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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진압, 굿 아이디어!' 전두환은 죽을때까지 리플리였다"



정치 일반

    "'광주진압, 굿 아이디어!' 전두환은 죽을때까지 리플리였다"

    80년 육본 계엄사령관실 회의 문건 입수
    광주 재진입 작전에 '각하께서 굿 아이디어' 필기
    각하가 최규하? 이미 군부에게 각하는 전두환
    광주 진압 책임자, 모두 전두환 가리키지만…


    ■ 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FM 98.1 (07:2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송선태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 위원장)
     
    오늘 마지막 인터뷰는 5.18 얘기입니다. 사건의 당사자는 사과 없이 세상을 떠났습니다마는 진상규명 작업은 아직도 진행 중이라는 거 여러분 아시죠? 5.18 민주화운동진상조사규명위가 최근에 중간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요. 문건 하나를 공개했습니다. 광주 진압작전을 건의하는 문건인데 손글씨로 적혀진 메모를 잘 보면 눈에 띄는 게 있습니다. 화면으로 보여주십시오.

    문건 오른쪽 하단에 보면 보이죠. '각하께서 굿아이디어.' 각하는 한자로 썼고 굿아이디어는 영어로 썼습니다. '각하께서 굿아이디어.' 누군가가 손으로 적은 좀 선명한 메모가 보이는데, 이 손글씨의 의미는 뭔지 5.18조사위 송선태 위원장에게 직접 들어보겠습니다. 위원장님, 나와 계세요?
     
    ◆ 송선태> 네, 안녕하십니까?
     
    ◇ 김현정> 지금 보이는 이 문건! 어느 시점에, 누가 작성한, 어떤 내용의 문건입니까?
     
    ◆ 송선태> 1980년 5월 23일 광주 재진입 작전을 진종채 2군 사령관이 건의한 문건에 메모된 내용입니다.
     
    ◇ 김현정> 광주를 진압해야 된다. 광주 진압작전을 건의하는 인쇄물에 '각하께서 굿 아이디어'라고 손글씨로 적은 저 사람은 누구로 보이세요?
     
    ◆ 송선태> 그 자리에 참석한 여러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금 회의장소는 육군본부 계엄사령관실로 보이고요. 주요 멤버들은 전두환, 노태우, 정호용, 이희성 그다음에 유학성, 황영시 등등 참석자로 보이는데 그 메모를 하는 사람은 건의문을 제출한 2군 사령관 진종채이거나 아니면 배석했던 2군 사령부 작전참모 김준봉의 메모일 가능성이 있어서 이 부분에 대해서 위원회가 필적 감정을 해 봤더니 김준봉 장군은 강력하게 자기 글씨가 아니라고 부인하고 있고. 진종채 사령관은 사망해서 과거에 자필 진술서 또는 메모를 했던 내용을 필적 감정을 해서 가깝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 김현정> 진종채 제2야전군 사령관이 광주진압작전 문건에다가 문건을 회의하는 과정에서 '각하께서 굿아이디어'라고 이렇게 메모를 적었다는 거군요.
     
    ◆ 송선태> 네.
     
    ◇ 김현정> 그러면 '각하는 누구냐?' 이제 이 문제인데요. 사실 5.18 당시에 전두환은 신군부를 장악한 실질적인 권력 1인자이긴 했습니다마는 공식적으로 대통령은 최규하 대통령이었거든요. 그러니까 저 각하가 혹시 최규하 대통령을 의미한 것은 아닐까, 어떻게 보세요?
     
    ◆ 송선태> 그날 건의를 한 장소도 그렇고, 최규하 대통령은 참석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 김현정> 그 회의의.
     
    ◆ 송선태> 따라서 그 자리에 부를 최규하 대통령을 불렀으면 최 각하라고 했을 것인데, 같은 문건에 제출된 같은 문건의 제목은 '광주건 충정작전 간 지시 및 조치 사항'인데요. 이 문건 5월 21일자 자유권 발동을 결정한 그 회의 문건에도 여전히 '전 각하, 자유권 발동 강조'라는 메모가 있습니다. 그때의 전 각하는 온전 전 씨, 전두환 씨의 성씨인 온전 전 씨를 한자로 표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2.12 이후에 군 내부에서 전두환의 상관 또는 계급이 높더라도 전두환 씨를 각하로 호칭했다라는 상당수의 진술이 있습니다.
     
