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모가디슈' 류승완 감독.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스포일러 주의
류승완 감독의 11번째 신작 '모가디슈'에는 충무로의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총출동했다. 1991년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에서 벌어진 외교전부터 내전으로 고립된 후 생사를 건 탈출을 감행하는 이들의 모습까지, 배우들 열연을 통해 당시 상황이 생생히 구현됐다.
주 소말리아 대사관 한신성 대사(김윤석), 안기부 출신 정보요원 강대진 참사관(조인성), 대사 부인 김명희(김소진), 서기관 공수철(정만식), 사무원 조수진(김재화), 막내 사무원 박지은(박경혜), 북한 림용수 대사(허준호), 태준기 참사관(구교환)을 비롯해 박명신, 한철우, 윤경호 등 이름만 들어도 믿고 보는 배우들이 스크린을 가득 채웠다.
최근 화상으로 만난 류승완 감독은 한참을 배우들에 관한 이야기로 인터뷰를 이어갔다. 정말 고마운 사람들이라고 말이다. 이에 류 감독이 배우들에게 전하는 애정 어린 이야기들만 모아봤다.
영화 '모가디슈'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한신성 대사에 김윤석 말고 다른 배우는 생각할 수 없었다
류승완 감독(이하 류승완) : 김윤석 선배는 내가 너무 좋아하는 배우다. '모가디슈'에서는 굉장히 일상적인 느낌을 낼 수 있는 배우가 되게 중요했다. 우리가 생각하는 배우 김윤석은 강력한 포스를 내뿜는 역할도 많이 했지만, 내가 좋아하는 영화 중 '완득이' '거북이 달린다'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서민적인 모습과 굉장히 무너져 있는 모습을 연기할 때도 희한하게 품위를 잃지 않는 느낌이다. 그래서 한신성 대사 역에 김윤석 선배가 바로 떠올랐다.
그는 엄청나게 준비를 많이 하는 분이다. 어떠어떠한 걸로 만나자 말하니 자료조사를 다 해왔다. 만나서 대화하는 와중에 인물에 대한 해석, 당시 상황에 대한 해석, 만들어질 영화에 대한 해석을 말했는데, 그 해석이 나와 같았다. 또 내가 놓쳤던 부분도 많이 짚어줬다.
예를 들면, 인슐린은 김윤석 선배 아이디어다. 공관에서 당뇨를 앓고 있는 환자가 있으면 얼마나 갑갑했겠냐고, 만약 북측 대사도 당뇨를 앓고 있다고 한다면 이런 아이러니가 어디 있냐고 말했다. 그 밖에도 굉장히 좋은 아이디어를 엄청 냈고, 또 나한테 큰 힘이 됐다. 그래서 지금도 너무너무 감사하다. 하여튼 이 영화에 김윤석 말고 다른 배우는 생각하기 힘들다.영화 '모가디슈'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허준호라는 배우를 카메라 앞에 세우고 싶었다
류승완 : 김지운 감독의 '인랑'을 보면서도 느꼈지만, 지금 허준호 선배의 얼굴이 너무 좋았다. 이런 걸 떠나서 저 배우를 내 카메라 앞에 세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배를 만났는데, 되게 쉽지 않은 많은 일을 겪으며 여기까지 온 배우다. 본인이 겪은 세월의 풍파가 할퀴고 간 얼굴이 어떤 설명 없이도 드라마가 되니까, 너무 황홀했다.
선배를 만난 자리에서도 내게 따뜻하게 지어준 미소가 너무 좋았다. 내가 얼마나 긴장했겠나. 대선배 앞이니 잘 만들겠다고 거짓말을 하고 있는데. 다행히 대본도 안 보고 "해볼게요"라고 했다. 진짜 정신 차리고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허 선배는 워낙 이런 어려운 현장과 위험한 상황도 굉장히 많이 경험했던 터라 안전 문제라든지 여러 면을 많이 신경 썼다. 많이 알려진 사실인데. 촬영 때마다 본인이 직접 내린 커피를 스태프에게 돌렸다. 본인의 촬영이 없을 때도 주전자에 커피를 타 왔는데, 그런 따뜻했던 모습이 너무 기억난다. 영화 '모가디슈'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이름처럼 인성이 대단한 조인성은 감동적인 순간을 선사했다
류승완 : 조인성 배우가 정말 이름처럼 인성이 대단하더라. 아재 개그 써서 죄송하다.(웃음) 여러분이 '어쩌다 사장' 같은 예능에서 보는 조인성의 좋은 모습, 그게 진짜다. 꾸며진 게 아니다.
조인성 배우도 대본을 보기 전에 콘셉트만 듣고 합류할 의사가 있다고 이야기해줬다. 인물과 각본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서로 신뢰가 쌓인 거 같다. 그리고 현장에 갔는데 생각지도 못한 게, '조인성'인데, 자신을 탁 놔버리고 굉장히 헌신적으로 연기에 임해줬다.
굉장히 감동적이었던 순간은 촬영을 마칠 때마다 현장에서 힘들었던 배우, 스태프를 다 보살펴줬다. 한국에서 챙겨온 한국 음식을 꺼내주고, 이야기를 들어줬다. 그리고 나한테 쓱 와서 '누가 이런 문제 때문에 힘들어하니 신경 써주면 좋겠다' '현장에서 감독이 보지 못한 지점에서 이런 일이 있었으니 이런 건 조금 더 배려해주면 힘이 되겠다' 이런 이야기를 했다. 굉장히 화법이 좋다. 이 배우가 좋은 배우이기 이전에 굉장히 좋은 사람이구나 싶었다. 감동적인 순간이 굉장히 많았다.
그리고 김윤석, 허준호 선배를 대할 때 정말 진심으로 존경하는 모습을 보였다. 후배들 역시 진심으로 대했다. 스태프 이름을 하나하나 다 외워서 이름을 불러주는 그런 행동들이 굉장히 감동적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연기를 재밌게 하면서 조인성만의 자리를 찾아가는 것 같다. 그래서 다음 작업인 '밀수'도 같이 해보면 어떨까 제안했는데, 흔쾌히 받아들여 줘서 지금 현장에서 즐겁게 아주 재밌게 찍고 있다.영화 '모가디슈'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신선한 얼굴의 구교환, 예상하지 못했던 지점을 안겨줬다
류승완 : 구교환 배우는 미장센 영화제나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지켜보며 팬이 됐다. 그가 만든 영화나 연기를 너무 좋아한다. 너무 신선한 얼굴이다. 찍으면서도 신선도가 주는 재미가 되게 컸다.
구교환 배우가 되게 묘한 매력이 있다. 목소리도 얇고, 사람이 자그마해서 실제 찍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 조그만 사람이 악을 쓰고, 또 한국 참사관한테 얻어맞으면서 끝까지 사과하라고 하는데, 그걸 보면 저럴 게 아닌데 땡깡 부리는 거 같았다. 그 모습이 북한의 모습 같았다. 그것은 구교환이라는 배우가 가진 매력에서 나온 거다.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지점을 안겨줬다.영화 '모가디슈'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함께했던 고마운 모든 배우에게
류승완 : 다른 함께했던 배우들에 대한 고마움은 말할 것도 없다. 4개월 동안 같이 지내면서 찍을 수 있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인데, 누구 하나 지치거나 잘못되지 않고 잘해줬다. 박명신 선배도 차분하게 현장을 지켜주셔서 후배들이 잘 따라갈 수 있었다. 후반 작업할 때 우리 배우들이 너무 고마워서 연락해서 고맙다고 한 적이 많았다. 지금 이 자리를 빌려서 배우와 스태프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