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정부가 서민·실수요자 대출은 옥죄지 않으면서도 가계 부채를 대폭 억제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졌다. 곧 이뤄질 가계 부채 추가 대책 발표에서 가장 큰 쟁점은 전세대출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적용 여부다.
지난 9월 가계 부채 증가율은 9.2%로 매우 높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올해를 두 달여 남긴 상태에서 정부가 올해 목표치로 제시한 6%대 달성도 쉽지 않아 보이지만 정부는 내년 가계 대출 증가율 목표치를 4%대로 제시한 바 있다.
따라서 곧 발표될 가계 부채 추가 대책에는 매우 강도 높은 내용이 담길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다.
금융권에서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적용 범위를 확대·강화하는 방안 등 대출 규제가 강화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내년 7월부터 총 대출액 2억원 초과 차주에 대해, 2023년 7월부터는 총 대출액 1억원 초과 차주에 대해 차주별 DSR 규제를 도입하기로 했는데, 이 도입 시기를 앞당기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는 것이다.
DSR은 소득 대비 갚아야 할 원리금 비율을 뜻하는 지표다. 즉, 소득만큼 대출을 제한한다는 개념이다. 주택담보대출 한도만 계산하는 LTV(담보인정비율)와 달리, 신용대출 등 모든 금융권 대출의 원리금 부담을 보는 보다 포괄적인 개념이어서 DSR을 엄격하게 적용하면 대출한도가 줄어드는 효과가 난다.
금융위는 이밖에 금융 회사별로 개인별 DSR 비율이 70%와 90%를 초과한 대출, 즉 고(高) DSR 대출액 비중을 축소하는 카드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2금융권 대출이 증가하는 풍선효과를 막기 위해 제2 금융권의 DSR을 현행 60%에서 은행권과 같은 40%를 적용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관건은 전세대출에도 DSR을 적용할지다.
연합뉴스앞서 고 위원장은 지난 6일 국정감사에서 "가계부채 증가율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굉장한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언급했다. 이와 함께 "가능한 한 실수요자도 상환 범위 내에서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며 전세대출도 DSR에 포함할 수 있다는 구상을 내비친 바 있다.
그러나 실수요자들의 반발이 거세자 전세대출에 한해 연말까지 총량 규제에서 빼며 논란을 잠시 가라앉힌 상태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지난 14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전세 대출에 DSR 적용을 하지 않는 것이냐'는 질문에 "앞으로 발표될 가계 부채 보완대책에 포함될 것"이라며 즉답을 하지 않았다.
이러한 가운데 그간 표명해 온 정부의 가계대출 규제 의지가 일관되고 분명한만큼, 전세 대출도 DSR을 적용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다만 실수요자 대출 규제에 대한 반발이 거세, 금융위로서는 고민이 깊을 수 밖에 없다. 예상 외로 약한 수준의 규제책이 발표될 것이란 정반대의 전망이 함께 나오는 이유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강력한 규제로 묶고 싶겠지만, 그간 실수요자를 옥죄는 정책에 따른 반발이 너무 심했기 때문에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주 "전세대출을 차질없이 공급하라"고 직접 언급한 것 역시 금융당국으로선 부담이다.
정부의 고민이 깊어짐에 따라 당초 이번주 안으로 예상됐던 가계부채 추가 대책 발표는 미뤄질 가능성이 커졌다.
한편 정부의 대책 발표를 앞두고 시중은행들은 자체적인 관리에 들어갔다.
우선 이달 말부터는 주요 5대 시중 은행에서 반드시 임차 보증금(전셋값) 잔금을 치르기 전, 전셋값이 오른 만큼만 전세자금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이미 KB국민은행과 하나은행이 이같은 규제를 적용하고 있고, 신한은행과 하나은행, NH농협은행도 전세자금 대출에 같은 한도를 두기로 한 것이다.
전세자금 대출 신청도 임대차계약서상 잔금 지급일 이전까지만 할 수 있게 된다. 현재 은행들은 신규 전세의 경우, 입주일과 주민등록전입일 가운데 이른 날로부터 3개월 이내면 전세자금대출 신청을 받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는 임대차 계약서상 잔금 지급일 이전까지만 전세자금대출이 가능해진다.
대출 한도를 '전셋값 증액분'으로 묶은 것은 전세자금대출로 여유자금을 만든 뒤 부동산이나 주식 등 자산에 투자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입주가 끝난 뒤 전세자금대출을 받는 것을 막은 것 역시 같은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