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열린 국제해양방위산업전(MADEX)에서 해군이 공개한 경항공모함 모형. 김형준 기자국회가 지난해에 이어 해군이 추진하고 있는 경항공모함 사업 예산을 또 대폭 삭감하고 간접비 5억원만 반영했다. 경항모 확보를 포함해 군비 증강을 추진하던 현 정부 임기 내 기본설계 예산 반영에 실패함에 따라, 2033년 전력화 예정대로 사업을 추진하는 데 비상이 걸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회 국방위원회 예산심사소위원회는 16일 국방위 전체회의에 내년도 예산 심사 결과를 제출하며 경항모 기본설계 예산을 방위사업청이 제출한 원안 72억원을 모두 삭감하고 5억원 간접비만 반영했다.
지난해 기획재정부는 방위사업청이 경항모 기본설계 착수금 등 명목으로 제출한 올해 예산 101억원을 사업타당성 조사 등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전액 삭감했다. 그 대신 국방위원회가 연구용역과 토론회를 개최하기 위한 예산 1억원만 방사청에 배정했는데 비슷한 일이 반복된 셈이다.
지난해 문제됐던 사업타당성 조사·연구용역서 '조건부 타당', '경항모 확보 필요' 결론
얼마 전 방위사업청은 내년도 예산안 가운데 경항모 관련 기본설계 예산 72억을 포함시켜 국회에 제출했다. 올해 한국국방연구원(KIDA) 주도로 진행된 사업타당성 조사에서는 '조건부 타당성 확보', 국방부가 한국국제정치학회에 의뢰해 수행한 연구용역에서는 '확보 필요' 결론이 나왔기 때문이다.
KIDA 사업타당성 조사는 경항모에 대해 핵심기술 개발과 기본설계 일정이 제대로 맞지 않는 리스크가 있고, 전투지휘통제체계 개발은 방산업체가 주도하기로 하면서 사업타당성 조사에서 적절성을 결정하기 어렵다며 판단을 유보했다. 그러면서 최종적으로는 '조건부 타당성 확보' 결론을 내렸다. 이는 주로 기술 개발이 제 때 이뤄질 수 있느냐에 대한 문제다.
한국국제정치학회 연구용역 보고서는 "미중 전략경쟁 본격화와 동북아 국가들의 해군력 강화 현실 속에서 한반도와 동북아 유사시에 대비하는 미래 전략자산으로 확보가 필요하다"며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안보능력을 구축하고 국방력을 운용하면서 유사시 방위·억제 능력 확보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회색지대(gray zone, 전투나 전쟁 위험을 피해 일부러 점진적이고 애매모호하게 목표 달성을 노리는 것) 영역에서 분쟁 강도·상황별 최적의 억지능력 확보가 필요하다"며 "경항모는 상대국의 회색지대 전략에 대응하는 상쇄전력의 기능을 제공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전면전은 아니지만 평시와도 다른 애매모호한 분쟁 상황에서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얘기다.
해당 보고서는 전략적 측면뿐만 아니라 작전적 측면에서도 경항모가 효과가 있다고 판단했다. "평시 항모전투단은 막강한 군사력을 현시(show of force)해 북한 도발을 억지하고 전시 한미 연합 항모강습능력을 통해 전쟁 조기 종결에 기여할 수 있다"며 "미래전 핵심으로 부상하는 복합전 전략·전술과 운영교리 개발에 있어서 한국군의 장기적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공감대 형성 안 돼", "해군 입장 존중하나 서둘러선 안 돼"…"부대조건 달아서라도 진행해야" 반대 의견도
하지만 국회 국방위 예산심사소위 결론은 달랐다.
국민의힘 신원식 의원은 이날 전체회의에서 삭감 배경에 대해 "(경항모는) 아직 필요성 유무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이 안 돼 있다. 필요하다고 해도 비용 분석이 전혀 안 돼 있다"며 "주장비(함재기)를 포함해 총괄적 비용이 분석돼야 한다. 주장비에 따라 갑판(설계) 등 모든 것이 바뀐다"고 설명했다.
