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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바로 잡는 일, 미래 세대를 위한 길"

강원

    "과거를 바로 잡는 일, 미래 세대를 위한 길"

    편집자 주

    기업도시, 혁신도시를 중심으로 과거 군사도시 정체성에서 중부권 경제, 관광, 문화 중심도시로 도약하고 있는 강원도 원주. 하지만 화려한 성장의 이면 뒤에 잊혀지고 숨 죽여온 아픔이 있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올해 71주년이 되는 긴 시간이 흘렀다. 동족상잔의 아픔과 함께 강원도 원주에서도 남과 북의 갈등, 좌우 대립 속에 많은 민간인들이 희생 당한 사건은 여전히 치유되지 못한 채 미완의 과제로 남아있다.

    강원CBS는 사건의 진실을 밝히고 이에 대한 사회적, 정치적, 법적 치유를 이끌어내기 위한 첫 걸음으로 총 4회에 걸쳐 한국전쟁 직후 원주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 사건을 향한 재조명 움직임을 기획, 보도한다.

    [강원CBS 기획: 잊혀진 죽음들 3편] 피해자-가해자의 의무, 신기철 금정굴 인권평화재단 소장

    ▶ 글 싣는 순서
    71년간 잊혀진 죽음, 원주 민간인 학살 사건을 아시나요?
    1950년 원주에서 벌어진 또 하나의 참상들
    "과거를 바로 잡는 일, 미래 세대를 위한 길"
    (계속)
     신기철 금정굴 인권평화재단 소장. 금정굴 인권평화재단 제공 신기철 금정굴 인권평화재단 소장. 금정굴 인권평화재단 제공강원 원주에서 한국전쟁 전후 일어난 '민간인 학살 사건'이 소수의 구술로 전해지고 짧은 조사와 단편적인 기록으로만 남아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전쟁 직후 1950년 10월 경기도 고양군 송포면 덕이리 금정굴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 사건을 조사 연구한 신기철 금정굴 인권평화재단 소장을 통해 현실적 한계와 대안, 각계의 역할을 심층 인터뷰를 통해 진단했다.

    다음은 신기철 소장과의 1문 1답.

    일명 '금정굴 민간인 학살 사건' 이라도 불리는 이 사건은 90년대 첫 조사를 시작으로 지금도 유족들은 끝나지 않은 싸움을 벌이고 있다. 강원 원주(횡성) 지역의 국가폭력에 의한 민간인 집단희생 사건의 조사 가능성은?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집단희생사건은 국가범죄이고 오늘날 국제형사범죄법(국제형사재판소 관할 범죄 등의 처벌에 관한 법률, 국제형사재판소에 관한 로마규정의 국내법)의 '인도에 반한 죄'에 해당합니다. 이는 곧 군이나 경찰 등 국가 권력의 영향이 미치는 조직이 있는 곳 어디에나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피해는 전쟁의 전개과정과 함께 전국에 걸쳐 국민보도연맹사건(또는 형무소사건), 소개작전 피해(낙동강 전선 등 군작전지역), 수복 후 피해(부역혐의 사건), 1.4후퇴 시기 피해 등으로 진행됐습니다.

    강원 지역에서 원주나 횡성의 경우 그 피해가 구체적으로 확인된 곳이기도 하는데요. 어느 곳이든 꼼꼼하게 주민들을 면담해 가신다면 충분히 확인 가능한 곳으로 생각합니다.
     
    1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화위)에서 활동하기도 하셨는데 진화위에서 조사한 원주권 민간인 집단희생 사건에 대한 조사 및 후속조치에 대해서 알고 있는 부분이 있나요?

    1기 진화위 조사 결과 원주에서 진실규명된 사건들은 국민보도연맹 사건(가리파 고개 사건)과 1.4후퇴 시기(문막, 양안치재 사건)에 벌어진 피해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특히 가장 잘 알려진 원주형무소 사건의 경우 180명이나 되는 대규모 피해임에도 전혀 알려진 것이 없었습니다. 1기 진화위에서도 다루지 못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최근 현장을 둘러보고 이 사건의 희생자들이 지역 국민보도연맹원들이었을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원주에 형무소가 없었으므로 원주경찰서에 감금되었던 사람들을 형무소 재소자로 잘못 알았을 가능성이 더 높았기 때문입니다.

