으므로 강하게 처벌받을 수 있다'는 취지로 해석하는 것이 맞다"며 "이를 두고 '피해자가 무거운 처벌을 받도록 하겠다'는 식으로 이해하는 것은 지나친 확장해석"이라고 강조했다.
◇제보자X 지현진, 이철과 일면식 없는 사이…오히려 '왜곡 협박' 가능성
이 전 기자는 서신 외에도 이 전 대표 측 대리인인 지현진씨를 3차례 만나 이 전 대표를 설득해 줄 것을 부탁했다. 이 전 기자가 지씨에게 적극적으로 검찰과의 연결고리를 언급하며 믿도록 했는 지와 이것이 그대로 이 전 대표에게 전달됐는지 여부가 쟁점이었다.
재판부는 "피해자(이철)는 지씨와 일면식도 없다"고 못 박았다. 이 전 기자의 말을 들은 지씨가 이 전 대표의 변호인을 통해 최종적으로 전달하는 식이었기 때문에 중간 전달자들에 의해 왜곡될 가능성을 지적한 것이다.
이한형 기자 재판부는 "이 전 기자가 지씨와 만나 전달하고자 한 메시지의 핵심은 '비리 정보를 제공하면 검찰 관계자를 통해 선처를 받을 수 있도록 돕겠다'는 것"이라며 "'제공하지 않을 시 검찰 관계자를 통해 중한 처벌을 받도록 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특히 이 전 기자가 한동훈 검사장과 대화한 녹취록을 보여주거나 녹취파일을 들려준 것은 오히려 지씨가 요구했기 때문이라는 점도 짚었다. 이를 '해악의 고지'라고 본다면 피해자 대리인의 요구로 피해자를 협박한 셈이 돼 상식과 경험칙에 반하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만약 피해자가 중간 전달자를 통해 메시지를 전해 듣는 과정에서 후자의 의미로 이해했다면 이는 지씨 등 중간 전달자가 왜곡해 전달한 결과에 따른 것"이라고 강조했다.
◇언론 취재 협조 대체로 '의무 없는 일'…"윤리위반에도 처벌 신중해야"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하면서도 이 전 기자와 백 기자의 취재 행위가 비윤리적이었다는 점은 인정했다.
재판부는 "특종 취재에 대한 과도한 욕심으로 중형을 선고 받고 수감 중인 피해자를 압박하고 그 가족에 대한 처벌 가능성까지 운운하며 정보를 얻으려 했다"며 "검찰 고위 간부를 통한 선처 가능성 등을 거론하며 취재원을 회유하려 하는 등 도덕적으로 비난 받아 마땅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언론의 취재활동에 대해 함부로 강요죄를 적용해선 안된다는 점도 덧붙였다. 재판부는 "언론은 헌법상 정보원에 대해 자유롭게 접근하고 공표할 자유가 있다. 언론의 취재 협조 요청엔 의무가 따르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은 '의무 없는 일'이 된다"며 "기자가 공적 사실에 대해 취재를 요청하는 과정에서 부적절한 행위가 있더라도 강요죄 처벌은 언론의 자유가 위축되지 않도록 신중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용두사미 된 '검언유착'…한동훈 "권력비리 수사에 대한 보복"
이 전 기자의 강요미수 사건은 전달책 지씨가 MBC에 '검언유착'이라는 취지로 제보하면서 공론화됐다. 그러나 지씨는 1심 재판 중 수차례 증인소환에도 응하지 않았다.
당초 '검언유착' 사건은 총선을 앞두고 검찰과 언론이 유시민 이사장을 표적 수사·취재하고 있다는 취지로 보도됐지만, 이에 대해서도 법원은 선을 그었다.
재판부는 "유시민 비리정보를 요청하긴 했지만 이는 채널A 단톡방 등을 통해 보아도 신라젠 관련 취재의 일환으로 보인다"며 "당시 여러 언론사에서 관심을 갖고 기사를 썼던 사인이고 일부 언론에서 유시민 연루설을 이미 다루기도 한 만큼 공적 관심사였다"고 판단했다.
무죄 선고 후 이 전 기자 측은 "이성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의 지휘 하에 무리한 수사가 진행됐고 그 과정에서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며 "지씨와 MBC, 정치인 간의 '정언유착'은 없었는지도 동일한 강도로 철저히 수사해 줄 것을 검찰에 촉구한다"고 밝혔다.
한동훈 사법연수원 부원장. 연합뉴스 언론과 유착의 대상자로 지목된 한동훈 검사장도 "'검언유착'은 거짓 선동이며 조국 사건 등 권력비리 수사에 대한 보복이었다고 생각한다"며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 이성윤 서울고검장 등 관여자들에게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입장문을 냈다.
한편 서울중앙지검은 "판결문을 면밀히 분석해 향후 항소제기 여부 등을 검토하고 법과 원칙에 따라 대응할 예정"이라고 짧은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