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정부가 '저탄소 경제'로 산업 구조를 전환하는 과정에서 우려되는 대량 해고 위기를 줄이기 위한 '공정한 노동 전환' 방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노동계에서는 현실성이 없을 뿐 아니라, 새로운 일자리를 약속할만한 산업 구조 개편의 큰 그림도 담지 못한 '반쪽짜리' 대책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저탄소 경제' 전환에 석탄발전·자동차 업계 대량 해고 위기
정부는 지난 22일 발표한 '산업구조 변화에 대응한 공정한 노동전환 지원방안'에서 단기간에 고용 감축이 예상되는 분야와 중장기적으로 산업구조가 전환될 분야로 나누어 접근했다. 물론 핵심은 당장 산업구조 재편이 추진되는 석탄화력발전과 자동차 부문이다.
2016년 파리협정에 따라 전 세계가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기로 하면서 우리나라도 2034년까지 국내 석탄발전소 28기가 폐지된다. 또 내연기관 자동차가 빠르게 퇴출되면서 국내 시장에서도 수소·전기차 판매 비중이 2030년이면 33.3%에 달할 것이라고 예측된다.
이는 석탄발전·내연기관 자동차 관련 노동자들의 할 일이 사라진다는 뜻이다. 이날 나온 정부의 대책은 산업구조 전환에서 대량 실업 사태가 뒤따르지 않기 위한 예방책이다.
'공정한 노동전환' 방안에서 제시한 대책은 결국 두 단어로 요약된다. '직업훈련'과 '재취업'. 기존에 일하던 기업에서 맡은 업무를 바꿔서 계속 일하도록 직무전환을 돕거나, 끝내 해고될 노동자가 서둘러 다른 일자리를 구하도록 관련 지원 사업을 신설·확대하는 것이다.
사업주 선의에만 기댄 정부 실업 대책…"고용 담보한 기업만 산업 전환 지원하라"
여기에서 첫번째 문제는 정부의 대책이 실제로 산업 현장에서 실행될 수 있느냐는 점이고, 두번째 문제는 만약 실행되더라도 이것만으로 충분하겠냐는 점이다.
저탄소 경제로의 산업 구조조정은 경영 위기로 인해 벌어지는 흔한 해고 사태와는 양상이 조금 다르다. 발전소가 문을 닫거나 내연기관 자동차가 단종되기 전까지는 노동자들이 직무 전환, 재취업을 준비해야 한다고 지금 맡고 있는 일이 사라지지 않는다.
당연히 사업주의 협조가 없다면 정부가 제시한 각종 직업훈련이나 재취업 준비를 노동자가 병행하기 어렵다. 그런데 사업주들이 굳이 기존 노동자들의 고용을 유지하도록 노력할만한 당근도, 채찍도 이번 대책에는 빠져있다.
예를 들어 재직자가 유급휴가를 내고 직업 훈련을 받으면 해당 기업에 관련 비용을 지원하는 '장기유급휴가훈련'이나 '전직 및 재취업 준비'를 위해 노동자가 근로시간 단축을 신청하도록 허용하는 대신 관련 인건비 등을 지원하는 사업의 경우, 사업주가 '당장 할 일부터 하라'고 반대하면 해당 제도를 제대로 활용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고용노동부. 연합뉴스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그동안 함께 일하던 근로자들과 계속 일하고 싶어하는 사업주들도 분명히 있다. 이번 대책은 근로자를 돕고 싶어도 방법이 없던 사업주들에게 대안을 제시해주는 것"이라면서도 "만약 사업주들이 협조해주지 않으면 기존의 재취업 관련 제도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한마디로 사업주의 선의에 기대어 고용 대책을 추진하겠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오민규 정책위원은 정부가 함께 발표했던 사업구조 재편 기업에 대한 각종 규제 완화 및 금융·세제 지원 방안을 고용 안정과 연계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오 위원은 "이번 대책에는 고의로 고용을 승계하지 않기로 마음 먹은 사업주를 막아낼 장치가 전혀 없다"며 "코로나19 위기에서도 사업주만 고용유지지원금을 신청할 수 있도록 했다가 무급휴직, 정리해고부터 벌인 이스타항공 사례가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또 "만약 사업주가 폐업해 기존 인력을 해고하고, 새로 회사를 차리거나 용역 등에 생산을 맡겨도 막을 방법이 없다"며 "특히 노조가 있는 기업이라면 이번 상황을 계기로 구조조정에만 골몰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정부가 기업에 제공하는 각종 지원방안의 전제조건으로 고용 유지를 요구해야 한다"며 "예를 들어 프랑스는 코로나19 사태로 르노 자동차가 공장 3곳을 폐쇄하겠다고 밝히자 정부가 약속했던 구제금융을 중단하겠다고 압박하기도 했다"고 강조했다.
車업계 원·하청 종속, 재생에너지 민영화 문제 해결해야 고용 문제도 풀린다
일각에서는 만약 정부가 제시한 대책들이 안착하더라도 직무전환·재취업 프로그램과 같은 소극적인 대책만으로 고용을 유지하기에 충분하겠냐고 의문을 제기한다.
정부의 정책 기조 변화에서 시작된 산업구조 재편과 고용 문제를 노사 간에 해결할 문제로 떠넘기지 말고, 정부가 책임을 지고 더 강력한 고용 유지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전국금속노동조합은 정부 대책에 대해 "전체 고용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보다 구조조정을 전제로 하고 이후 전직 지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지적했다. 노동자 개개인의 직업훈련·재취업 지원에만 그칠 뿐, 새로 개편될 산업 구조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어떻게 창출하고 인력을 재배치할 것인가에 대한 큰 그림이 없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독과점이 심한 한국 자동차산업 구조상 완성차사가 '낙점'해 주지 않으면 부품사들은 설사 미래차 전환 의지와 여력이 있어도 불가능한 구조"라며 "한국 자동차산업 공급망을 사실상 지배하고 있는 원청사의 공정한 노동전환 역할을 강제할 정책이 안 보인다"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금속노조 장석원 언론부장은 "자동차 업계는 하청업체들이 원청 완성차 업체의 과도한 압박과 수직 계열화로 인해 종속된 문제가 핵심"이라며 "중소 부품사들이 기술 개발에 투자해 자생하려면 정부가 개입해 원청 업체의 압박을 풀어야 하는데, 이 부분은 백지 상태로 남아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는 정치적 논리에 치우쳐 논의를 진전시키기 어려울 것이고, 지역 단위의 노사정 대화로는 실현하기 어려운 선심성 정책만 남발될 수 있다"며 "업종·산업별 협의체를 마련해 산업 구조 전환 과정에 당사자들이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공공운수노조 이승철 정책국장은 새로 닥쳐올 '저탄소 경제'가 재생에너지 전환의 탈을 쓴 '에너지 민영화'로 이어진다면 대량 해고를 부를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국장은 "공공 중심의 화력 발전이 퇴출된 자리에 민간 재생에너지 기업들이 들어오는 '녹색 자본에 의한 민영화'가 이뤄지는 형국"이라며 "기후 위기의 심각성이나 국민이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는 기본권 문제를 함께 고려해 정부가 재생에너지 산업 전환 전반을 주도하도록 산업정책과 고용정책을 연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예를 들어 정부가 석탄화력과 수력, 원자력 발전소를 합쳐 '통합 재생에너지 공사'를 세우고, 내부 인력을 재배치하는 방식으로 고용 문제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며 "재생에너지 분야에서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될 때 민간에게 알아서 하도록 맡기지 않고, 기존 발전소 노동자들을 우선 채용할 필요도 있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