    횡성에서는 국민보도연맹사건(추동리 고내미 고개, 곡교리), 수복 후 피해, 1.4후퇴 피해 모두 있었던 것으로 확인됩니다. 횡성의 국민보도연맹사건은 국군 6사단 헌병대 김만식 상사의 고백으로 잘 드러났습니다.

    후속조치에 대해서는 제가 알고 있는 바는 없습니다. 최근 원주시민연대의 활동으로 보아서는 후속조치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조례 제정도 없었고 희생자들을 위한 위령제도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원주에서는 민간차원에서의 조사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준비해야하는 부분은?

    많이 늦으셨다고 생각하실 수 있겠지만 실제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이미 전국적으로 이러한 피해에 대해 인정하는 분위기가 있으므로 놓치는 사례가 없도록 추진하신다면 더 빨리 좋은 결과를 내실 수 있으리라 봅니다.

    오랜 시간이 지났으므로 가장 급하게 추진하실 일은 전수조사가 아닐까 싶습니다. 전통마을이 많이 남아있는 곳을 중심으로 80세 이상의 고령 원주민께 피해 사례를 탐문하는 것입니다.

    행정기관이 도와준다면 경로당 노인회장님들 파악이 어렵지 않을 것이고 이 분들을 통해 당시 마을 피해를 가장 잘 아실 분들을 추천받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10여 명이라도 의미있는 구술을 해주신다면 큰 기초 자료가 될 것입니다. 기초 조사 예산은 자료집 준비까지 1~ 2천만 원 정도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를 통해 집단희생지가 확인될 수 있다면 발굴 과정도 준비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관내 대학의 인류학과 등의 협조를 받을 수 있다면 작업이 더 수월할 것인데, 물론 2기 진화위와 상의하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유해의 안치도 도움을 받으실 수 있고요.
     
    민간인 차원에의 조사의 한계는?
     
    법률적 인정의 문제가 한계로 남는데요. 이는 곧 피해자나 피해 사실에 대한 공식적 인정, 국가의 공식적 사과, 피해에 대한 배·보상까지는 미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국가에서 위령제를 지원해도 자신들이 인정한 분들만 인정하게 됩니다. 이를테면 희생자 이름조차 국가가 인정한 사람들만 명비에 새긴다는 겁니다. 그래서 결국 민간에서 모든 조사를 다 해서 2기 진실화해위원회에 제공하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진실규명이 된 후도 발생합니다. 그 후속조치를 국가가 모두 해야 하는데요. 실제 그렇지 않는 문제가 있습니다. 행정안전부에는 과거사 지원단이란 것이 있는데 규모가 너무 작으니 결국 대부분 위령사업은 지자체와 시민단체가 맡게 되는 결과가 되고 말았습니다.
     
    1995년 10월 3일 경기도 고양시 금정굴양민학살 사건 발굴현장. 금정굴 인권평화재단 홈페이지1995년 10월 3일 경기도 고양시 금정굴양민학살 사건 발굴현장. 금정굴 인권평화재단 제공금정굴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을 위해 처음부터 지금까지 함께 하고 있는데  현장에서의 한계는?
     
    금정굴 사건의 경우 특히 어려움이 많았던 것은 국가의 인정과 사과에도 불구하고 지역에 남아있는 학살 동원 세력과 이를 이용하려는 보훈단체들의 반대가 컸기 때문이었습니다.

    민간인학살의 범죄를 저질러놓고 이를 애국을 위한 전투행위라며 합리화하는 세력들 때문이었지요. 이들의 반대로 가장 먼저 조례 제정운동을 시작했지만 2018년에나 겨우 통과했습니다. 위령제 외에 조례를 통한 고양시의 공식적인 사업지원은 2019년부터나 가능했습니다.

