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오전 11시 부산시의회에서 환경보건시민센터 등 단체가 부산지역 석면 피해 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박진홍 기자부산에서 석면슬레이트 가옥 밀집지 주민 백여 명이 각종 석면 질환에 걸린 것으로 확인됐다.
석면공장이나 조선소 등이 아닌 주택가에서 집단발병 사례가 확인된 건 이번이 처음으로, 전국 단위 검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부산석면추방공동대책위원회와 환경보건시민센터 등 단체는 13일 오전 11시 부산시의회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부산지역 석면슬레이트 가옥 밀집지 주민들이 각종 석면 질환에 걸린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들이 발표한 '부산시 석면 피해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11년 석면피해구제법 시행 이후 전국에서는 모두 5474명이 석면 피해가 인정됐다.
이 가운데 부산지역 주민은 908명(16.6%)으로, 광역자치단체 중에는 석면광산이 많아 피해 규모가 큰 충남(36.2%)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숫자였다.
특히 보고서는 부산 석면슬레이트 가옥 밀집지 주민 119명이 폐암이나 석면폐 등 석면 질환에 걸린 점에 주목했다.
부산시가 지난 8월까지 13년간 석면 노출 우려 지역 74곳을 대상으로 주민건강영향조사를 실시한 결과, 부산지역 피해 인정자 중 545명의 노출원이 확인됐다.
이 가운데 398명은 석면공장 29곳, 조선소 34곳 등 전통적인 석면 노출원 인근 주민으로 드러났다.
반면 폐암 사망자 2명, 석면폐 환자 117명 등 119명은 석면슬레이트 가옥 밀집 지역 11곳에 거주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환경보건시민센터 최예용 소장은 "석면폐는 공장이나 광산에서 오랜 기간 고농도 석면에 노출된 노동자에게 주로 나타나는 질병으로, 일반 시민들이 이렇게 많은 석면폐에 걸린 사례는 세계적으로 봐도 드문 일"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우리는 과거 근대화 과정에서 초가집 지붕을 슬레이트로 고치면서 석면이 1급 발암물질임을 놓쳤다"며 "슬레이트 밀집 지역 집단발병은 근대화 상징인 새마을운동의 어두운 그림자"라고 덧붙였다.
13일 오전 11시 부산시의회에서 환경보건시민센터 최예용 소장(오른쪽)이 부산지역 석면 노출 우려 지역을 설명하고 있다. 박진홍 기자보고서는 지금도 전국에 석면슬레이트 건물 140만여 동이 남아 있고, 석면 질환은 잠복기가 10~40년으로 긴 만큼 앞으로 석면질환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면서 석면 노출 우려 지역에 대한 전국 단위 주민건강영향조사 실시, 석면슬레이트 지붕 제거사업, 석면 피해 구제 지원 수준과 인정 대상 질환 확대 등 조치가 시급하다고 진단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실제 석면 질환을 앓고 있는 피해자가 직접 고통을 증언하기도 했다.
지난 1971년부터 8년간 부산 한 방직공장에서 근무한 박영구 씨는 "석면 질병은 직접 당해보지 않으면 얼마나 무서운지 모른다"고 말했다.
박씨는 "같은 공장에서 근무했던 아내는 무슨 병인지도 모른 채 숨이 차고 심한 기침을 하다 1995년 38살에 세상을 떠났다"면서, "석면폐증 3급을 받은 저는 평지를 걸어도 숨이 차고, 공장 동료들 역시 이미 사망했거나 석면 질환으로 고생하고 있다"고 고통을 호소했다.
부산시의회 최영아 의원은 "석면 질환자가 많이 발굴되고 있지만, 구제법 시행 10년이 넘어 돌아가신 분들도 많다. 죽고 난 이후 지원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며 "세계보건기구에서 석면 질환으로 인정하는 난소암이나 후두암을 넘어, 의학계가 관련성이 있다고 제기하는 위암 등으로 구제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부산시도 석면공장과 조선소, 슬레이트 지역 등에 거주한 주민을 상대로 조사를 지속 실시하고, 피해자 발굴과 치료를 위해 부산의료원 등에 전문클리닉을 도입하는 등 공공의료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