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심의 일반보도 한 가운데 공유 전동 킥보드가 불법 주차돼있다. 김정록 기자거동이 불편해 휠체어를 이용하는 이원규(62)씨는 요즘 길을 나설 때마다 걱정이다. 보도 한 가운데를 가로막고 있는 킥보드를 또 마주칠까봐서다.
서울 동작구에 거주하는 이씨는 지난달 좁은 보도 위에 불법 주차된 킥보드를 돌아서 가려다가 차도 쪽으로 넘어질 뻔한 경험을 했다. 이씨는 "그때 넘어졌다면 정말 위험한 상황이었을 것"이라며 "그 이후로 밖에 나갈 때마다 더 긴장된다"고 말했다.
15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최근 공유 전동 킥보드가 늘면서 휠체어 이용자·시각장애인 등 교통약자들은 보도 한 가운데 불법 주차된 킥보드로 인한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이들은 킥보드 하나에 먼 길을 돌아가다가 위험한 상황에 놓이기도 했다.
휠체어 이용자 임경수(59)씨는 원래 보행이 힘든 상황에서 불법 주차된 킥보드로 장애물이 하나 더 늘었다고 했다. 임씨는 "오래전부터 보도나 점자블록 같은 곳에 주차하거나 짐을 놓는 불편함은 늘 있었다"며 "가뜩이나 보행이 힘든 상황에서 요즘에는 불법 주차된 킥보드까지 생겼다"고 말했다.
비장애인들에게는 몇 발자국 돌아가면 그만인 불법 주차 킥보드가 이들에게는 큰 벽처럼 느껴졌다. 차체가 큰 전동휠체어 이용자들은 킥보드 하나만 놓여도 좁은 골목을 지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불편을 넘어 위험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이씨처럼 킥보드를 피해 돌아가다가 차도를 침범하는 경우다.
임씨는 "작은 킥보드 하나인데 우리는 도움받을 사람이 없으면 못 지나가는 경우도 많다"며 "주변 사람 중에서 막힌 길을 돌아가려고 차도로 내려가다가 위험한 상황에 놓일 뻔한 얘기를 자주 들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괜히 건드렸다가 재산상으로 불이익을 받을까 봐 함부로 옮길 생각도 못 한다"며 "우리는 문밖에 나가면 지뢰밭이 있다고 표현한다"고 덧붙였다.
불법 주차된 킥보드에 대한 휠체어 이용자들의 민원도 느는 추세다. 서울 도심에서 교통 업무를 담당하는 한 경찰 관계자는 "최근 보도에 킥보드가 주차돼 지나갈 수 없다는 휠체어 이용자들의 민원이 늘었다"며 "킥보드가 놓여 있으면 휠체어가 지나가기 어려운 좁은 골목에서 주로 민원이 들어온다"고 말했다.
불법 주차 킥보드로 인한 어려움은 또 다른 교통약자인 시각장애인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두 시각장애 아들을 둔 한국시각장애인가족협회 김경숙 이사장은 최근 불법 주차된 킥보드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홍대입구역 인근에서 음악학원에 다니는 둘째 아들이 최근 들어 자주 무릎을 다쳐서 와서다. 평소 흰지팡이를 이용해 능숙하게 다니던 길이었는데, 길목에 불법 주차된 킥보드에 걸려 넘어졌던 것이다.
김 이사장은 "시각장애인들이 흰지팡이 이용 방법을 배우면서 자라왔는데 (킥보드 같은) 갑작스러운 외부 장애물이 생기면 사용하기 어려워진다"며 "직장을 다니는 첫째도 지하철에서 집까지 5~10분 정도 점자블록을 이용하는데 킥보드 같은 장애물 세워져 있어서 넘어져 오기도 했다"고 토로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강복순 대외협력이사는 "휠체어 이용자들은 그래도 비킬 수는 있는데 시각장애인들에게는 비상이다"며 "불법 주차된 킥보드에 걸려 넘어져서 무르팍이 깨진 아이들 이야기를 요즘 많이 듣는다"고 말했다.
서울 도심에 공유 전동 킥보드가 방치돼있다. 김정록 기자서울시는 불법 주정차 공유 킥보드 견인을 시행하는 등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현재 서울시는 송파구·영등포구·종로구 등 지역에서 불법 주정차 킥보드 견인을 하고 있다. 견인된 공유 전동 킥보드는 업체에 견인료 4만 원과 30분당 700원의 보관료를 부과한다.
특히 서울시는 지하철역 출구, 버스 정류소, 점자블록 위, 횡단보도 등 교통약자 통행에 위협이 되는 곳에 대해서는 즉시 견인한다는 방침이다. 일반보도에서는 민원신고시 3시간 후 견인된다.
서울시 관계자는 "내년부터는 전동 킥보드 등 PM(개인 이동 장치) 전용 주차구역을 만드는 방법도 검토중이다"고 밝혔다.
하지만 휠체어 이용자들과 시각장애인들은 여전히 미흡하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일반보도에서는 민원이 제기되고 3시간 이후에야 조치가 이뤄진다는 점에서 교통약자들은 여전히 불편을 토로했다.
김 이사장은 "오토바이 같은 경우 주인이 확실하니 직접 만나서 문제를 해결하도록 할 수 있지만 킥보드는 누가 세워두고 갔는지도 알 수 없다"며 "걸려 넘어져 다치더라도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