룩셈부르크의 백전노장 니 시아렌. 연합뉴스
움직임은 많지 않았고 소리를 내지르는 경우도 거의 없었다. 효율적이고 차분한 모습은 마치 오랫동안 기량을 갈고 닦은 무림의 고수 같았다. 여기에 도전장을 건넨 상대는 이제 막 무림에 등장한 신예 고수의 느낌이었다.
17세의 탁구 신동 신유빈(대한항공)과 그보다 41살이 많은 58세의 베테랑 니 시아렌(룩셈부르크)의 2020 도쿄올림픽 탁구 여자 개인 단식 경기는 2회전이었음에도 SNS에서 화제를 불러 일으킬 정도로 뜨거운 관심을 끌었다.
그들의 대결을 지켜 본 어느 네티즌은 "스타워즈의 아나킨 스카이워커와 요다의 대결을 보는 것 같았다"는 표현을 하기도 했다.
25일 일본 도쿄체육관에서 진행된 두 선수의 2회전은 마치 결승전을 보는 것 같은 긴장감을 불러 일으켰다. 그만큼 치열했다.
신유빈은 첫 세트를 2대11로 허무하게 내줬지만 듀스를 거듭한 2세트에서 19대17로 승리하면서 기사회생했다.
다시 3세트를 내준 신유빈은 4,5세트를 연거푸 승리하면서 승기를 잡았다.
니 시아렌이 6세트를 따내면서 승부는 최종전으로 접어 들었고 체력과 패기에서 앞선 신유빈은 마지막 세트를 11대5로 이겼다. 최종 세트 스코어 4대3으로 승리는 신유빈의 몫이었다.
17세 탁구 신동 신유빈. 연합뉴스
신유빈은 근래 보기 드문 왼손 펜홀더 전형에 맞서 초반에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하지만 이후 공격적인 스타일로 노련한 니 시아렌을 압박했고 접전 끝에 승리를 따내는 저력을 과시했다.
경기가 끝난 뒤에는 승리한 탁구 신동 못지 않게 올림픽 무대에서 노익장을 과시한 니 시아렌의 투혼에도 많은 관심이 쏠렸다.
니 시아렌은 중국 출신이다. 1991년 룩셈부르크로 국적을 옮겼다. 메이저 국제대회에서 처음 입상한 것은 1983년이었고 신유빈이 태어나기도 전에 올림픽(2000년 시드니 대회)에 나선 베테랑이다. 이번 대회는 베이징, 런던, 리우에 이어 4회 연속이자 통산 5번째 올림픽 출전 무대였다.
니 시아렌은 대회 조직위원회를 통해 "기회가 있었다. 특히 2세트가 기회였다. 첫 세트를 너무 쉽게 이긴 바람에 2세트에서 다소 집중력이 흔들렸다. 최고의 선수들이 붙는 무대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실수였다"며 경기 내용에 대해 아쉬워 했다.
이어 만 12세의 어린 나이에 올림픽 탁구 종목에 출전한 헨드 자자(시리아)를 언급하면서 "그녀를 축하해주고 싶다. 탁구는 참 좋은 스포츠다. 나이가 전혀 문제가 되지 않고 이는 국적, 피부색, 장소 역시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나는 사람들에게 용기와 긍정적인 에너지를 불어 넣어주고 싶다. 챔피언은 한명 뿐이고 그 역시 금세 잊혀지겠지만 긍정적인 에너지와 정신은 영원히 남는 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