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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B컷]대학 체육특기생 선발, 점수로 줄세우면 공정할까

법조

    [법정B컷]대학 체육특기생 선발, 점수로 줄세우면 공정할까

    편집자 주

    수사보다는 재판을, 법률가들의 자극적인 한 마디 보다 법정 안의 공기를 읽고 싶어 하는 분들에게 드립니다. '법정B컷'은 매일 쏟아지는 'A컷' 기사에 다 담지 못한 법정의 장면을 생생히 전달하는 공간입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지만 중요한 재판, 모두가 주목하지만 누구도 포착하지 못한 재판의 하이라이트들을 충실히 보도하겠습니다.

    연세대 아이스하키팀 입시비리 2심 재판
    뇌물·청탁 없이 교수 4명 이례적 실형
    정성평가에서 '불공정 판단'은 무엇인가

    스마트이미지 제공스마트이미지 제공
    올림픽으로 무더위를 이겨내고 있는 요즘. 특히 우리 양궁선수들의 짜릿한 화살 이후로 '역시 점수로만 냉혹하게 선수를 뽑는 양궁협회가 일을 잘한다'는 댓글들이 눈에 띕니다. 한편 출전을 앞두고 '역대 최약체'라는 말을 듣기도 했던 여자배구팀의 선전에 대해선 '개인 실력도 실력이지만, 팀워크가 최고의 무기'라며 박수를 보내고 있습니다.
       
    대학의 운동특기생 선발은 어때야 할까요? 프로선수 선발 때 고려되는 능력적·구성적 요소들은 물론이고 '대학 입시'라는 무게에 걸맞게 공정성·투명성이 관건이 될 겁니다. 1970년대 대학 체육특기자 전형이 생긴 후 비위·특혜·불공정 논란이 끊이지 않은 데는 '선수 영입'과 '학생 선발'이라는 사뭇 다른 기준을 제대로 조율하지 못한 것도 한 원인으로 보입니다.
       
    오늘 법정B컷은 그 고민거리를 던져주는 '연세대 아이스하키 입시비리 사건' 재판의 증인신문 장면입니다. 현직 교수 4명이 구속기소되고 1심에서 모두 실형까지 선고된 사건인데요. 특이한 점은 입시를 두고 돈이나 직위 등 특별한 청탁이 오간 점이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는 겁니다.

    ▶ 2021.6.24. 서울서부지법 2심 공판 연세대 전 입학처장 증인신문
    변호인 "연세대 서류평가 지침을 보면 '공정하고 객관적인 평가를 위하여 처음 10명의 서류를 가채점하고 의견을 조정하여 공동의 평가관점을 갖고 평가하도록 함'이라고 기재돼 있는 부분이 있는데, 서류평가를 함에 있어서 평가위원들이 평가관점을 일치시켜서 평가를 진행하라는 정도로 이해하면 되는가요?"
       
    증인 "예. 그건 제가 만든 게 아니라 이전부터 쭉 왔던 거고요. 매우 강조해서 브리핑을 하는 자료입니다."
       
    변호인 "평가위원들이 독립적으로 채점하는 것은 맞지만 보는 관점이나 비중치나 이런 것들이 너무 달라졌을 때는 평가 결과가 서로 안 맞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큰 기준 정도는 미리 협의해서 너무 차이가 나지 않도록 하라는 정도가 맞나요"
       
    증인 "예 맞습니다. 평가 권한은 개인한테 있는 거고요. 그 책임은 평가자에게 있고 고유권한이기 때문에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거지만 평가 기준은 반드시 공유하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

    피고인들은 2019년 연세대 체육특기생 선발을 위한 평가위원으로서 전체 평가비중의 70%를 차지하는 서류평가 점수를 조작해 내정자들이 합격할 수 있도록 순위를 조정한 혐의를 받았습니다. 기소된 죄목은 (연세대학교에 대한) 업무방해입니다.
       
    연합뉴스연합뉴스
    당시 서류평가는 ①경기실적우수성 20점 ②포지션·경기수행능력·발전가능성 15점 ③기본기술우수성(동영상 평가) 15점 ④경기기술 우수성(동영상 평가) 20점 등 총 70점 만점이었습니다. 고교시절 여러 경기에서 득점한 객관적 실적이 ①에 반영되고 ②~④는 비교적 평가위원의 주관이 개입할 수 있는 부문입니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내정한 학생을 뽑기 위해 ①점수를 오로지 세계선수권(U18) 대회 출전 여부로만 매기거나 ①점수에 따라 ②~④점수를 조정하는 식으로 내정자를 상위권으로 올렸다고 봤습니다. △평가위원들이 고점을 준 선수 순위가 거의 일치하고 △전산기록상 1명의 학생에 대해 채점한 시간이 2분에 불과할 정도로 짧은 점, △평가위원들이 사전에 소통했다는 여러 정황을 근거로 들었습니다.
       
    이에 2심에서 피고인들은 누구를 뽑자고 강제로 의견을 일치시키는 '합의'가 아닌 '협의'는 얼마든지 할 수 있고 당연한 것이라는 취지로 반박에 나섰습니다. 당시 연세대 입학처장도 지난 6월 2심 공판에 증인으로 나와 사전협의는 학교의 지침이 맞다고 증언했습니다.
       
