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환 기자신변보호 여성을 둘러싼 강력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경찰의 대응력에 '비상등'이 켜졌다. 갈수록 흉포화되는 스토킹, 데이트폭력 범죄의 단면을 보여준다는 분석이다.
경찰의 대응은 크게 '피해자 보호', '피의자 격리' 두 가지 측면에서 허점을 드러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보호조치를 취했어도 기술적 문제를 드러내는 한편, 피의자에 대해선 신병 확보 등에 소극적으로 임했다는 비판이다.
스토킹, 데이트폭력 범죄 등에 있어선 사안을 면밀히 파악하고 기존 수사 패턴과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좀 더 피해자 중심으로 시각을 전환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연이어 터진 '부실 대응' 논란…'피해자 보호', '피의자 격리' 허점
13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10월 21일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스토킹처벌법) 시행 이후 스토킹범죄 신고는 기존 하루 약 23~24건에서 현재 약 105건 이상 등 4배 넘게 폭증했다. 신변보호 요청건수도 지난해는 1만 4700건에 불과했지만, 올해 현재까지 2만 1700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스토킹, 데이트폭력 등은 확연한 '범죄'라는 인식이 작용함과 동시에, 그간 가려져 왔던 심각성이 드러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2차 피해, 보복성 등을 감안하면 사건의 철저한 예방과 수사가 점점 중요해지는 추세인 셈이다.
스토킹, 데이트폭력 범죄 등이 폭력을 넘어 살인 등 강력 범죄로 이어지는 사례는 최근 연이어 터졌다. 앞서 지난달 19일 서울 중구에서는 스토킹 피해를 신고해 경찰의 신변보호를 받던 여성이 피의자 김병찬(35)에 의해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해 여론의 공분이 일었다.
지난 10일에는 이모(26)씨가 신변보호를 받은 여성 A(21)씨의 송파구 집을 찾아가 A씨 어머니(49)와 남동생(13)을 흉기로 찔러 어머니가 숨지는 사건이 발생해 파장이 거센 상태다.
경찰 대응면에서 두 사건 모두 '피해자 보호', '피의자 격리' 측면에서 허점을 드러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 중구 사건의 경우 피해자는 사건 당시 두 차례 스마트워치 긴급호출을 눌렀지만 경찰은 기술적 한계로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지 못했다. 피의자 김병찬의 스토킹에 대한 피해자의 경찰 신고는 사건에 앞서 총 6번 있었으나, 김씨에 대한 입건 조치도 이뤄지지 않았다.
김성기 기자송파구 사건은 지난 6일 A씨의 아버지가 "딸이 감금된 것 같다"고 신고했고 경찰이 위치 추적 끝에 대구에서 A씨와 이씨를 발견했으나, 이후의 대응이 도마 위에 올라 있다. A씨는 처음엔 피해 사실이 없다고 했지만 분리 조치 후 '감금돼 성폭력을 당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하지만 경찰은 두 사람의 진술이 상반되고, 이씨가 임의동행에 응하고 휴대전화를 임의 제출했다는 등의 이유로 이씨를 귀가 조치했다. 이후 A씨는 신변보호 대상이 됐지만, 대상에서 벗어난 가족들이 이씨의 범행 대상이 됐다.
피해자 보호 측면에 있어선 경찰은 스토킹범죄 대응 개선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기술 등 개선책을 논의하고 있다. 그런데 피의자 입건, 체포, 구속 등 강력한 '격리 조치'는 여전히 난감한 과제로 남아 있다. 긴급성, 상당성, 중대성 등 법적 요건 충족에 대한 판단이 애매할 뿐더러, 영장 신청 등에 있어서도 검찰, 법원 등의 청구 및 승인을 받기 어렵다는 기류가 기저에 깔려 있는 모습이다. 경찰 관계자는 "체포와 구속이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며 "직권 남용, 민사를 무시할 수 없고 법적 요건이 안 갖춰지면 법원에서 기각되기 일쑤"라고 토로했다.
전문가들, 피해자 중심주의 '전환' 필요
전문가들은 스토킹, 데이트폭력 범죄의 특성을 면밀히 파악하는 한편, 수사기관 및 사법당국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은의 변호사(이은의 법률사무소)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범죄에 대한 전조가 있고 신고가 된 것들이 있다면 내용이 무엇이고 빈도가 어떤 지에 대한 구체적인 통계와 검토, 연구가 필요한데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스토킹, 데이트폭력 범죄는 절대 한 번에 이뤄지지 않는다. 교제 폭력이 이별 후 폭력으로 이어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라고 밝혔다.
이어 "피해자에 대한 추가 피해, 피해자를 향한 증거인멸 시도가 있다면 영장을 충분히 감안해야 한다"며 "기존 범죄를 보는 인식과 관행이 이러한 장르의 범죄를 보는데 그대로 유지되는 것이 아닌지 수사기관과 사법부 모두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고 덧붙였다.
달라진 치안 환경에 맞춰 수사와 피의자 신병 확보가 좀 더 피해자 중심주의로 전환돼야 한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최근 있었던 일련의 사건을 들여다보면 거의 동일 구조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모습"이라며 "남녀 관계 등 개인 갈등에 대한 처리 방식과 해결 방식이 과거와는 달라진 부분이 있고, 이러한 부분이 강력범죄로 연결되는 등 치안환경이 바뀌었는데 경찰의 내부 대응은 옛날과 같기 때문에 그 괴리에서 생기는 문제"라고 말했다.
결국 스토킹, 데이트폭력 등의 범죄 특성을 감안하고, 피의자 격리 조치에 대한 시각을 적극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창룡 경찰청장이 설명을 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다만 경찰은 여전히 '법적 한계'가 있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김창룡 경찰청장은 13일 정례 간담회에서 송파구에서 신변보호 대상 가족이 살해 사건과 관련 "희생된 국민에 명복을 빌고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앞으로 더더욱 면밀하게 점검하고 확인해 문제점을 보완하고 발전시켜서 아까운 희생이 헛되지 않게 국민 안전을 위한 책임을 다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어 "솔직히 말씀드리면 경찰도 많은 고민과 어려움이 있다"며 "신변보호와 관련한 경찰의 치안 부담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상황이다. 스토킹처벌법도 마찬가지고 현행 법제로는 경찰이 가해자를 사건 발생 초기에 조치할 수단이 정말 제한돼있다"고 말했다.
한편 정치권에서는 김 청장에 대한 경질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김병민 국민의힘 선대위 대변인은 지난 11일 논평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은 반복되는 참사를 막지 못한 책임을 물어 김창룡 경찰청장을 즉각 경질해야 한다"며 "피해 여성은 경찰의 신변보호 대상자였기에, 예고된 범죄 앞에 무기력한 경찰의 신변보호 조치에 국민 불안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