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내년 실손의료보험(실손보험) 인상률이 다음 주(12·27~31) 결정되고 과잉진료 억제방안 등을 논의하는 건강보험·실손보험 협의체 연례회의가 열린다.
보험업계는 올해 실손보험 손해액이 3조원을 훌쩍 넘길 것으로 전망하면서 올해와 비슷한 수준의 인상률을 요구했으나 정부는 이에 부정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당국의 개입으로 인상률이 억제된다고 해도 최근 3년간 인상폭을 고려할 때 내년에 갱신 주기가 도래한 가입자는 대부분 50%가 넘게 보험료가 인상될 것으로 보인다.
고령층을 중심으로 이전 보험료의 2배가 넘는 고지서를 받는 가입자도 속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잘못된 설계, 과잉진료 조장…가입자간 보험료 형평도 어긋나
26일 금융당국과 보험업계에 따르면 다음주 초반 금융위원회가 보험업계에 실손보험 인상률에 관한 '의견'을 제시할 것으로 예상된다.
원칙적으로 보험료는 시장 자율로 결정되지만, 실손보험과 자동차보험의 경우 보험업계가 금융위의 의견을 그대로 수용해 보험료 인상률을 결정한다.
지난해 금융위는 '1세대' 구(舊)실손보험(2009년 9월까지 판매)과 '2세대' 표준화실손보험(2009년 10월~2017년 3월)에 대해 보험사가 희망한 인상률의 각각 80%와 60%만 반영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이에 따라 주요 4개 손해보험사(삼성·현대·DB·KB) 기준으로 구실손보험의 보험료는 17.5~19.6%가, 표준화실손보험은 11.9~13.6%가 각각 올랐다. 출시된 지 5년이 경과하지 않은 '3세대' 신(新)실손보험(2017년 4월~2021년 6월 판매)은 동결됐다.
올해 손해보험은 3분기 말까지 손해율(위험손해율) 131.0%를 기록해 연말까지 손해액이 3조5천억원이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보험업계는 올해 이상의 인상을 추진했으나 금융당국은 이에 부정적인 의사를 간접적으로 드러냈다. 올해 실손보험 전체의 보험료 평균인상률은 10~12% 수준이다.
정은보 금융감독원장은 최근 "보험료율이 국민의 실생활과 관련된 보험일수록 합리성을 바탕으로 결정돼야 한다는 측면에서 필요한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일부 의료 공급자와 가입자의 과잉 진료로 실손보험에 대규모 손실이 발생하고 있고, 가입자 사이에 형평에 어긋나는 문제가 심각하다"며 "이러한 행태를 차단하지 못한 상품 설계에도 책임이 있는데, 부담을 전체 가입자에게 전가하는 게 합리적인지 의문이 제기된다"고 지적했다.
이런 기류 속에 내년 인상률은 올해보다 낮을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가입자 간 형평성 문제와 과잉진료 등을 해소하고자 올해 7월에 실손보험 상품 구조가 바뀌었으나 법적으로 기존 보험에 소급해서 적용할 수는 없다.
2017년 3월 이전 가입자, 갱신 대상이면 보험료 대폭 상승
연합뉴스정부의 개입으로 보험료 인상률이 억제된다고 해도 3~5년 주기 갱신이 도래해 보험료가 오르는 고령 가입자는 인상률이 50%를 웃돌게 된다. 3~5년치 인상률이 한꺼번에 반영되고, 연령 증가에 따른 요율 상승(1세당 평균 3%포인트)도 추가되기 때문이다.
1세대 실손은 2017년 이후 매년 약 10% 또는 그 이상 올랐고 2018년에만 보험료가 동결됐다. 따라서 내년 인상률을 제외하고도 연령 인상분까지 반영하면 50% 넘게 보험료가 오르게 된다. 고령층은 연령 증가에 따른 인상분이 연간 5%포인트(p)가 넘기 때문에 더욱 인상폭이 커진다.
예를 들어 대전에 사는 김모(52)씨는 올해 3월까지 매달 2만4250원을 냈지만, 4월에 갱신을 하며 보험료가 3배 넘는 8만2870원으로 폭증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내년에도 고령층 구실손 가입자를 중심으로 2~3배가 되는 고지서가 속출할 것"이라며 "보험사로 보나 가입자로 보나 1·2세대 실손은 지속가능성 위기에 있다"고 말했다.
2017년 4월 이후 가입한 3세대 실손보험은 올해까지 연령에 따른 인상분만 적용됐으나 내년 처음으로 보험료가 오를 수 있다. 보험업계가 2019년부터 적용한 '안정화 할인 특약' 종료를 건의했기 때문이다. 안정화 할인이 종료되지 않더라도 출시 5년이 지나는 내년 4월부터는 보험료율 인상이 가능해진다.
보험료 형평성 보완한 4세대 저조
옛 실손보험의 가입자 간 형평성 문제를 개선해 진료 이용량에 따라 보험료를 할인·할증하는 '4세대' 실손보험이 7월 출시됐으나 신규 가입이나 기존 가입자의 전환이 부진하다. 손해보험업계 전체로 4세대 가입자는 신규와 전환을 합쳐 4개월간 30만건에 불과하다.
다른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료가 부담되더라도 자기부담이 전혀 없거나 매우 낮은 1·2세대 상품을 최대한 유지하려는 경향이 강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보험사도 4세대 전환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4세대로 전환하면 보험사로서는 보험료 수입이 감소하고, 보험설계사는 수당이 줄어든다"며 "보험사에 따라 4세대 전환 유도 노력에 차이가 있다"고 전했다.
한편 공사보험협의체는 다음주 회의에서 비급여진료 관리방안,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 추진,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에 따른 실손보험 재정 절감 효과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또 건강보험 본인부담금 상한제에 따라 진료비 환급이 예상된다고 해도 보험사가 일단 가입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하고, 보험사가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사후 정산받는 방식으로 개선하는 방안도 이번 회의에서 다뤄진다.
현재는 환자가 본인부담금 환급이 예상된다는 이유로 보험사가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아 민원이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