    지금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어려움은 유해의 안치입니다. 학살지는 그 자체가 묘지일 수 밖에 없는데요. 이를 새로운 납골당이나 공동묘지가 들어오니 아파트값 떨어진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얼마 전까지 이념적으로 공격하더니 이제는 그게 안 되니 주민들의 집단 이기심을 이용해 평화공원 사업을 반대하는 거지요.

    나아지고 있는 점은 조례라는 법적 근거가 사회화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현장 주변의 초중고 학생들이 재량학습의 하나로 금정굴 현장을 방문하고 평화와 인권을 이야기하고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방치되고 있는 현장을 본 학생들은 더욱 냉혹한 현실에 놀라고 있는데요. 이 이야기가 지역 지도 인사들에게까지 전파되는 것 같습니다. 현장을 정비해서 평화공원을 만들고 이를 통해 미래 세대들에게 올바른 역사 교육, 인권 교육을 받을 기회를 만들어 가자는 여론이 커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원주 시민연대가 민간인 집단학살에 대한 조사와 후속조치 등 성공적인 사례로 남을 수 있으려면?
     
    하찮아 보일지라도 먼저 마을 조사를 권유드립니다. 특히 고령의 원주민들께서 가슴 깊이 묻어놓은 아픈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지역 사회의 분위기를 바꾸는 데 작지 않은 역할을 할 것이라고 판단합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할 것이고요.

    죽은 사람들은 말이 없어서 살아있는 누군가가 먼저 말하기 시작하면 그때야 정말 그런 일이 있었냐고 묻기 시작합니다. 이는 사람들에게 자신들을 성찰하게 만듭니다.

    억울하게 돌아가신 분들에 대한 복수나 가해자들에 대한 법적 처벌은 현재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역사의 정의라는 것도 사실 오늘날 큰 영향을 미치는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지금 가장 관심을 두어야 할 곳은 미래 세대가 아닐까 싶습니다. 교육의 문제로 좁혀 볼 수 있겠지만 더 넓은 개념이라고 보아 문화적으로 성공한 사례가 되길 바랍니다. 개인의 삶과 공동체의 미래를 생각하는 새로운 문화적 토대를 마련하는 것인데요, 쉽지 않겠지요?
     
    마지막으로 당부할 말은
     
    미래 세대의 문화가 가져야 할 내용에 대해 말씀드렸는데요. 사실 우리 세대의 가장 큰 고민은 재발방지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왠지 전쟁 때 벌어진 참상이 다시 벌어질 것 같은 느낌을 버릴 수 없습니다.

    70년 전 벌어진 한국전쟁이 가장 무서운 것은 무장 세력끼리의 싸움이라는 전쟁의 규칙을 따른 전쟁이 아니었다는 것에 있습니다.

    350만 명의 민간인이 희생된 한국전쟁은 가장 정치적인 전쟁이었다는 것이고 그 정치의 내용은 독재정권의 기득권 유지를 위해 자기 국민들을 희생시켰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더 심각한 참상은 그 국민들 대부분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집단학살에 동원되거나 피해자가 되었음에도 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더라는 것입니다.

    가해자들은 자신들이 악의 평범성에 홀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으며 살아남은 피해자의 유족들 역시 대부분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는 가해자들의 논리에 동화돼 있었습니다. 그 많은 죽음이 우리에게 아무런 교훈을 남기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피해자 측에게는 당시 당신들 뿐 아니라 전체 사회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리는 것, 가해자 측에게는 비록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자신들 집단이 저지른 가해 행위가 얼마나 심각한 반인륜적 행위였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신기철 금정굴 인권평화재단 소장은 1983년 서울대 심리학과에 입학, 84년 총학생회가 주도한 수업거부에 동참해 제적, 1989년 고양시민회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인 지역시민운동을 시작했다. 지난 2004년 의문사진상규명위에서 일하기 시작해 이후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위원으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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