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 씨. 이한형 기자대장동 개발 로비·특혜 의혹 핵심 인물인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56·구속기소)가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 등 이른바 '50억 클럽' 인사들에게 금품을 챙겨주려고 계획한 정황의 녹취록이 공개돼 파장이 일고 있다.
한국일보는 19일 정영학(54) 회계사가 2019년 12월부터 8개월간 김만배씨와 만나 녹음한 대화 내용을 보도했다. 정 회계사는 화천대유 관계사 천화동인 5호의 소유주다. 김씨와 같은 대장동팀에서 사업을 설계했다. 현재 함께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녹취록에 따르면 김씨는 2020년 4월 4일 정 회계사에게 "병채 아버지는 돈 달라고 그래. 병채 통해서"라며 곽상도 전 의원을 언급했다. 병채씨는 곽 전 의원 아들이다. 화천대유에서 근무하다가 50억원을 받고 퇴직한 사실이 CBS 보도로 처음 드러났다.
당시 대화에서 김씨는 병채씨와 주고받은 이야기라며 그 내용을 정 회계사에게 전했다. 김씨가 병채씨에게 '아버지가 무엇을 달라고 하느냐'고 묻자, 병채씨가 '아버지한테 주기로 했던 돈 어떻게 하실 건지'라고 답했다는 것이다. 병채씨의 이같은 대답에 김씨가 "한꺼번에 주면 어떻게 하냐. 서너차례 잘라 너를 통해 줘야지. 그렇게 주면 되겠냐"고 말했다는 내용도 담겼다.
대장동 개발 로비·특혜 의혹과 관련해 이른바 '50억 클럽'에 거론된 곽상도 전 의원. 박종민 기자녹취록에는 더 나아가 '50억 클럽'으로 알려진 화천대유의 로비 대상 명단과 구체적인 금액 배분 계획도 등장했다. 해당 대화는 김씨가 2020년 3월 24일 경기 성남시 운중동 한 카페에서 정 회계사를 만났을 때 주고받은 내용이라고 한다.
이에 따르면 김씨는 정 회계사에게 먼저 화천대유가 가진 대장동 A12 블록의 분양으로 430억원 정도의 이익이 남는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50개가 몇개냐, 쳐 볼게. 최재경, 박영수, 곽상도, 김수남, 홍선근, 권순일. 그러면 얼마지?"라고 물었다.
여기서 50개는 50억원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대화에 언급된 최재경 전 청와대 민정수석과 박영수 전 특별검사, 곽상도 전 의원, 김수남 전 검찰총장, 홍성근 머니투데이 회장, 권순일 전 대법관은 이미 '50억 클럽' 6인방으로 지목된 인물들이다. 당시 김씨의 질문에 정 회계사는 "50억씩이냐"고 되물은 뒤 "곱하면 300억이죠"라고 답했다.
사건 초기부터 불거진 '50억 클럽' 의혹을 둘러싼 검찰 수사는 수개월이 지난 현재까지도 여전히 진척을 보이지 않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전담수사팀이 지난해 말 알선수재 혐의로 곽 전 의원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에서 기각당했다.
검찰은 병채씨가 화천대유에서 퇴직금 명목으로 받은 50억원이 사실상 곽 전 의원에게 지급한 돈으로 의심하고 있다. 화천대유와 하나은행이 참여한 성남의뜰 컨소시엄이 2015년 무산될 위기에 처하자, 곽 전 의원이 김씨의 부탁을 받고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에게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게 검찰의 시각이다. 병채씨가 받은 50억원이 그 대가라는 것이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대장동 개발 사업 특혜 의혹을 받고 있는 화천대유 자산관리 사무실 모습. 이한형 기자
곽 전 의원 측 변호인은 이날 녹취록이 공개되자 "녹취록 가운데 곽 전 의원 관련 부분이 사실과 다르다는 점은 검찰의 광범위하고 철저한 수사과정에서 해명되고 있다"며 "지난해 법원의 영장심사에서도 해당 녹취록의 문제점이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김만배씨 측 변호인도 "녹취록 내용이 사실이라면 언급된 사람들은 모두 기소됐을 것"이라며 동업자들 사이 정산 문제로 갈등이 빚어진 상황 속에 나온 과장된 대화였다는 기존 입장을 유지했다.
검찰은 녹취록 내용이 보도되자 입장문을 내고 "형사사건의 조서, 녹취록, 녹음파일 등이 맥락과 사실관계 확인 없이 유출될 경우 관련 재판과 진행중인 수사에 지장을 주거나 사건 관계인의 명예와 사생활을 침해할 수 있다"며 우려를 내비쳤다.
이어 "형사소송법은 '피고인이나 변호인이 열람·등사한 자료를 재판이 아닌 다른 목적으로 유출'하는 경우 형사처벌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면서도 "법과 원칙에 따라 치우침 없이 수사를 계속 진행하겠다"고 덧붙였다.