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제의 미소' 3일 경기도 고양시 빛마루방송센터에서 열린 'NH농협카드 PBA-LPBA 챔피언십' 4강전에서 차유람을 누른 뒤 기뻐하는 김가영. PBA역시 세계 여자 포켓볼 최강으로 군림했던 여제다웠다. 함께 한 시대를 풍미했던 포켓볼 얼짱 스타와 재대결에서도 여제의 위엄을 뽐냈다. 그러면서도 후배에 대한 따뜻한 배려를 전하며 품격을 높였다.
'포켓볼 여제' 김가영(신한금융투자)이 '당구 얼짱' 차유람(웰컴저축은행)을 또 다시 눌렀다. 프로당구(PBA) 여자부 18개월 만의 리매치를 승리로 장식했다.
김가영은 3일 경기도 고양시 빛마루방송센터에서 열린 'NH농협카드 PBA-LPBA 챔피언십' 4강전에서 차유람에 세트 스코어 3 대 0 완승을 거뒀다. 통산 5번째 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3 대 0 승리였지만 결코 쉽지 않은 승부였다. 1세트에서 김가영은 차유람의 초반 기세에 고전했다. 차유람은 뱅킹에서 선공을 잡아 초구부터 3뱅크 샷으로 기선을 제압했다. 뱅크샷 2점을 한번 더 펼친 차유람은 1이닝에서만 무려 7점을 뽑는 등 3이닝까지 8 대 0까지 앞서며 기세를 올렸다. 1세트 11점인 여자부 경기에서는 사실상 승부가 갈릴 만한 상황.
하지만 여제는 흔들리지 않았다. 김가영은 4~6이닝 4점을 내며 추격의 신호탄을 쐈다. 특히 9 대 10으로 뒤진 16이닝째가 압권이었다. 김가영은 환상적인 원뱅크 걸어치기에 이은 역회전 공격을 성공시켜 1세트를 대역전으로 따냈다.
2세트는 양상이 달랐다. 기세가 오른 김가영이 8이닝까지 10 대 7로 앞서 먼저 세트 포인트를 맞았다. 그러나 차유람도 10이닝 3점을 집중시켜 동점을 만드는 뒷심을 보였다.
다만 마무리가 아쉬웠다. 차유람은 과감한 뒤돌리기를 구사했지만 키스가 나면서 마무리 득점에 실패했다. 노련한 김가영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침착한 뒤돌리기로 2세트마저 따냈다. 두 세트 연속 세트 포인트를 내준 위기를 극복해낸 것. 사실상 여기서 승부가 갈렸다.
전의를 잃은 차유람은 3세트에서 급격하게 흔들렸다. 김가영은 여유있게 3~5이닝까지 6점을 올리며 앞서갔고 14이닝 만에 11 대 4로 경기를 마무리했다.
'NH농협카드 PBA-LPBA 챔피언십' 4강전에서 매섭게 공을 노려보는 김가영. PBA경기 후 김가영은 1세트 0 대 8까지 뒤진 상황에 대해 "처음 3쿠션에 입문했을 때는 점수 차이에 긴장하고 걱정했지만 오늘은 별 생각이 없었다"고 무덤덤하게 말했다. 이어 "이후 점수를 뒤집고 뒤집혔던 경험이 쌓이면서 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마지막 세트였다면 많이 긴장했겠지만 첫 세트였기 때문에 침착함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고 뒤집기의 비결을 밝혔다.
또 승기를 잡은 순간을 묻자 김가영은 "끝나는 순간까지 이겼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면서 "2세트 경우 이기고 있다가 뒤집힐 뻔했다"고 운을 뗐다. 이어 "주어진 샷에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이었다"면서 "3쿠션의 특성 자체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놓을 수 없었다"고 철저한 프로의 자세를 보였다.
