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한시 완화 여부를 놓고 여권 내부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지면서 서울의 주택 매매시장이 사실상 '올스톱'된 상태다.
집을 팔 사람은 양도세 감면에 대한 기대감으로 일부 매물을 회수하기도 하고, 매수자는 양도세 감면시 앞으로 매물이 증가해 가격이 떨어질 것으로 보고 관망하면서 '거래 절벽' 상태가 심화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양도세 감면 여부를 놓고 당국자들이 시장에 여러 메시지를 주면 혼란만 가중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일각에서는 "이참에 형평성과 징벌적 과세 논란이 있는 양도세 체계 재설계를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양도세 결정되면 팔겠다"…집주인은 매물 회수, 매수자는 관망
19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이달 들어 서울 아파트 매매 시장은 거래 절벽 상태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집값 고점 인식, 대출 규제와 금리 인상, 대선 변수 등으로 최근 거래량이 눈에 띄게 급감한 가운데 최근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대선후보와 청와대·정부가 양도세 중과 완화 여부를 놓고 다른 목소리를 내면서 거래 시장이 더욱 냉각되는 분위기다.
양도세 인하 논쟁은 올해 종부세 부담이 역대급으로 커졌다는 불만이 제기되자 지난달 30일 박완주 민주당 정책위의장이 "다주택자 양도세 인하를 배제하지 않고 검토중"이라고 밝히면서 시작됐다.
이어 이 후보가 직접 지난 12일 "1년 정도 한시적으로 유예하는 아이디어를 제가 내서 당과 협의 중"이라고 공식화하면서 본격적으로 양도세 인하 논쟁에 불을 붙였고, 이후 당과 이 후보 측에서 연일 양도세 완화 관련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민주당은 이 후보가 양도세 중과를 1년간 한시 완화하면서 △6개월 이내 팔면 완전 면제 △9개월 이내 절반 면제 △12개월 내 25% 면제로 면제율을 차등 적용하겠다고 밝힌 유예안을 이달 임시국회에서 처리하겠다는 입장이다.
반면 청와대와 정부는 "정책의 일관성이 흐트러져 신뢰가 훼손되고 시장에 미치는 부작용이 더 클 것으로 우려된다"며 공개적으로 반대하고 나서면서 갈등이 고조되는 양상이다.
이로 인해 주택 시장은 매도, 매수자 모두 관망세로 돌아섰다. 서초구 반포동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종부세 고지서가 나온 뒤 고민하던 다주택자들이 최근 신고가 거래를 보고 멈칫하다가 이번에 양도세 완화 논의까지 불붙기 시작하니까 '향후 세제가 바뀌는 것을 보고 매도 여부를 결정하겠다'며 한 발 빼는 분위기"라며 "매도, 매수 문의 모두 뚝 끊겼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보유세 부담 때문에 팔려고 내놨던 매물을 다시 회수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송파구 잠실동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집주인이 사정상 리센츠 전용면적 84㎡를 시세보다 1억2천만원 낮춘 24억8천만원에 팔려고 내놨는데 양도세 중과 완화 가능성이 제기되자 나중에 팔겠다며 다시 회수해갔다"며 "양도세 중과를 풀어주면 세금이 절반으로 줄어드는데 지금 팔 이유가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 중개인은 "매수자들도 양도세 중과가 풀려 매물이 증가하면 가격이 떨어질 것으로 보고 모두 관망하고 있다"면서 "가뜩이나 대출 규제 이후 거래가 급감했는데 지금은 아예 문의 전화 한 통 없다"고 설명했다.
양천구 신정동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집을 2채 가진 집주인이 자금 사정 문제로 아파트 하나를 팔려고 내놨다가 지난주 잠시 보류하겠다고 연락이 왔다"며 "양도세 완화 여부를 지켜보고 결정하겠다고 한다"고 전했다.
양도세 중과 완화 효과 놓고 갑론을박
청와대와 정부가 여당의 다주택자 양도세 한시 완화 추진에 대해 반대하는 것은 현 정부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인데다 효과도 장담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양도세 완화의 매물 증가 또는 집값 안정 효과는 크지 않은 반면, 최근 겨우 진정 기미를 보이는 시장에 잘못된 신호만 주면서 '득보다 실이 크다'고 보는 것이다.
앞서 현 정부는 2017년 8·2 대책, 2019년 12·16 대책, 지난해 7·10 대책을 통해 다주택자의 세금을 강화하면서 세 차례에 걸쳐 양도세 중과 유예를 시행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대부분 집을 팔아야 할 다주택자들이 임대사업 등록을 하거나 상당수는 추가 집값 상승을 기대해 증여로 돌아서면서 거래량 증가와 가격 안정 효과는 기대만큼 크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왔다.
특히 작년 7·10 대책 때는 다주택자의 양도세를 최대 65~75%(조정대상지역)까지 높이면서 올해 6월 1일 법 시행 전까지 11개월 가까운 유예기간을 줬지만, 매물 유도 효과는 미미했다.
