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경기 광주시 중대동 CJ대한통운 성남터미널에서 '택배 노동자 과로사 방지를 위한 사회적 합의 이행을 촉구하는 무기한 총파업 출정식이 열린 가운데 한 택배노동자가 머리끈을 묶고 있다. 황진환 기자오전 9시, 출근한 정모(32)씨가 직장동료 책상에 택배를 내려놓았다.
"고객님, 택배 왔습니다."
정씨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택배를 건네자 동료는 미안함과 고마움이 섞인 표정으로 정씨를 반겼다.
정씨는 요즘 택배 파업 지역에 살고 있는 직장 동료 대신 택배를 자신의 집으로 받아 건네주는 택배 '품앗이'를 하고 있다.
정씨는 "동료가 꼭 받아야 하는 택배인데 못 받을까봐 안절부절해서 우리 집 주소를 빌려줬다"고 전했다.
지난달 28일 시작된 CJ대한통운 파업이 3주째로 접어들었다. 택배 품앗이까지 해야 할 정도로 시민들의 불편이 커지고 있지만 파업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 11일 서울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인근에서 설 택배대란을 막기 위한 택배노조 총력투쟁계획 발표 기자회견 및 총파업 결의대회가 열리고 있다. 이한형 기자CJ대한통운 택배노조의 파업은 갈수록 강경해지는 모양새다.
민주노총 전국택배노조 CJ대한통운 본부는 지난 14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100명 무기한 단식 농성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노조는 "정부 여당이 사회적합의 불이행 문제를 노사간 문제라며 수수방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민주당은 사회적 합의 기구를 다시 소집해 CJ대한통운 사측의 합의 미이행을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민주당의 대답을 듣겠다며 지난 14일부터 민주당 당사 앞에서 노숙 단식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이어 CJ대한통운에 72시간 공식 대화를 제안했다. 노조는 "오는 17일 오후 1시까지 주말을 비롯해 시간과 장소 구애없이 대화에 응하겠다"며 "만약 노조의 대화제안을 거부한다면 설 택배대란의 모든 책임은 CJ대한통운에 있다"고 경고했다.
CJ대한통운은 "대리점이", 대리점은 "본사가 반응 없어서"
지난 6일 서울 중구 CJ본사 앞에서 열린 '택배노조 무기한 단식 돌입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한형 기자노조의 투쟁 수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지만, 노조가 문제를 해결하라고 지목한 여당도, CJ대한통운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우선, CJ대한통운은 노조와 수수료 등의 문제를 논의해야 할 '주체'는 대한통운 본사가 아닌 대리점이라는 입장이다.
CJ대한통운 관계자는 "택배기사는 대리점과 계약을 맺은 개인사업자 신분이기 때문에 집하, 배달 수수료를 대리점과 논의해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이 관계자는 "국토부 실무 조사와 현장 점검이 진행되고 있는 만큼 결과를 기다릴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1일 오후 서울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인근에서 설 택배대란을 막기 위한 택배노조 총력투쟁계획 발표 기자회견 및 총파업 결의대회가 열리고 있다. 이한형 기자반면 대리점측은 본사보다 먼저 나서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리점연합회 관계자는 "본사에서 전혀 반응이 없어 노조와 대화에 대리점이 먼저 나서는 게 부담스럽다"고 전했다.
당장 오는 17일부터 설 대목이 시작되기 때문에 대리점으로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 관계자는 "파업 장기화되어 안타깝다"며 "상황이 계속 악화되면서 이젠 비노조원들이 들고 일어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파업이 길어지면서 고객사들이 이탈하고 있는 상황도 대리점으로서는 생계를 위협하는 요소다.
CJ대한통운 대리접연합회 김종철 회장은 "택배 대리점들이 풀필먼트 업체와 경쟁해야 하는 상황인데 파업 이슈가 계속되면 택배 대리점 물량은 점점 줄어들고 풀필먼트에 물류가 쏠릴 것"이라며 "그런 의미에서 이번 파업은 고객 상품과 택배 기사를 볼모로 하는 파업"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11일 오후 서울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인근에서 설 택배대란을 막기 위한 택배노조 총력투쟁계획 발표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이한형 기자지난해 택배기사 과로사 방지를 위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었던 민주당 역시 국토부 조사를 지켜보겠다며 한 발 물러섰다 .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 선대위 노동위원회 상임위원장인 김주영 의원은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문제가 잘 풀리길 바라는 입장이지만 합의 당사자가 이미 있다"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택배노조는 15일 민주노총이 주최하는 민중총궐기 대규모 집회에 참여했으며, 17일까지 대화가 결렬될 경우, 18일 전 조합원 상경 차량 시위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에 국토교통부는 설 명절 택배대란을 방지하기 위해 현장에 1만명 상당의 추가 인력을 투입할 예정이다. 또 다음달 12일까지를 특별관리기간으로 정하고 현장에서 택배 기사 과로방지를 위한 사회적 합의 제대로 이행되는지 관리감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