    ◇ 김현정> 보안사령관인데 각하라고 불렀대요? 전 각하?
     
    ◆ 송선태> 네, 사실상 그때 당시의 상황과 조직을 지배했다고 볼 수 있죠.
     
    ◇ 김현정> 그렇죠. 뭐 사실 권력자, 1인자였던 건 누구도 부정하지 않고 다만 대통령은 최규하 대통령은 8월에 내려갔으니까 대통령은 최규하 대통령이었지만 다들 전두환 씨를 각하라고 불렀다. 그러면 이 문건 자체의 의미를 좀 짚어보죠. 이 문건이 실제로 실행이 되면서 광주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죠?
     
    ◆ 송선태> 이 문건이 23일 날 5월 23일 날 건의되고 한미 간에 합의사항을 이유로 수차 연기됩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5월 27일 새벽을 기해서 광주 재진입 작전, 또는 광주 평정 작전이라고 하는 상무 충정작전이 전개돼서 많은 시민들이 무고하게 희생되는 참상을 초래했습니다.
     
    ◇ 김현정> 전두환 씨는 사실 눈 감는 순간까지도 발포 명령만큼은 인정하지를 않았어요. 즉 진압을 하더라도 국민에게 총 쏘라고 나는 그런 적이 없다. 이거는 끝까지 인정하지 않았는데 그러면 발포 명령을 내가 하지 않았다는 핵심 주장이 무너질 수 있는 겁니까? 저 '각하께서 굿아이디어'라는 이 증거를 어떤 근거로?
     
    ◆ 송선태> 그렇습니다. 저희들은 40년 묵은 상식을 입증해야 될 그런 상황인 것 같습니다. 미 국무부나 CIA, DIA 국방정보국의 비밀 해제 문건을 보면 광주 진압의 최종 책임자는 전두환이라고 명기하고 있습니다. 분명하게. 그래서 이제 우리 국내 자료뿐만 아니라 해외 자료에 의해서도 또 일본의 자료에서도 드러나는 이 사실을 본인만 부인하고 있죠. 일종의 역사적인 리플리 현상이다, 이렇게 보여집니다.
     
    ◇ 김현정> 리플리 증후군이요? 오랜 시간 동안 아니다, 아니다 스스로 부정을 하면서 그게 사실인 것처럼 믿었단 말씀인데요. 이 문건도 문건이고 사실은 증언이 더 중요하지 않습니까?
     
    ◆ 송선태> 그렇습니다.
     
    ◇ 김현정> 그 당시에 있었던 신군부 분들의 증언은 없어요?
     
    ◆ 송선태> 5.18, 12.12 재판 관련해서 95년, 96년에 재판 받은 12.12 44명, 5.18에 관해서 47명, 91명이 기소됐고, 16명이 유죄 확정 판결을 받았는데 단 한 사람도 이와 같은 사실을 인정한 사람이 없고 반성한 사람이 없습니다. 다만 이들의 명령을 광주에 출동한 장교 사병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었는가. 자유권 발동이라든지 지시자를 누구로 보고 있는가에 대해 2000여 명의 조사를 조사위원회에서 했습니다. 그런데 응답에 응해 준 약 22명 정도의 장사병들은 전두환을 지목하고 있습니다.
     
    ◇ 김현정> 모두 다. 알겠습니다. 저런 문건까지 나왔기 때문에 더 하나의 단단한 증거가 되지 않나 싶은데요. 어떤 분들은 '이제 전두환 씨가 사망했는데 계속 진상조사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 뭐 이런 분도 가끔 있습니다마는 그게 그렇지가 않죠. 진실은 묻혀서는 안 됩니다. 묻혀서는 안 된다는 거, 다시 한 번 다짐하면서 규명 활동 앞으로도 힘써주십시오. 고맙습니다.
     
    ◆ 송선태> 네, 그러겠습니다. 수고하십시오.
     
    ◇ 김현정> 중간 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위원회의 송선태 위원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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