당시 양도세 중과 시행 시기는 늦췄으나 다주택자에게 일반세율이 아닌 종전의 중과세율(조정대상지역 최대 55~65%)이 그대로 적용되면서 매도 대신 증여 등의 다른 방법을 택한 것이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7·10 대책 발표 전인 2020년 6월 1만5천623건, 7월 1만664건이었는데 대책 발표 후 8월에는 4천981건, 9월에는 3천776건으로 급감했으며 올해 4월에는 3천670건으로 저점을 찍고 유예 마지막 달인 5월 거래량도 4천895건에 그쳤다.
오히려 조정대상지역 내 3억원 이상 주택을 증여하는 경우 증여를 받는 사람이 내야 할 취득세율을 기존 3.5%에서 최대 12.0%까지 높이면서 작년 7월 증여거래는 역대 최대 기록을 경신했고, 이후에도 여전히 증여 거래 비중은 크게 줄지 않고 있다.
국민의힘 유경준 의원이 국토교통부에서 받은 다주택자 매도량 자료에서도 서울 '다주택자 전체 주택 매도량'은 7·10 대책 발표 이전인 2020년 6월 7천886건이었으나 발표 이후인 7월 7천140건으로 줄었고 8월에는 3천342건으로 '반토막'이 났다.
물론 유예 효과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19년 12·16 대책을 통해 지난해 6월 말까지 10년 이상 장기 보유자에 한해 6개월간 한시적으로 양도세를 유예해줬을 때는 2019년 12월 9천627건이던 거래량이 지난해 5월 5천594건으로 줄었으나 한시적 유예가 끝나는 작년 6월에 막판 거래가 몰려 전월의 2배가 넘는 1만5천623건이 신고됐다.
당시에는 양도세 변화는 없어도 공시가격 현실화와 함께 다주택자의 종부세율과 세부담 상한이 크게 높아지면서 보유세 부담을 우려한 다주택자들이 일부 매도로 돌아섰다.
"과감히 풀어야 매물 회전" vs "다주택자 양도차익 막대…종료후 되레 가격 상승"
부동산 전문가들은 이번에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를 완화하면 그간 보유세 부담 때문에 팔고 싶어도 못 팔고 있던 다주택자들이 일부 매물을 내놓으면서 매물 잠김 현상이 일부 완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간 3주택자는 양도세에다 농어촌특별세·지방교육세 등을 붙여 실제 세율이 최고 82.5%에 달하다 보니 집을 팔아도 세금 빼고 남는 돈으로는 전세 보증금을 돌려주거나 대출금도 갚지 못해 집만 팔래도 팔 수 없다는 불만이 많았다.
이 때문에 보유세 부담이 컸던 은퇴자들이나 대출 이자 부담이 큰 일명 '영끌족'(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한다는 속어)들이 매도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10년 장기보유자 한정, 중과세율 소폭 인하 등 '찔끔' 대책으로는 매물 유도 효과가 없고, 푼다면 과감하게 풀어줘야 다주택자들이 집을 팔 수 있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주장한다.
김규정 한국투자증권 자산승계연구소장은 "어차피 내년부터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대출 규제가 대폭 강화되기 때문에 투자 수요가 주택매수에 나서기는 어려운 환경"이라며 "양도세 완화를 하려면 과감하게 해야 매물 잠김 현상이 풀리고 가격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대로 내년 서울 입주물량이 줄고 전세도 불안한 상황에서 자칫 양도세 중과 완화가 시장에 잘못된 시그널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만만찮다. 양도세 중과 유예가 끝난 뒤엔 매물 잠김 현상이 더 심화돼 가격 상승을 부채질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국부동산원 통계를 보면 지난해 7·10 대책이 나왔던 7월 서울의 아파트값은 1.12% 올랐다가 8월 0.55%, 9월 0.29%로 10월 0.11%로 상승폭이 완화됐으나 지난해 말부터 다시 오름폭이 커지기 시작해 양도세 중과 유예기간 마지막 달인 올해 5월에는 0.48%를 기록한 뒤 양도세 중과가 시행된 6월 매물 감소로 0.67% 뛰었고, 8월에는 0.92%까지 치솟았다.
익명을 원한 한 부동산 전문가는 "시장에 매물이 충분히 돌게 하려면 최소 1년 이상은 시행해야 할 텐데 그럴 경우 다주택자 양도차익을 불로소득으로 보고, 철저히 회수해야 한다고 해왔던 민주당의 정체성과 배치되는 문제가 있다"며 "특히 현 정부 들어 집값이 급등하면서 양도차익도 어마어마하게 커졌는데 아무리 지지율이 급하다 해도 다주택자들의 막대한 불로소득과 맞바꿀 수 있을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참에 양도세 자체를 손질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1주택자는 양도세를 12억원까지 공제해주기로 한 반면, 부득이하게 수도권에 6억원짜리 2가구를 보유한 경우는 중과세율이 적용돼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에서다.
한양대 도시공학과 이창무 교수는 "현재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율은 징벌적인 수준으로 지속가능한 세율이 못 된다"며 "일반세율이 안되면 최소한 7·10 대책 이전 수준으로는 낮춰줘야 시장이 작동한다"고 말했다.
경인여대 서진형 교수는 "시장에 주택공급이 원활하게 이뤄지고 가격이 안정되려면 한시적 완화가 아니라 전면적 완화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