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이성윤 서울고검장 관련 사건 내사·수사 과정에서 기자들에 대한 통신 영장까지 발부 받아 통화 내역을 살펴본 것으로 새롭게 확인되면서 적절성 논란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다.
기존엔 사건 피의자의 통화 내역에 나와 있는 전화번호의 주인이 누구인지, 가입자와 주민등록번호 등 신상 정보만 확인하는 차원의 통신 자료 조회가 이뤄진 것으로 파악됐는데 이번엔 아예 특정 기자가 누구와 통화했는지 들여다본 것으로 "언론 자유 침해"라는 지적까지 법조계에서 제기된다. 법적 문제는 없다는 게 공수처의 표면적 입장이지만, 내부에선 수사 절차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있었는지 의문이라며 난감해 하는 기류도 감지된다.
27일 CBS노컷뉴스 취재 결과를 종합하면 공수처는 '이성윤 서울고검장의 황제 조사' 의혹을 보도한 TV조선 취재 기자를 상대로 통신 영장을 발부 받아 통화 내역을 확보했다. 이 같은 사실은 공수처가 이 사건과 전혀 관계가 없는 해당 기자 가족의 전화번호까지 통신 자료(신상정보) 조회를 한 것으로 먼저 확인되면서 드러났다. 기자의 통화 내역을 확보한 뒤 통화 상대방이 누군지 들여다보는 과정에서 가족 조회도 이뤄진 것이다. 해당 보도에 참여한 또 다른 TV조선 기자 1명의 지인도 통신 조회를 당한 것으로 나타나 통신 영장이 집행된 기자는 복수인 것으로 보인다.
스마트이미지 제공비슷한 '기자 수사 정황'은 다른 언론 매체에서도 추가로 포착됐다. '이성윤 공소장 유출 의혹'을 수사 중인 공수처는 이 고검장이 '김학의 전 차관 불법 출국금지 수사 무마 의혹 사건'으로 기소된 직후 공소장 내용을 보도한 중앙일보 기자에 대해서도 '가족 통신 자료 조회'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마찬가지로 해당 기자를 겨냥한 통신 영장을 집행해 통화 내역을 확보한 뒤, 내역 상 전화번호 관련 추가 조회를 한 것으로 볼 수 있는 정황이다.
이는 여태껏 복수의 언론사에서 속속 확인됐던 공수처의 기자 '통신 자료 조회' 사실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수사 정황이다. 법원의 영장 발부 없이도 조회 가능한 통신 자료엔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주소 등 신상 정보만 포함된다. 공수처는 이에 대해선 피의자인 검사 또는 고위공직자의 통화 내역에 등장하는 전화번호의 주인이 누구인지 살펴보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조회가 이뤄진 것일 뿐, 조회 대상자를 수사한 건 아니라고 강조해왔다. 공수처 뿐 아니라 다른 수사 기관에서도 기자 통신 자료 조회가 빈번하게 이뤄진 것으로 파악되기도 해 "공수처 만의 문제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반론도 존재했다.
그러나 통신 영장 집행을 통한 통화 내역(통신사실확인자료) 조회는 법원의 허가를 전제로 하는 수사 행위다. 공수처는 이 같은 강제 수사 행위를 고위공직자도 아닌 기자를 대상으로 한 셈이어서, 그 정당성과 의도에 물음표가 붙으며 '언론 사찰' 논란으로 비화하고 있는 것이다. 공수처는 기자들을 입건하거나 피의자 신분으로 수사를 한 건 아니라면서도 통신 영장을 어떤 명목으로 법원에 청구해 집행했는지 등 구체 내용에 대해선 "진행 중인 사안이라 밝히기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 27일 오전 정부과천청사로 출근하는 모습. 연합뉴스
공수처는 '이성윤 황제 조사' 의혹과 관련해선 이 고검장이 공수처장 관용차에 오르내리는 장면을 담은 CCTV 영상이 지난 4월 TV조선에서 보도된 직후 이 영상 입수 경위에 대한 내사를 진행했다가 언론 뒷조사 논란을 초래했다. 보도 기자에 대한 통신 내역 확보는 영상 관련 제보를 검찰 측에서 제공했다는 의혹을 확인하기 위한 목적이라는 해당 내사의 연장선상에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이 고검장 공소장 내용을 보도한 중앙일보 기자에 대해선 검찰 내부에서 공소장 유출이 이뤄진 것인지 여부를 파악하기 위한 차원의 수사가 이뤄진 것으로 파악됐다. 피의자는 아니지만, 사건관계인이라고 본 셈이다.
그렇더라도 영상 관련 제보나 공소장을 공무상 비밀로 보고 공무상비밀누설죄 등을 적용해 이처럼 광범위한 강제 수사를 할 수 있는 지에 대해선 부정적인 의견도 적지 않다. 설령 비밀이라고 해도, 대법원 판례상 이 비밀을 누설한 공무원만 처벌 받을 뿐, 누설 받은 상대방은 처벌할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여러모로 쟁점이 많은 애매한 사안을 고리로 공수처가 고위공직자도, 피의자 신분도 아닌 언론인을 수사했다는 점을 놓고 법조계에선 "헌법상 언론 자유를 침해한 위헌적 수사"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보호돼야 할 취재원 노출이나 언론 기능 위축 우려 등 민감한 문제를 고려하지 않은 무리한 행위라는 것이다.
일각에선 "공수처가 보복성 수사에 무게를 두면서 생긴 부작용"이라는 비판까지 이런 시각과 맞물려 제기된다. 황제 조사 논란 등으로 출범 직후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은 공수처가 이 고검장 관련 사건 수사 과정에서 평정심을 잃은 것 아니냐는 취지다. 한 법조인은 "사실상 취재원 색출이 목적이었던 것 아니냐"고 평가했다. 또 다른 변호사는 "공수처의 수사를 두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데, 이에 대한 감찰이나 견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도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이번 수사에 대한 의사 결정 과정 역시 따져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진욱 공수처장은 지난 24일 "공수처는 모든 수사 활동을 법령과 법원의 영장 등에 근거해 적법하게 진행했다"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수사 관행을 깊은 성찰 없이 답습하면서 최근 기자 등 일반인과 정치인의 통신 자료 조회 논란 등을 빚게 돼 여론의 질타를 받은 점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입장문을 냈다. 김 처장은 "이번 논란을 계기로 비록 수사상 필요에 의한 적법한 수사 절차라고 해도 헌법상 기본권을 과도하게 침해할 소지가 없는지, 국민적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요소는 없는지 철저히 점검하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공수처는 통신 자료 조회 논란과는 별개로, 추가로 불거진 기자 수사 논란에 대해선 아직 구체적인 입장 표명을 하진 않았다. 공수처 내부 자문기구 등에 소속된 복수의 외부 법조인들도 "이번 논란과 관련해 의견을 내는 건 적절하지 않다"며 하나 같이 말을 아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