    A평가위원은 과거 득점 포인트만을, B위원은 포지션에서의 우수성을, C위원은 스케이팅 속도나 스틱 사용 기술을, D위원은 향후 발전가능성에 각자 주안점을 두고 평가한다면, 합산한 점수가 '진짜 우수자'를 선별하지 못하고 왜곡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 2021.1.28. 서울서부지법 '연세대 아이스하키 입시비리' 1심 선고
    "이 사건에서 어떠한 경위로 합격시킬 사전 내정자가 결정되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공정하게 평가하지 않고 합격자를 사전 내정하였다는 것, 그리고 이에 더하여 사전 내정된 합격자들 중 일부는 다른 지원자들에 비하여 객관적인 실적 점수가 떨어진다는 점에서 이러한 사전 내정자 결정에 지원자들의 특정 대학에 대한 선호 여부뿐만 아니라 공정하지 않은 다른 무언가가 개입하였을 것이라는 의심이 들게 한다."

    이한형 기자이한형 기자
    1심 판결에서 또 주목할 점은 '사전 내정자'가 어떻게 정해진 것인지 재판부 스스로도 '모른다'고 인정한 점
    입니다. 과거 체육특기생 입시비리 사건에서는 학부모나 고교 스포츠팀 감독 등으로부터 부정한 청탁이나 돈이 오간 정황이 단골로 등장했는데, 이 사건의 경우 검찰의 오랜 수사에도 불구하고 전혀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다만 아이스하키 대학리그의 투톱인 연세대와 고려대가 특기생을 선발할 때 지명 학생이 비교적 명확히 구분돼 온 관행이 있다고 합니다. 실제로 이 사건 입시에서도 객관적 실적이 뛰어남에도 연세대 합격 순위권에 들지 못한 학생 일부가 고려대에 합격하기도 했습니다.
       
    1심 재판부 "연세대에 합격했더라도 이들 중 일부가 다른 대학에 진학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은 별개로 봐야 한다"며 "피고인들의 평가행위는 그 자체가 평가의 공정성을 심하게 해치는 것으로 업무방해의 정도가 중하다"고 지적했습니다. 평가기준으로 볼 수 없는 어떤 요소들을 평가위원들이 고려하고 이에 대해 논의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것이죠.
       
    정리하면 '①의 객관적 실적이 우선이며, ②~④에서 평가자의 재량을 인정할 만큼의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이 재판부 판단의 배경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피고인 측은 이렇게 다시 반박합니다. ①의 실적점수라는 것은 지원자들의 소속 고등학교의 경쟁력이나 선수의 성향에 따라 실제 실력에 비해 과대·과소평가 될 여지가 충분하다고요. 또 실적만 우선시 할 경우 특정 선수에게 득점이나 어시스트 기회를 몰아주는 방법으로 얼마든지 실적조작도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전산 상 기록으로 볼 때 피고인들이 충분한 시간을 들여 평가하지 않았다는 점에 대해서는 "하드카피로 된 서류들을 미리 검토한 후 컴퓨터 채점시스템에 접속해 점수 입력을 모아서 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 2021.6.24. 서울서부지법 2심 공판 연세대 전 입학처장 증인신문
    검사 "비중치에 대해 평가위원들이 상의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증언했는데 … 사전에 평가항목을 정해놓으면 되는데 비중치라는 것도 정해놓으면 되는 것 아닌가요. 그때그때 달리할 이유가 있나요"
       
    증인 "하나만 얘기를 잠깐 드리면요, 드라마 보셨을 거예요. 학생부 종합전형 … 스카이 캐슬이라고. 그게 왜 나오게 된 것이냐면 정량평가로 했을 때 애들이 하도 학원을 다니면서 문제를 풀고 이렇게 하니까 개천에서 용 나오게 만들고, 다른 사람들이 어떤 능력을 보자는 걸로 해서 만든 게 올 정성평가라는 게 학생부 종합전형입니다. 국가가 이걸 60~70%까지 늘려놨어요. 거기에는 '이런, 이런 거를 보세요'라고 얘기했고, 그 비중치를 하는 거에 대한 퍼센트가 전혀 없습니다. … 정성평가는 그 안에서 쪼개는 순간에 정량평가가 되는 겁니다. 정량평가가 되면 그걸로 맞춰서 학부모가 사람을 만들어서 가지고 와요. 그러면 대학이 평가 권한이 없고, 학부모하고 고등학교 코치가 그 구조를 장악하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하게 돼요. 그래서 지금 나오는 수도 없는 문제는 누가 더 공정하냐의 게임이고, 학부모가 학교에 요구하는 것은 학교는 평가 권한을 없애고 내가 그 기준을 갖다 내 자식을 맞추겠다. 그러면 코치랑 얘기만 하면 끝나는 게임이 됩니다. …."
       
    검사 "이 사건과 같이 U-18 청소년 대표팀 선발된 경력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당락이 완전히 갈릴 정도로 절대적인 기준을 세워놓은 것은 바람직한 것인가요."
       
    증인 "그렇게 바람직하지 못하게 만든게 학부모입니다. 우리는 그러고 싶지 않지요. 대표팀을 선발했다는 것은 협회가, 코치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거든요. 우리가 만약에 그 사람들한테 국가대표 경력이 없는 지원자를 많이 뽑아버리면 불공정하다고 끊임없이 얘기를 할거에요. 그러니까 객관적으로 나오는 지표를 어느 정도로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다는 게…."

    눈에 보이는 점수로만 줄을 세우면 공정할 것 같지만 그것이 오히려 더 큰 불공정을 불러올 수도 있다는 점. 돈이나 압력이 등장했다면 해답이 좀 더 쉬웠겠지만, 최근 우리 사회의 '공정 감수성'을 흔드는 문제들은 이번 입시비리 사건처럼 복잡한 고민을 요구합니다.
       
    2심 재판부가 이 첨예한 공정의 문제에 대해 한 층 숙성된 논리를 제시할 수 있을까요? 서울서부지법 형사항소2부(부상준 부장판사)는 오는 26일 연세대 입학처 직원을 증인으로 불러 평가 당시 현장 상황 등에 대해 들을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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