말인즉슨, 항공모함은 함재기를 위해 만드는 배인데 바로 그 함재기 운용 비용에 대해 제대로 분석이 안 됐다는 논리다. 그는 "1년이 늦더라도 충분히 검토하고 해야 한다"며 "주장비를 포함하면 10조원까지 갈 사업인데 72억원을 넣어서 전체를 돌이킬 수 없게 하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설훈 의원도 "해군의 기본 입장은 존중해야 하지만 서둘러서 될 일은 아니다"라며 "계획이 철저히 준비되고 국회가 '이 정도면 할 수 있겠다' 하기까지 이해시킬 수준이 돼야 한다. 아직 그 절차가 안 돼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준비가 덜 됐다는 얘기고, 해군이 하겠다는 의지는 강한데 조건과 여건이 안 돼 있다"며 "서두르지 말고 철저히 해서 내년 정도에 또 (지켜)보고 하자는 결정이다. 안 하자는 것이 절대 아니고 더 준비를 철저히 해서 제대로 된 조건에서 하도록 하자는 것이 소위 전체적인 의견이었다"고 덧붙였다.
같은 당 안규백·김병주 의원은 "5억원으로 무엇을 할 수 있나, 사업이 갈지 안 갈지 나중에 판단하자는 뜻 아닌가"며 "국가전력사업에 치명적인 것 아닌가, 전력사업은 서두르면 서두를수록 좋고 부대조건을 달고서라도 필수적으로 가야 하는 예산이라고 본다"고 예결소위 결론에 반대 의견을 밝혔다.
강은호 방위사업청장은 이날 의원들 질문에 "5억원은 간접비용이기 때문에 많이 부족할 수 있지만,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방법으로 철저히 노력하고 준비해서 2023년 예산 심의 때 위원님들이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며 "철저히 준비해서 2023년 예산안에 당초 (요청했던) 72억원을 보태 추가 반영해 주시면 해군이 원하는 전력화 시기(2033년)를 맞출 수 있도록 철저히 준비하겠다"고 답했다.
내년 대선 앞두고 간접비 5억원만 편성…2033년 전력화 장담 못해
지난 2월 해군이 공개한 경항공모함 전투단 개념도. 해군 제공해군과 방위사업청은 관련 예산을 짜면서 기본설계 착수금 62억원, 함재기 자료와 대외군사판매(FMS) 예산 9억원, 간접비 1억원을 모두 합쳐 약 72억원을 신청했다. 하지만 원칙적으로는 사업비로 쓸 수 없는 간접비 5억원만 편성되면서 목표로 하고 있던 2033년 전력화에 빨간불이 켜졌다.
이번에 편성된 간접비 5억원은 비용분석과 핵심기술 위험관리를 위한 워크숍, 토론회, 항모 운용국과 협력을 위한 국외출장 등 비용으로 쓰일 예정이다. 사업타당성 조사를 통과하고 연구용역에서 '확보 필요' 결론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1년 동안 더 지켜보자는 셈이다. 기본설계 시작이 1년 늦어지면 당초 예정된 2033년 전력화가 제 때 가능하다는 보장이 없다.
국회 예결위 심의 과정에서 예산이 일부 더해질 수는 있지만, 국방 관련 현안이 주목받기 어려운 대형 이벤트인 대선을 앞두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가능성은 높지 않다. 다만 국방위가 부대조건을 통해 간접조사가 모두 완료돼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국회에 보고 심의를 거쳐 일부 사업비로 쓸 수 있는 길을 열어두었을 뿐이다.
경항공모함 사업은 자주국방을 기치로 내건 문재인 정부에서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어 진행됐는데,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기본설계 예산 반영이 또 한 해 미뤄지면서 2022년 3월 대선 결과에 따라 추이가 바뀔 수 있다는 점도 사업을 불안하게 만드는 요소 가운데 하나다.
다만 한 해군 관계자는 "안보 문제와 연관돼 있기 때문에 사업 자체가 무산되지는 않겠다고 본다"며 "군으로서는 결정에 순응할 수밖에 없다. 올해 추진했으면 더 좋았겠지만 이렇게 됐으니 내년에 잘 따져서 진행하겠다"고 전했다.
해군에서 경항모 사업을 총괄하는 정승균 기획관리참모부장(소장)은 이날 부하들에게 보낸 글에서 "아쉬움은 있지만 우리의 노력으로 항공모함 필요성이 국민들께 이해되고 확보(에 대한) 공감대가 넓어지는 기간이었다"며 "마무리와 새로운 준비를 잘 해서 결정된 정책에 따라 내년 사업을 잘 관리하도록 합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