특히 후배 차유람에 대한 배려도 잊지 않았다. 김가영은 "많이 성장해서 놀랐고 집중력과 정신력이 좋은 선수임을 또 한번 느꼈다"고 칭찬했다. 김가영은 지난 시즌 개막전인 SK렌터카 챔피언십 16강전에서 차유람을 2 대 1(4-11 11-9 9-6)로 누른 바 있다.
같은 포켓볼 출신이라는 동병상련이 있다. 김가영은 "포켓볼에서 같이 (3쿠션으로) 넘어온 선수로서 부진하면 잘 치지도 못하는데 넘어왔다는 부정적인 인식을 줄 수 있다"고 전제한 뒤 "(유람이가) 저랑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드는데 둘 다 잘 이겨내고 있는 거 같고 (유람이도) 4강까지 올라와서 뿌듯했다"고 미소를 지었다.
김가영은 세계선수권대회, US오픈, 차이나 오픈, 암웨이 컵 국제오픈 등 포켓볼 그랜드슬램을 이루며 세계 무대를 평정했다. 2006년 도하,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은메달도 따낸 김가영은 해외 리그에서도 정상급 선수로 활약한 뒤 PBA 출범과 함께 3쿠션으로 전향했다.
차유람은 2006년 김가영과 쌍벽을 이루는 '검은 독거미' 자넷 리(미국)와 이벤트 게임에서 실력과 미모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광저우아시안게임에 김가영과 국가대표로 나선 차유람은 2015년 결혼과 함께 출산 등으로 현역에서 물러났다가 PBA에 도전했지만 아직 정상에 오르진 못했다. 다만 이번 대회 첫 4강에 올라 기대감을 키웠다.
3일 경기도 고양시 빛마루방송센터에서 열린 'NH농협카드 PBA-LPBA 챔피언십' 4강전 경기를 펼치는 차유람. PBA
이제 김가영은 진정한 '당구 여제' 등극을 꿈꾼다. 김가영은 포켓볼을 주름잡았지만 아직 3쿠션 최정상으로 보기는 어렵다. PBA 첫 시즌인 2019년 'SK렌터카 챔피언십'에서 우승했지만 나머지 3번의 결승에서는 고배를 마셨다. 4회 우승의 이미래(TS샴푸), 3회 우승의 임정숙(SK렌터카), 2승의 스롱 피아비(블루원리조트), 김예은(웰컴저축은행), 강지은(크라운해태)처럼 아직 다승자가 아니다.
특히 김가영은 '캄보디아 특급' 피아비에 올 시즌 3전 전패를 안았다. 시즌 개막전인 블루원리조트 챔피언십 결승 패배 등 약한 모습을 보였다. 피아비는 이번 대회 1회전에서 탈락한 상황. 김가영이 통산 두 번째 우승을 차지한다면 자존심을 회복하면서 '당구 여제'로 거듭날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
김가영은 앞선 3번의 준우승에 대해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가장 큰 원인은 경험 부족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오늘 경기도 실수가 많았고 이닝 평균 득점도 낮아 만족할 만한 경기는 아니었다"고 돌아봤다. 이어 "매번 결승전에서 제대로 기량을 펼치지 못했다"면서 "더 성장하려고 노력하고 있어 이번 결승전은 다른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우승에 대한 각오를 다졌다.
'NH농협카드 PBA-LPBA 챔피언십' 결승에서 김가영과 격돌하는 강지은. PBA
결승 상대는 올 시즌 '휴온스 챔피언십'에서 통산 2승을 달성한 강지은. 또 다른 4강전에서 이우경에 두 세트를 먼저 내주고도 3 대 2(8:11 8:11 11:4 11:8 9:5)로 뒤집는 저력을 보였다. 강지은 역시 이번 대회에서 우승하면 임정숙과 LPBA 다승 공동 2위에 오른다.
과연 김가영이 준우승 징크스를 깨고 여제의 위엄을 결승에서도 뽐낼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김가영과 강지은의 결승은 4일 밤 9시 30분, 7세트 경기로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